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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천명선의 인간, 동물 그리고 병원체](7)4차 산업혁명시대…300년 전 ‘살처분’ 과학이 유일한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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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인데 치료하지 않는다- 살처분 정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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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동물이 어떤 질병에 걸렸을 때 때로는 그 질병을 치료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치료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하기도 한다. 1990년대 유럽연합은 특정 가축전염병에 대해 무백신(no-vaccination) 정책을 택했다. 즉 특정 질병에 대해선 백신접종을 하지 않고, 감염되었거나 감염의 우려가 있는 가축을 살처분하기로 한 것이다.

그 결과 유럽은 세기가 바뀌는 10년간 구제역으로 400만마리의 가축을, 돼지열병으로 1300만마리의 돼지를, 조류인플루엔자(AI)로 4100만마리 이상의 조류를 살처분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2010년 구제역 유행 당시 300만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를 산 채로 땅에 묻었고, 작년 말까지 조류인플루엔자로 약 3000만마리의 가금류를 살처분했다. 그런데 이 방식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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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처분 정책 이전

비록 그 존재를 증명하기는 어려웠지만 ‘병을 일으키는 작은 입자’에 대해 어렴풋이 알게 되었을 때 인류는 병을 막기 위해 그 입자를 막는다는 가장 직관적인 방책을 마련했다. 그 입자를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들은 질병을 ‘전염(contagion)’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전염은 ‘접촉, 함께’라는 의미의 라틴어 ‘contagio’에서 유래했다. 아픈 개체 곁에 있거나 접촉했을 때 같은 질병에 걸린다는 단순한 경험이 이론화된 것이다. 그래서 아픈 동물, 특히 갑자기 열이 오르거나 심한 호흡기·소화기 증상을 보이는 동물은 다른 동물과 분리시키는 것이 일반적 방법이었다. 또 질병으로 죽은 동물은 먹거나 팔지 않고 묻거나 태우도록 했다. 이 부정한 동물을 먹다가 사람도 병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18세기 유럽에서 좀 더 과격한 방식이 고안되었다.

■ 란치시, 살처분 정책의 고안자

이탈리아 로마의 산토 스피리토 인 사시아 병원의 양쪽 회랑에는 이곳에서 일했던 두 명의 유명한 의사 이름이 붙어 있다. 그중 한 명이 조반니 마리아 란치시(1654~1720)다. 18세에 의사가 된 그는 교황 이노센트 11세, 클레멘트 11세, 이노센트 12세의 주치의로 활동한 명망있는 의사였다. 그는 전염병에 관심이 있어 말라리아와 인플루엔자를 연구하기도 했고, 심장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특히 가축의 살처분 정책을 처음 고안한 사람이기도 하다.

1711년 교황 클레멘트 11세는 란치시를 불렀다. 당시 유럽은 계속되는 바이러스성 전염병인 우역(牛疫)으로 소 등 가축들이 쓰러져갔다. 소는 물론 양, 염소 등을 공격하는 이 질병의 병원체는 우역 바이러스인데, 물론 당시에 그 원인체를 알 수는 없었다. 특히 소가 이 바이러스에 취약해 걸리면 치사율이 100%에 가깝다. 바이러스는 감염된 소나 소가 배출하는 분비물에 접촉해 전염되는데 전파도 빨라 피해가 크다.

18세기 당시 유럽 전역에서 약 2억마리의 소가 이 질병으로 폐사했다고 하니 비교대상이 없을 정도로 위력을 떨친 셈이다. 1711년 여름, 우역에 감염된 소가 포함된 소떼를 이끌고 가던 무리들이 헝가리를 지나 오스트리아로 가던 중 이탈리아로 왔다. 이 중 한 마리가 홀로 나와 돌아다니다 그만, 안토니오 보로메오 주교의 영지로 들어갔다. 이 소를 잡아 돌려보내긴 했는데 일주일이 지난 후부터 영지의 소가 아프기 시작하고 이내 죽어나갔다. 그리고 질병이 근처 도시들로 번졌다. 밀라노, 베네치아, 피렌체는 물론 로마에도 비상이 걸렸다.

로마 근처에 소 목장을 가지고 있던 교황에게도 이 우역은 걱정거리였다. 그는 주치의였던 란치시에게 우역의 피해를 막을 것을 주문했다(당시는 아직 수의과대학이 설립되기 이전이다). 우역의 증상과 전파 양상을 연구한 란치시는 이 대책 없는 질병을 막기 위해 ‘질병에 대한 치료법을 찾으려고 시간을 보내는 동안 이 질병이 퍼져나가기 때문에, 일단 질병에 걸렸거나 혹은 걸렸다고 의심이 드는 모든 동물을 도살’해 버리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그리고 실제 이 방법을 교황의 농장에 적용했고, 다른 지역의 농장들보다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동물을 치료하려는 행위 자체가 병을 전파시킬 수 있다는 게 란치시의 생각이었다. 그의 방역법에 따르면 우역이 발생한 지역의 도로를 막고, 소뿐 아니라 개의 이동도 차단해야 한다. 감염된 지역으로부터 오는 소는 도살해 묻고 감염된 피도 땅에서 흘러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건강한 소는 오염되지 않은 곳으로 즉시 이동시키고, 병든 소가 있는 외양간은 사람들의 출입을 막는 등 통제해야 한다. 소가 먹는 물이나 물통은 산화칼슘으로 자주 소독하고, 소를 돌보는 목동들의 옷도 훈증소독이 필요하다.

또 죽은 소는 털 하나라도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서 묻고, 사체에서 나온 삼출물도 모두 묻거나 소각한다.

