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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박정희 동상, 그만 좀 세웁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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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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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3일 오전, 서울 상암동 박정희기념관 앞에서 ‘박정희 대통령 동상 기증식’이 열렸다. 서울시 조례에 따라 서울시의 허가 없이 박정희기념재단에서 임의로 동상을 설치할 수 없었기에, 이날 행사는 동상을 제작한 이승만·트루먼·박정희 동상건립추진모임(동건추)에서 재단에 동상을 기증한다는 증서만 전달했다. 행사에서 좌승희 박정희기념재단 이사장은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대통령 기념관에 동상이 없는 데가 없다. 박정희 대통령뿐만 아니라 이승만,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에도 동상이 있어야 제대로 된 나라”라며 서울시가 박정희 동상 설치를 허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정희재단과 보수인사들은 박정희 동상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 박정희 기념물은 차고 넘친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해도 1310억원이 넘는 세금이 여러 박정희 기념물 제작과 관리에 투입됐다. 경북 구미시의 박정희 생가에는 향후 5년간 600억원가량의 예산이 더 들어갈 예정이다.

■ 가장 오래된 동상은 문래공원 흉상

박정희 동상만 해도 지난해에 철원 군탄공원 동상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본관 서쪽에 위치한 동상 2기가 새로 생겼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유력 대권주자로 떠오르던 2011년은 박정희 동상의 전성기였다. 그해 9월, 경북 청도군의 새마을운동 발상지 광장에 오른손으로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한 자세의 박정희 동상이 섰다. 같은 해 11월에는 경기 성남 새마을중앙연수원 내부에 박정희 반신 동상이 섰다. 비슷한 시기 경북 구미시 박정희 생가에 설치된 박정희 동상은 높이만 5m에 달해 독재자 동상을 보는 것 같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정희 생가에서 6㎞가량 떨어진 구미초등학교까지 가는 길은 ‘박정희 등굣길’이라 불린다. 길가에는 소년 시절의 박정희 모습을 담은 동상이 설치돼 있다. 구미초 안에도 1991년 설치된 동상이 또 있다. 2년 전인 2009년에는 경북 포항 문성리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 외부에 의자에 앉은 자세의 동상이 들어섰다. 여러 박정희 동상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서울 영등포 문래공원에 서 있는 흉상이다. 문래공원은 과거 육군 6관구사령부가 있던 자리로, 5·16 쿠데타 당시 박정희 등 쿠데타 세력이 군 지휘를 했던 곳이다. 1986년 문래공원이 개장하면서 일반에 이 흉상이 공개됐다.

동상뿐만 아니라 수십억, 수백억 원의 세금이 쓰인 기념시설도 여럿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고향인 구미시는 박정희 기념시설이 가장 많은 곳이다. 구미시 박정희로(상모동)에 위치한 생가는 박 전 대통령이 1917년 태어나 1932년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1997년부터 박정희 생가 인근에 기념관 계획이 수립됐고, 서울 상암동에 박정희기념관 건립이 확정된 이후에는 생가 주변을 공원화하는 방향으로 계획이 변경됐다. 2013년 생가 인근에 구미시 예산 58억원이 투입된 민족중흥관이 들어선 것을 비롯해, 2013년 초까지 286억원(경북도비 25억원, 구미시비 261억원)이 생가 공원화 사업에 쓰였다. 이후에도 사업은 계속돼 2014년에는 4억3600만원, 2015년 1억9500만원, 지난해에는 4억1772만원이 박정희 생가 주변공원 사업에 쓰였다. 박정희 생가 공원은 앞으로도 꾸준히 개발될 예정이다. 구미시 예산정보에 의하면 박정희 생가 공원사업엔 올해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총사업비 511억원이 쓰일 예정이다. 박정희 생가 공원 관리예산은 매년 11억~13억원 수준이 쓰이다가 지난해에는 30억468여만원이 쓰였다. 올해는 총 22억5400만원가량의 예산이 박정희 생가 공원 관리예산에 배치돼 있다.

