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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두 얼굴’의 폴크스바겐, 미국엔 굽신 한국엔 뻣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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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디젤게이트’ 2년…판매 재개 논란

‘배출가스 조작’ 미국선 거액 배상

현금지급·벌금 포함 34조원 육박

한국선 과징금 고작 141억원에

1인당 쿠폰 100만원 ‘생색내기’

조작 인정않고 당시 사장 출국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 없고

집단소송 증권분야에 한정한 탓

“기업에 유리한 제도개선 시급…

부도덕 수입차 압박 소비자운동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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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게이트’로 국내 판매가 중단됐던 폴크스바겐이 최근 다시 판매를 재개했다. 지난 6일 폴크스바겐그룹 계열인 아우디가 스포츠카 ‘R8 쿠페’를 출시한 것을 시작으로 폴크스바겐도 곧 판매에 나설 움직임이다. 폴크스바겐의 판매 재개는 배출가스 조작 사건 이후 환경부로부터 판매정지 처분을 받은 지 2년 만이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핵심 사안이던 ‘임의설정’(배기가스 저감장치 조작) 문제는 유야무야됐고, 소비자 피해보상도 흐지부지될 지경에 놓였다. 배출가스 조작 사실을 시인하고 천문학적인 피해배상안을 내놨던 미국에서와는 180도 다른 양상이다.

■ 미국선 천문학적 피해 배상하면서…

국내에서 ‘디젤게이트’ 공동소송을 이끌고 있는 법무법인 바른의 하종선 변호사는 이번 사건에 대해 “자동차 역사상 보기 드문 희대의 사기 사건”이라고 꼬집는다. 그는 아우디와 폴크스바겐 차량 소유자 5천여명을 대리해 폴크스바겐 경영진을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벌이는 중이다. 하 변호사는 “우리나라 차량 소유주들도 미국처럼 배출가스 허용 기준을 고의로 어긴 불법 차량을 산 사기 피해자이기 때문에 동일한 배상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폴크스바겐은 지난해 미국에서 소비자 피해 배상에 147억달러를 지불하기로 합의했다. 우리 돈으로 17조원이 넘는 어마어마한 돈이다. 배상액은 차량 소유주 47만5천여명에게 현금으로 지급할 돈과 차량 환매·수리 비용 등으로 구성돼 있다. 또한 폴크스바겐은 미국 정부에 거액의 벌금을 별도로 지불해야 한다.

배상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중이다. 최근 <시엔엔>(CNN)과 <로이터>는 “폴크스바겐이 추가 리콜 비용과 민형사상 지불해야 할 벌금 등으로 배상 규모가 모두 300억달러(약 34조원)로 증가했다”고 전했다. 19일 현재 폴크스바겐이 미국에서 물어야 할 배상 내역을 보면, 디젤 엔진 차량 소유자들의 바이백(환불) 비용으로 100억달러를 지불해야 하는 것을 비롯해 연방정부의 민형사상 벌금 40억3천만달러, 주정부들에게 지급하는 손해배상 합의금 8200만달러, 딜러들의 손해배상금 10억2천만달러, 하드웨어 추가 교체비용 30억달러, 환경오염 제거 비용 및 환경신탁기금 출연 40억7천만달러 등이다.

반면 폴크스바겐은 국내에선 올해 2월부터 자사 차량을 대상으로 100만원어치의 바우처(일종의 쿠폰)를 지급하는 ‘위케어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이 캠페인은 지난해 말까지 국내에 등록된 모든 폴크스바겐 차량이 대상이다. 엄밀히 말하면, 배기가스 조작과는 상관없이 환경부의 인증 취소와 판매정지 처분 이후 불편을 겪고 있는 자사 고객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환경부로부터는 대기환경보전법 위반 혐의로 141억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을 뿐이다. 미국에서의 엄청난 피해 배상 규모와 비교하면 생색내기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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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만한 한국’은 뭉개도 괜찮다?

