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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월드 이슈] 대통령 입만 쳐다봤지만…사퇴는 입도 뻥긋 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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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국민 연설서 퇴진 거부… 짐바브웨 정국 혼돈 속으로 / 가택연금 상태서 TV 나와 / “군부와 국민 우려 알고 있다 / 오늘 이후 국가 전 단계 리셋 / 내달 전당대회 예정대로 주재” / 군부 당혹… 유혈시위 우려 / 실각 부통령 당대표 내세운 여당 / "예고한 대로 대통령 탄핵 추진" / 실망·분노한 국민 다시 거리로

짐바브웨가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군부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았는데도 37년 장기 독재자 로버트 무가베(93) 대통령은 사퇴 거부를 만천하에 고했다. 여당마저 그의 당대표직을 박탈하고 탄핵을 추진키로 했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야권은 물론 집권여당으로부터 퇴진 압박을 받는 무가베가 19일(현지시간) 대국민 연설을 했다. 당초 예상과는 달리 사임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하루아침에 고립무원 처지에 놓였음에도 권력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지난 14일부터 사실상 군 지휘부에 의해 가택연금 상태인 무가베는 이날 오후 9시부터 20분간 국영TV로 생중계된 연설에서 “나에 대한 비판과 국민의 우려를 알고 있다”며 정치 혼란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몇 주 내에 전당대회가 열릴 예정인데, 내가 그 대회를 주재할 것이며 국민의 눈앞에서 결과를 왜곡하거나 의미를 축소하려는 어떤 행동도 막겠다”고 강조했다. 무가베는 군이 국가 경제 악화, 여당 내 분열과 정쟁 등을 우려하고 있다고도 언급했다. 마무리 발언에서는 “오늘 밤 이후로 국가는 모든 단계에서 초점을 다시 맞출 것”이라며 “고맙다. 좋은 밤 보내라”라는 여유 있는 모습까지 보였다.

무가베를 대표직에서 퇴출하고 환호성을 올렸던 여당은 이미 고지한 대로 탄핵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임발표를 기대했던 군부도 크게 당황했으며, 퇴진요구 국민행동의 지도자들은 무가베가 물러나지 않으면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고 최악의 경우 시위진압을 위해 무가베의 명령을 받는 군의 발포사태도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일보

19일(현지시간) 짐바브웨 수도 하라레의 한 술집에서 시민들이 로버트 무가베 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TV로 시청하고 있다.하라레=AP연합뉴스


앞서 여당인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 애국전선’(ZANU-PF)은 무가베의 당대표직을 박탈하고 해임된 에머슨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을 당대표로 지명했다. 20일 정오까지 퇴진하지 않으면 탄핵을 추진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무가베는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보인다. 야당인 민주변화동맹(MDC)도 “짐바브웨 의회는 반드시 무가베의 탄핵 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가베를 탄핵하려면 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 의회 양원의 다수당인 ZANU-PF는 음난가그와 전 부통령 지지세력과 무가베 부인 그레이스 지지파벌 ‘G40’으로 나뉘어 있다. 영국 일간 더 타임스는 20일 짐바브웨군 지도부와 집권당 간부들이 무가베 일가를 처벌하고 재산을 몰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한편 미국 CNN은 20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 무가베가 조건부 퇴진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소식통에 따르면 짐바브웨군 장성들은 무가베에게 퇴진에 따른 여러 조건을 제시했는데 여기에는 무가베와 그레이스에 대한 완전한 면책 특권, 개인 자산 지속 유지 등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의 퇴진 가능성에 관한 어떠한 공식 발표가 나오지 않아 결국 탄핵 절차 개시가 초읽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패트릭 치나마사 ZANU-PF 법률 담당 비서는 “무가베는 퇴진 아니면 탄핵에 직면할 것”이라며 “우리는 그에게 최후의 경고를 하는 공식 서한을 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상혁 선임기자 nex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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