란치시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1715년 우역을 다룬 서적 <소의 페스트에 대한 소고(Dissertatio historica de bovilla peste)>를 출간했다. 30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가 뉴스에서 보고 있는 살처분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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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처분 정책의 성공과 한계

란치시의 권고는 근대까지 가축 전염병의 방역과 검역의 근간이 됐다. 이 정책을 수용한 국가들은 검역제도를 만들고 질병이 없음을 확인하는 전문가의 건강증명서가 없는 가축의 수입을 금지토록 했다. 근대 초기 살처분 방식을 통한 질병 근절 정책은 꽤 효과를 거두었다. 우역을 비롯해 양두(sheep pox), 소 유행성 폐렴 등 당시 주요 질병들을 제어할 수 있었다. 특히 외부에서 유입되는 새로운 질병, 빠른 전파를 막아야 하는 질병에 효과를 거두었다. 이런 방식을 위해서는 강력한 집행력이 필요했고, 그래서 검역과 방역을 위한 국가 기구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모든 질병에 살처분 정책이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이미 토착화돼 있거나, 증상이 잘 드러나지 않거나, 폐사율이 높지 않은 질병을 다루는 데 살처분이 좋은 방법은 아니다. 19세기 미생물학의 발전과 더불어 특정 질병의 병원체를 파악할 수 있게 되고 이를 통해 백신을 제조하면서 가축 질병을 막는 방법은 좀 더 정교화·과학화됐다. 정확하게 진단하는 기술과 백신을 제조할 수 있는 기술이 발전한 것이다. 하지만 살처분 정책만을 고수할 때는 필요 없는 것들이기도 하다.

살처분 정책의 기원이 되었던 우역은 천연두에 이어 인간이 지구상에서 두 번째로 종식시킨 전염병이다. 2011년의 일이다. 물론 살처분 정책 단독으로 우역을 종식시킨 것은 아니다. 대규모의 백신 정책이 대륙별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런 근절이 가져올 수 있는 위험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사실 지구상에서 모든 병원체가 정말로 사라졌는지 확신하기 힘들고, 생물학적 테러 등으로 이 병원체가 다시 퍼지게 되면 이미 질병에 대한 면역을 가진 개체가 없어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 21세기의 살처분, 인간의 고통이 되다

특정 질병이 발생하지 않는 상태(disease-free)가 되는 것은 이미 고도화돼 있는 검역과 통상 제도하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다. 가축 질병을 막는 일이 농업 생산성뿐 아니라 식품의 안전성을 보장하고, 사람도 감염될 수 있는 병원체를 가축단계에서 막는 일이라는 새로운 목적이 부여되면서 이런 지위는 더 중요해졌다. 그러나 우리를 비웃듯 새로운 병원체, 그리고 수십년간 잊혔던 병원체들이 다시 나타나곤 한다. 물론 그때마다 우리는 살처분이라는 무기를 꺼내들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이 있다. 빠른 진단 기술과 엄격한 방역 제도로 인해 살처분 대상이 되는 동물들은 질병에 걸려서가 아니라 걸릴 위험이 있는 동물들, 즉 아직은 건강한 동물이 대부분이었다. 살처분 정책이 처음 고안되었던 18세기는 인구의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했고 농촌사회의 이해관계는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다. 그러나 21세기 농업은 매우 적은 수의 사람들이 관여한 산업이 되었고, 농촌사회는 농업뿐 아니라 관광, 식품, 교육, 문화 등 다양한 산업 종사자들과 다양한 사회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복잡한 이해관계로 연계되는 커뮤니티가 되었다.

이들에게 살처분 과정과 그 결과물은 무기력과 분노, 그리고 좌절의 경험이 됐고, 깊은 트라우마로 남는다. 가축의 경제적 가치에 대해선 국가적인 보상이 이뤄지지만 정신적 고통 같은 종류는 보상 대상이 아니다. 대규모 가축 살처분이 이뤄졌던 영국, 네덜란드 등의 유럽 국가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분석한 트라우마 경험의 양상은 유사하게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살처분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받았던 정신적·신체적 타격은 심각한 수준이었다.

살처분에 대한 사회적 거부감은 농촌지역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도시화된 대중들은 농장의 삶이나 가축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은 없다. 그러나 살처분의 과정 등을 언론을 통해 접하면서 도시인들이 느낀 심적 불편함과 충격 역시 작지 않다.

특히 농장에서 식용으로 키우는 동물은 물론 집 뜰에서 키우는 애완동물, 동물원 동물도 질병 발생 지역에 있다는 이유로 살처분 대상이 되는 것에 강력하게 반발하기도 한다.

살처분은 인간과 동물 관계의 폭력적인 단절로, 가족이나 친구를 잃는 것과 같은 상실감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은 동물의 삶에 대한 존중, 동물복지에 대한 관심으로 전환되었다. 마침내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인도적인 살처분과 예방적 살처분의 문제점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살처분은 병원체를 없애기 위해 숙주를 없애는 매우 극단적인 방식이다. 역사에서 보듯 살처분을 시작한 것은 지식과 기술이 부족한 상태에서 방역비용을 줄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대의 살처분은 결코 싼 방식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산업혁명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방식을 다시 생각하고, 가축 전염병을 막기 위해 새로운 아이디어를 모을 때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지나고 있지 않은가.

▶필자 천명선

경향신문

인간·동물 관계와 동물 질병의 사회문화적 분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서울대 수의과대학을 졸업한 수의사로,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앙 대학에서 수의역사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에서 수의역사학, 수의윤리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천명선 | 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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