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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자율주행시대, 문제는 기술 아닌 도로인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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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미래&과학]

몇년내 다가올 자율주행차 상용화

국토연구원, 3단계 대응 방안 제시

초기엔 쌍방향 지능교통체제 구축

자율주행차 비중 25~30% 이르면

버스중앙차로처럼 전용차로 분리

종국엔 초고속 전용 고속도로까지

미국선 공유차량 중심 도로재편론

자동차 ‘소유’에서 ‘서비스’로 유도

자율주행시대, 3차 교통혁명 이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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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자율주행차 전용차로를 분리한 고속도로 이미지, 오른쪽은 현재 고속도로의 버스전용차로. 국토연구원 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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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8일은 미국 유명 관광도시 라스베이거스에 아주 뜻깊은 날이었다. 바로 이날 운전자가 없는 자율주행 셔틀버스가 데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인승 셔틀버스는 운행을 시작한 지 불과 한 시간도 안 돼 사고가 나고 말았다.

사고 책임이 자율주행 버스에 있는 건 아니었다. 후진하던 상대 트럭 운전자가 뒤에서 오던 버스를 보지 못한 탓이었다. 버스의 자율주행 시스템이 사고를 피하려 멈춰 서기는 했지만 계속해서 다가오는 트럭을 피하지는 못했다. 다행히 부상자는 없었지만 사고 순간을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던 승객들로선 아찔한 순간이었다. 한 승객은 인터넷에 올린 글을 통해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뒤에는 20피트(6미터)의 빈 공간이 있었다. 인간 운전자라면 차를 후진시켰을 것이다. 그래서 그 빈 공간의 일부를 이용해 트럭을 피했을 것이다. 아니면 적어도 경적을 울려 셔틀버스의 존재를 놓치지 않도록 했을 것이다. 셔틀에는 그렇게 반응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없었다.” 자율주행차 사고는 이 부문의 선구자 격인 구글을 포함해 그동안 몇차례 있었다.

그렇다면 자율주행차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 일부에선 사람보다 사고율이 낮다면 도입하는 것이 경제적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국의 민간 싱크탱크 랜드연구소는 자율주행차의 안전주행 능력이 사람보다 10% 더 나은 상태에서 2020년부터 미국 도로에 자율주행차를 도입할 경우, 2070년까지 110만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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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더라도 현재의 자율주행차 기술이 운전자나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들의 예측할 수 없는 행동에 대처하는 데 한계를 보이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율주행차의 연착륙 방안으로 ‘도로 인프라의 재구축’이 떠오르고 있다.

