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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암암리 먹는 낙태약… “자판기 허용 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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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유산 유도하는 미프진

원칙적 낙태가 금지된 국내에서

한세트 20만~50만원 ‘불법’ 유통

미국 등 61개국 허용… 중국선 복제약

여성단체 “수술 없고 손상 적어”

반대 측 “자가낙태 만연 부를 것”
한국일보

19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 앞에서 페미당당 회원들이 이른바 '먹는 낙태약'으로 알려진 미프진의 국내 판매 허용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진행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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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했습니다. 잘 부탁드려요.” “유산 확인했어요^^” “은인이세요ㅠ”

19일 주요 포털에서 ‘미프진’으로 검색해서 쉽게 찾을 수 있는 한 홈페이지에는 이런 글들이 빼곡히 올라와 있다. 낙태가 사실상 금지된 국내에서 ‘먹는 낙태약’ 미프진(자연 유산 유도약)의 유통ㆍ판매는 불법이지만, 한세트(9알 정도)당 20만~50만원 가량에 암암리에 판매되는 실정. 식품의약품안전처 관계자는 “올해에만 9,000여개의 관련 사이트를 차단조치 했으나, 끊임없이 생겨나고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의 비영리 단체에서는 일정 금액을 기부 받고 보내주기도 한다.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20만명이 넘어 청와대의 공식 답변이 예정된 가운데, 미프진이 그 상징으로서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여성단체 등은 현실과 동떨어진 낙태금지 때문에 미프진의 불법 유통만 양산하고 있다며, 정식 판매를 요구하고 있다.

종일 강추위가 이어진 이날 서울 중구 정동길 한복판에는 수상한 연보라색 자판기가 등장, 눈길을 잡았다. 미프진을 판매하는 자판기인데, 실제 자판기 속 내용물은 젤리와 비타민, 미프진을 설명하는 소책자. 수십 명의 여성뿐 아니라 남성들도 이를 받기 위에 궂은 날씨에도 자판기 앞에 줄을 늘어서며 관심을 보였다. 대학생 김성하(21)씨는 “몇 달 전 미프진에 대해 알게 되기 전까진 약으로 낙태가 가능하다는 걸 전혀 몰랐다”면서 “국내에도 도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판기를 설치한 페미니즘 활동 단체 페미당당의 우지안 활동가는 “수많은 여성들이 불법으로 임신중절 수술을 받기 보다 안전한 미프진을 구입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반면 낙태 반대론자 측에서는 미프진 판매가 허용될 경우 ‘자가낙태’가 만연해지는 등의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산부인과 의사는 “낙태에 관한 편견이 다른 나라에 비해 큰 상황에서 미프진을 허용하면 손쉬운 낙태 수단으로 오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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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프진은 해외에서는 일반화한 약이다. 1988년 프랑스의 한 제약회사에서 개발했으며, 태아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영양 공급을 억제하고 자궁을 수축시켜 유산을 유도한다. 현재 미국 영국ㆍ호주ㆍ스웨덴 등 61개국에서 판매된다. 유럽에서는 아일랜드, 폴란드를 제외한 대부분의 국가에서 구입이 가능하고, 중국도 1992년부터 제약회사에서 자체적으로 미프진 복제약을 생산하고 있다. 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외국은 임신 9주(70일) 이내라면 의사의 처방을 받아 구입할 수 있다”며 “미프진은 마취 및 수술이 필요 없고 하혈과 함께 배출되어 장기 손상의 우려도 적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미프진 판매는 낙태죄 폐지와 연계될 수 밖에 없다. 우리 법은 성폭행을 통한 임신 등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형법 제269조는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해 불법낙태는 16만건 가량에 이른다. 미프진 판매가 허용되더라도 법이 허용한 일부 낙태가 아니면, 미프진을 복용한 낙태는 불법이 된다.

미프진 판매가 불법인 상황에서, 돈만 받은 뒤 제품을 보내주지 않거나 가짜 제품을 보내는 피해가 발생해도 호소할 곳이 없다. 식약처는 불법 약품 유통 사이트가 발견되면 수사는 경찰에 넘기고, 방송통신위원회에 통보해 사이트를 폐쇄한다. 하지만 구매자를 약 구입 자체만으로 처벌할 방법은 없다. 식약처는 “품질조차 확인되지 않은 낙태약을 구매하기 보다 반드시 전문의의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전혼잎 기자 hoihoi@hankookilbo.com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한국일보

페미니즘 활동단체 페미당당이 19일 서울 중구 정동길에 설치한 미프진 자판기 앞에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강진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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