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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노후 대책으로 샀는데…상가 수익률 4%대로 '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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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인 노후 생활 자금이 필요했던 은퇴자 김모씨는 2014년 모아둔 돈 4억여 원을 경기 광교신도시의 한 상가 점포(전용면적 35㎡)에 ‘올인’했다. 은행 대출 4억원을 끼고 8억5000여 만원에 분양받았다. 김씨는 “분양업자 말처럼 ‘연 수익률 6%’는 아니어도 입지가 나쁘지 않으니 매달 300만원 정도는 꼬박꼬박 들어올 것으로 기대했다”고 말했다. 상가는 2015년 완공됐지만, 김씨가 분양받은 점포는 세입자를 못 구해 2년 동안 비어 있었다. 매달 은행 이자만 120만원씩 나갔다. 이달 초 드디어 세입자(손톱 관리 전문점)를 받았다. 보증금 2000만원에 월세 140만원. 김씨는 “은행 이자를 내면 매달 10여 만원 남는다. 당분간 자녀들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겠다”고 말했다. 김씨가 분양받은 상가 뒤편에서는 또 다른 대규모 상가 공사가 한창이다.

고령화와 저(低)금리 장기화에 따라 최근 몇 년 사이 ‘월세 나오는 부동산’에 대한 수요가 크게 늘었다. 이런 인기를 타고 분양가가 많이 올랐고, 공급도 급증했다. 그러나 최근 상가·오피스텔 시장에 적신호가 커졌다. 19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 전국 분양형 상가 연간 수익률은 5.2%에서 4.4%로 내렸다. 수도권 일부 지역에선 공급 과잉에 따른 공실(空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어렵게 세입자를 구해 월세를 받아도 대출 이자를 막기에 급급한 ‘상가 푸어’까지 등장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분양가가 비싸지니 임대료를 올려서 받으려 하고, 세입자가 외면하니 공실이 생겨서 수익률을 까먹는 악순환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일보

고분양가와 공급 물량 증가로 상가·오피스텔 등 수익형 부동산 시장의 수익률이 예전만 못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19일 경기도 광교신도시에 있는 한 대형 상가에는 세입자를 구하는 ‘임대 문의’ 광고가 곳곳에 걸려 있었다. 인기가 높은 1층 점포도 비어 있는 곳이 많았다./김연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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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4%대로 내린 상가 수익률

지난 14일 경기도 광교신도시 광교중앙역 인근 상가 밀집 지역. 직장인들의 점심때였지만, 거리에 행인의 발길은 뜸했다. 상가 내 식당가는 붐비는 곳이 좌석의 60~70%가 차 있는 정도였고, 손님이 1~2 테이블뿐인 곳도 많았다. 지난해 완공된 한 상가는 대로변에 노출된 1층 상가 24칸 중 18칸이 공실이었다. 기자가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들어가 “상가를 알아보러 왔다”고 하자 “마침 시행사 보유분을 20% 할인해 분양 중인 상가가 있다”며 반겼다. 전용면적 40㎡짜리 점포를 소개하며 6억5000만원이라고 했다. 주변 임대 시세를 감안하면 연 수익률이 3%대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중개업자는 “정상가에 분양받은 분들이 알면 ‘난리’가 나니까 가격은 비밀로 해달라”며 “전망이 좋아 월세는 금방 오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세입자들의 분위기는 달랐다. 광교에서 3년째 설렁탕집을 운영 중인 이모씨는 “월세가 비싸서 (건물주에게) 30% 깎아달라고 요구했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가게를 뺄 생각”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핵심 상권도 고가 분양과 공급 과잉 여파로 수익률이 저조하다는 분석이다.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주변 이면도로에서 2014년 분양한 B빌딩도 분양가 20억원인 점포 월세가 400만원에 머물고 있다. 서울 시내 상가 3.3㎡당 평균 분양가는 2013년 2910만원에서 올해 4171만원으로 4년 만에 40% 넘게 올랐다. 올해 수도권에 공급된 상가 물량은 10월 기준으로 이미 2013년의 177%를 넘어섰다.

◇내년 오피스텔 입주량 7만실 넘어

대표적 수익형 부동산인 오피스텔 시장도 공급량 증가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시세조사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전국 오피스텔 입주량은 최근 3년간(2015~2017년) 연 4만실(室)대에 머물렀다. 하지만 내년에는 7만2666실, 후년에도 7만598실이 입주한다. 특히 수도권에 공급되는 물량이 있다. 내년과 후년 입주량 중 각각 5만실 정도가 수도권 오피스텔이다.

오피스텔 수익률은 2007년 이후 꾸준히 하락세이다. 전국 오피스텔 연 수익률은 작년 말 5.46%에서 지난 9월 5.29%까지 내렸다. 특히 서울은 지난 7월 5% 선이 무너졌고, 9월 기준 4.94%를 기록 중이다.

수익형 부동산의 주 수요층은 은퇴를 전후한 60세 이상 중산층이다. 국세청 조사 결과 전체 임대사업자에서 ‘60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은 42.5%이고, 대상 범위를 은퇴 준비 단계인 ‘50세 이상’으로 넓히면 72.4%에 이른다.

상가나 오피스텔의 수익성 악화가 ‘중산층의 실버 파산(노년기 빈곤층 전락)’ 문제를 가속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심교언 건국대 교수는 “부동산 시장 과열의 이면에는 낮아지는 퇴직 연령과 고령화, 낮은 금리, 열악한 노인 복지 등의 사회문제가 복잡하게 맞물려 있다”이라며 “정부가 세입자는 ‘을(乙)’, 임대사업자는 ‘갑(甲)’이라는 단순 도식으로 부동산 문제에 접근할 게 아니라 부동산 시장 참여자의 다양한 고민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광교·동탄=장상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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