미국에서 책임을 인정하고 천문학적 규모의 배상안을 내놓은 폴크스바겐이 한국에서 이처럼 차별적인 태도를 보이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 밑바탕에는 ‘한국에선 도의적 책임이 있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미국처럼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같은 강력한 소비자 피해 구제책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소비자 집단소송은 피해자 한 명이 승소하면 같은 이유로 피해를 본 모든 소비자들이 별도 소송 없이 그 판결로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미국 법원은 피해를 끼친 기업에게 엄청난 규모의 징벌적 배상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이번 배기가스 조작 사건으로 집단소송을 당했던 폴크스바겐이 피해 배상 합의안에 서명한 것도 소송에서 지면 엄청난 타격을 입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들이 폴크스바겐으로부터 막대한 배상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은 소비자 피해 구제를 위한 제도적 장치와 정부의 강력한 대응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현재 집단소송 제도가 도입돼 있기는 하지만 증권 분야에만 한정돼 있다. 하 변호사는 “국내 법률 환경은 기업에 유리하고 소비자한테 너무 불리한 구조로 돼 있다. 우리도 징벌적 배상제와 소비자 집단소송제를 도입해 불법행위를 한 기업이 소비자 피해 구제에 적극 나서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으로 문제가 된 폴크스바겐 차량은 한국에선 12만5천대가 팔렸다. 전문가들은 폴크스바겐이 환경 인증을 받으려고 실내에서 이뤄지는 시험 조건에서 정상 작동하고 실제 도로주행에서는 꺼지는 배기가스 저감장치(EGR)를 달았으니 눈속임이 분명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폴크스바겐은 미국에서와 달리 한국에선 배기가스 저감장치의 불법 조작 사실을 지금껏 인정한 적이 없다. 배기가스 저감장치의 소프트웨어 조작을 뜻하는 ‘임의설정’은 법적으로 미국에서만 문제가 되고 한국에선 위배되지 않는다는 게 폴크스바겐의 주장이다.

폴크스바겐이 임의설정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민·형사상 책임 문제와 연관이 있다. 임의설정을 인정하는 것은 불법 조작 사실을 시인한 게 되어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환경부가 리콜 계획을 세 차례나 퇴짜를 놓았음에도 폴크스바겐이 리콜계획서에 ‘임의설정’ 사실을 명기하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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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도덕한 기업, 소비자가 응징해야”

지난해 10월 환경부는 폴크스바겐 쪽에 임의설정과 관련한 응답이 없을 경우 임의설정을 인정하는 것으로 간주한다고 통보한 뒤 리콜 계획의 적정성 검증에 착수했다. 당사자인 폴크스바겐은 끝까지 임의설정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환경부는 임의설정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리콜을 강제하기 위한 궁여지책으로 보이지만 이것으로 폴크스바겐은 ‘임의설정 부담’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 사이 이 사건으로 기소돼 법정에 서게 된 요하네스 타머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 총괄사장은 재판을 받기도 전에 본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본사에서 법무 관련 업무를 맡았던 마커스 헬만이 사장으로 부임했다. 폴크스바겐그룹이 한국을 어떻게 대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동안 폴크스바겐의 판매가 가장 두드러진 시장은 중국과 한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지역이었다. 한국에선 판매정지로 큰 타격을 봤지만 수입차 시장의 흐름을 고려할 때 폴크스바겐 판매가 본격화하면 빠르게 회복할 가능성이 크다. 폴크스바겐은 지난달 전세계에서 55만여대를 팔아 10월 기준으로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디젤게이트 파문에도 아랑곳없이 세계시장에서 판매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수입차 소비 행태의 변화를 제언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자동차학)는 “결국 기업의 그릇된 행태를 바꾸는 건 소비자일 수밖에 없다”며 “개념 있는 소비자운동이 부도덕한 기업을 압박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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