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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국외 명품 못빌리는 국립박물관의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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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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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대고려전을 준비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대마도 도난 불상 압수의 여파로 국외 소장기관들이 명품 대여를 기피하자 대여유물의 압수 면제 법규 신설 등을 추진중이나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사진은 지난해 10월17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기증식 모습. 이영훈 당시 관장(오른쪽)이 기증자인 윤동한 한국콜마홀딩스 회장과 불화를 살펴보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내년은 918년 왕건이 세운 고려왕조 건국 1100돌이다. 이 기년을 맞아 ‘대고려’ 특별전을 준비중인 국립중앙박물관이 속앓이가 심하다. 전세계 흩어진 고려 명품들의 역대 최대 잔치를 구상했는데, 국외 소장기관들이 고개를 돌려 유물 확보를 자신할 수 없는 처지다.

2012년 일본 대마도에서 도난범들이 훔쳐왔다가 압수된 고려 관음상을 수백년 전 일본에 유출된 경위를 밝힐 때까지는 국내에 보관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에 따라 여태껏 돌려주지 않은 게 빌미였다. 일본의 경우, 고려 나전칠기와 불화 명품들을 대부분 소장해온 사찰, 사립 박물관 등이 창구를 아예 닫은 상황이라고 박물관 쪽은 전했다. 세계 최고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빌리려고 소장기관인 프랑스국립도서관과도 접촉했고, 고려와 가장 가까운 교역국이던 송나라 유물들을 다수 소장한 대만 고궁박물원과도 대여를 협의했으나 냉담하긴 마찬가지다. 국외기관들은 한결같이 대마도 사건을 들면서 “약탈, 도난품이라고 안 돌려주면 어떻게 할 거냐” “안전하게 돌려받을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한다는 전언이다.

박물관은 1년여 전부터 현 박물관 및 미술관진흥법에 대여 문화재의 압수·몰수 면제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을 추진중이다. 다수 국외기관들이 대여조건으로 서구 국가들에서 보편화한 압류 면제를 보장하는 법 조항을 들고나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취재해보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박경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박물관과 공조해 관련 개정법안 발의를 준비중이었다. 박 의원은 지난 9월 동료 의원들에게 공동발의 요청문을 보내 의원 14명의 서명을 받았고, 초안도 이미 만들었다. 개정안 초안은, 국민에게 전시할 공익 목적으로 정부, 지자체 공공기관이 외국기관에서 자료들을 대여할 경우 대여 기간엔 다른 법률에 우선해 압류, 압수, 양도 및 유치 등을 금지할 수 있다는 신설조항이 뼈대다. 단, 불법 밀반출 문화재에 대한 유치권을 부정할 경우 유네스코 협약을 위반할 소지도 있어 거짓 등 부정한 수단·방법으로 현지 문화재로 지정받은 경우나 정부 당국이 국익을 위해 요청하는 경우 문화부 장관이 보호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예외조항도 적시했다.

그러나 의원실 쪽은 아직 발의 단계는 아니란 입장이다. 한국이 막대한 문화재가 국외반출된 피해국이고 반환된 수량도 미흡한데, 환수를 가로막는 제도로 비치지 않을까 우려가 있다고 했다. 장현명 보좌관은 “상임위 다른 의원들로부터도 비슷한 지적들이 나왔고, 시민단체들의 반대 입장도 간접적으로 전해 들었다”며 “박물관과 공청회 등을 통해 당분간 계속 의견을 들을 계획”이라고 했다.

개정안이 무산되면, 국외기관에서 최고급 명품들을 다량 대여하는 길은 사실상 막힌다. ‘대고려’전처럼 국내외 소장 문화재가 망라된 초대형 전시의 콘텐츠가 부실해질 것도 자명하다. 박물관 전시도 살리고 국민 정서도 감싸안는 대안은 없을까. 난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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