구미시 예산에는 박정희 생가 공원과 별도로 새마을운동 테마공원 예산이 있다. 2009년 김관용 경북도지사가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건의해 조성된 새마을 테마공원은 올해 12월 개장 예정이다. 테마공원을 조성하는 데에는 총 870여억원(국비 293억원, 도비 151억원, 시비 426억원)가량이 쓰였다. 구미시 예산정보에 의하면 박근혜 정부 4년간 투입된 예산은 총 339억원이며, 올해에도 테마공원 조성에 구미시 예산 27억원가량이 쓰였다.

■스쳐간 인연만 있어도 기념물 생겨

인근 지자체에도 새마을운동과 관련한 기념관들이 있다. 포항시는 1971년 9월 박 전 대통령이 문성리에서 국무위원들을 대동하고 비교행정회의를 주재한 것을 새마을운동의 시작으로 보고, 문성리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관을 짓고, 일대를 체험공원으로 조성했다. 2011년부터 3년간 총 42억원이 공원 조성에 들어갔다. 올해엔 기념관 운영비용으로 1억8700만원의 예산이 배정돼 있다. 청도군은 1969년 박 전 대통령이 수해재해지역 시찰 도중 청도읍 신도마을을 방문한 것을 새마을운동의 시작으로 보고 신도마을에 새마을운동 발상지 기념공원을 세웠다. 2009년 기념관이 건립됐고, 이후 95억원(국비 45억원, 도비 17억5000만원, 청도군비 32억5000만원)을 들여 테마공원으로 만들었다. 청도군 예산정보를 보면 매년 7억원이 조금 넘는 비용이 새마을공원과 관련해 쓰이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잠시라도 인연이 닿으면 기념시설이 생긴다. 경북 울릉군은 1962년 박정희가 하루 머물다 간 옛 울릉군수 관사에 예산 10억원을 투입해 ‘근대문화유산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전시관 내에는 박 전 대통령의 식사장면을 재현한 밀랍인형이 제작돼 있다. 문경시는 박 전 대통령이 문경심상소학교 교사 시절 묵었던 하숙집 청운각에 시비 17억원을 들여 정비를 해 기념공간으로 만들었고, 매년 4000만원가량을 유지비로 쓴다. 강원도 양구군에는 박 전 대통령이 1955년 7월부터 1년간 육군 제5보병사단장으로 재직했던 시절의 공관을 2009년 1억1600만원을 들여 복원했다. 서울시 중구 신당동의 박정희 가옥 주변도 2013년부터 ‘역사문화공원’이라는 이름으로 개발이 진행 중이다. 박정희 기념공원이라는 구의회의 지적으로 올해는 관련 예산이 전액 삭감됐지만, 자유한국당 소속의 최창식 서울 중구청장은 ‘역사문화공원’ 추진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을 기리는 기념비나 박 전 대통령의 친필이 들어간 기념비, 현판 등은 전국적으로 수백 개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정희 대통령 전자도서관(박정희 기념재단 운영)에서 읽을 수 있는 ‘위대한 생애’에 의하면,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전국에 1200여점의 친필 휘호를 남겼다. 지난해 12월 15일 ‘독재자’ ‘유신망령’이라는 글귀로 훼손된 제주도 5·16도로 기념비는 박 전 대통령의 수많은 친필휘호 중 하나일 뿐이다.

박근혜 정부 동안 계속된 ‘박정희 찬양’에 경북 주민들도 지친 모양새다. 11월 16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박정희기념관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의견이 전체 응답자의 66.5%로 찬성 응답의 2배를 넘었다. 박정희 동상이 새로 들어설 예정인 서울에서는 반대 여론이 68.2%에 달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도 박정희 동상 건립에 반대하는 의견이 54.2%로 절반을 넘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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