국토연구원 국토인프라연구본부는 연구보고서 ‘자율주행 시대에 대비한 첨단 도로 인프라 정책 방안’에서, 자율주행차의 도입 정도에 따라 단계별로 첨단 도로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오성호 연구위원 등은 보고서에서 2020년대 초반으로 예상되는 자율주행차 도입 시기를 3단계로 구분하고 이에 대등한 도로 인프라 구축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도입 초기 단계에선 차세대 지능형 교통시스템(C-ITS)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의 지능형 교통시스템(ITS)은 차량이나 운전자에게 실시간 교통정보를 알려주는 데 머물러 있지만, 이 시스템은 차량 간, 차량과 도로 및 컨트롤타워 3자 간 쌍방향 실시간 정보 소통이 가능한 것이 특징이다. 오성호 연구위원은 “정부가 내년 중 제주를 포함한 일부 지역에서 시범구축 사업을 벌일 예정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자율주행차량이 일정 수준 이상 증가하면 자율주행차 전용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두 유형의 차량이 섞여 다닐 경우 돌발상황이 늘어나 교통 흐름을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면 정속 군집 주행이 가능해져 수송능력이 2.5배 늘어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국토연구원은 이 단계로의 진입 기준을 자율주행차가 통행량의 25~30%에 이르는 때로 본다. 오 연구위원은 “2030년쯤 이 단계에 이를 것으로 본다”며 “이때는 자율주행차에 특화된 유도 표지 등의 첨단 인프라가 더 추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마지막 3단계에선 자율주행차 전용 도로 구축이 현안으로 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자율주행 기술이 안정화한 만큼 제한속도를 크게 높인 초고속도로를 통해 통행시간을 대폭 단축하자는 사회적 요구가 비등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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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와 자전거 친화형으로 재편한 미국 로스앤젤레스 윌셔대로 상상도. 퍼킨스앤드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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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택시형 차량공유 서비스가 활발한 미국에선 좀더 과감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아예 교통 이용 패턴을 확 바꾸는 도로 인프라를 구축하자는 청사진이다. 개인 차량이 아닌 공유 차량을 중심으로 도로를 재편하면 도로 이용 효율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버와 함께 차량공유 서비스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리프트가 이런 목소리를 앞장서 내고 있다. 새로운 도로 인프라의 핵심은 역설적으로 차로를 줄이는 것이다. 개인차량 운전을 불편하게 만들어 버스나 합승 형태의 자율주행 교통수단을 이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다. 로스앤젤레스 승용차의 70%가 현재 1인 탑승 상태에서 운행하고 있는데, 이들을 자율주행 버스나 공유차량 이용으로 돌릴 경우 도로 이용 효율이 크게 좋아진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현재 로스앤젤레스에서 교통정체가 가장 심한 윌셔대로를 재구성해 도로 재구축의 효과를 시뮬레이션했다. 왕복 10차로인 이 도로는 현재 일반 차로 6개, 버스·승용차 공용차로 2개, 좌회전 차로 2개로 구성돼 있다. 연구팀은 이 가운데 기존 차로는 3개만 남기고, 나머지 차로를 자율주행 버스 전용 2개 차로와 공유차 전용 탑승 구역, 자전거 전용로로 재배치하고 가로수가 있는 보행로를 넓힐 것을 제안했다. 시민들의 자율주행 버스 및 합승차 이용을 유도하면서 도로의 녹색 공간과 휴식 공간, 자전거 전용로를 넓혀 보행자 및 자전거 이용자에게 친화적인 차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보행로에는 벤치를 놓아 자율주행 버스와 합승차를 기다리는 동안 좀더 안락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이다. 연구팀은 이렇게 할 경우 윌셔대로의 수송능력이 시간당 2만9600명에서 7만7000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한다.

유엔 인구 예측에 따르면 2050년쯤에는 세계 인구가 100억명에 육박할 전망이다. 인구의 도시 집중도 계속돼 도시화율이 55%에서 66%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덩달아 자동차 대수도 현재 13억대에서 20억대를 훌쩍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들은 모두 도시 교통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요인들이다. 포스코경영연구원에 따르면 세계 주요 메가시티들은 이미 통근시간이 100분에 육박한다. 서울도 하루 출퇴근에 2시간이 넘는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는 당국엔 교통 시스템의 변화를 압박하고, 사람들에겐 자동차 소유에 대한 의욕을 떨어뜨린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은 “교통효율을 가장 높이는 방법은 ‘라이드셰어링’”이라며 “자율주행기술이 완성돼 이런 이동성 서비스와 결합할 경우 자동차산업에 커다란 파급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결국 미래의 교통은 단순히 어떻게 변화해갈지 예측하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원하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는 정책의 문제이다. 리프트의 존 지머 사장은 다가오는 자율주행차 시대를 3차 교통혁명으로 부른다. 장거리 고속 교통수단 시대를 연 1차 철도혁명, 자가용 교통수단 시대를 연 2차 자동차혁명에 이어 자동차 소유가 필요 없는 ‘서비스로서의 교통’ 시대가 열린다는 뜻에서다.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한 자율주행 시대가 사람 중심의 친환경적 도시 거리를 탄생시킬 수 있을지 주목된다.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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