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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수출 늘고, 증시 호황인데…지갑 열지않는 소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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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대신 '절약' 트렌드 확산, 연중 세일에도 썰렁한 백화점 …"불안하니 쓰지말자" 日식 장기불황 전초전 해석도]

머니투데이

/그래픽=김다나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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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다니는 자녀 둘을 둔 주부 한수연씨(41·가명)는 대형마트로 장을 보러 가는 횟수를 한 달에 1회로 줄였다. 원래 한씨 가족은 격주로 대형마트나 복합쇼핑몰을 찾아 생필품을 구입하고 쇼핑·외식도 자주 했다. 하지만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에 점점 늘어나는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워 결국 씀씀이를 줄이기로 했다. 한씨는 "요즘은 식재료를 필요한 만큼만 동네슈퍼에서 구입하고 생필품도 모바일앱을 통해 주문한다"며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물가가 무섭게 뛰니 아이들 학원이라도 보내려면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에 다니는 윤호준씨(34·가명)는 몇 달 전 자동차(2010년식 소나타)를 처분했다. 하지만 새 차량은 구입하지 않았다. 출퇴근할 때는 버스·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급할 때는 택시를 탄다. 짐을 옮겨야 하거나 차가 필요한 경우에는 '쏘카', '그린카' 등 차량공유서비스(카셰어링)를 활용한다. 윤씨는 "차를 없앤 직후에는 불편했는데 이젠 지낼만 하다"며 "5년 내에 내집 마련을 목표로 무조건 아끼고 저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의 주요 경제 지표는 호황인데 내수 소비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겉으로 나타나는 경기 지표와 현장의 체감 경기 괴리 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는 것이다. 실제로 경제성장 지표를 견인한 주역은 반도체, 화학, 자동차 등 수출산업이다. 내수 민간소비와 직결되는 일자리·가구소득 상황은 기대치를 밑돌다 보니 백화점 등 유통업계 매출은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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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 늘고, 증시 호황인데…지갑 열지 않는 소비자들=올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7년 3개월만에 최고치인 1.4%를 기록했다. 지난 9월 산업생산, 소매판매, 설비투자 등이 모두 증가했다. 반도체 특수에 힘입어 수출이 크게 늘면서 올해 목표로 내 건 GDP 3% 성장 달성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3.2%로 상향 조정하기도 했다. 주식시장도 최대 호황을 맞고 있다. 종합주가지수(코스피) 2000선을 돌파한 지 10년 만에 2500선을 훌쩍 넘어섰다. 지난해 국정농단 사태, 국제유가 급락 등 여파로 2000선 밑으로 조정을 받은 이후 1년 만에 무서운 기세로 치솟았다.

하지만 이 같은 경제 지표가 내수 소비로는 이어지지 않고 있다. 다양한 대규모 할인행사와 풍성한 경품 이벤트에도 고객들은 좀처럼 지갑을 열지 않았다. 롯데·현대·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 3사도 매출 부진을 면치 못했다. 롯데백화점은 올 1분기 -4.3%, -5.6%, -3.6%로 3분기 연속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이 감소했다. 현대백화점은 올 1분기 8% 성장에서 2분기 -3%, 3분기 -0.3%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올 2분기까지 증가세였던 신세계백화점도 3분기 감소세(-0.7%)로 돌아섰다.

백화점 업체 한 임원은 "경기 회복 가늠자인 의류, 화장품, 명품 등 매출이 꺾여서 회복될 기미가 없다"며 "식당가에만 손님이 몰리니 백화점마다 맛집 유치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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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대신 '절약' 트렌드…고용 불안, 소득도 줄어=
전문가들은 최근의 내수 부진이 한번 뿐인 삶, 나를 위해 아낌없이 쓴다는 의미의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 구매 욕구를 참지 못하고 과소비하는 성향을 일컫는 '지름신 강림' 등 지출을 부추기는 트렌드에 대한 피로감과 관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최근 팟캐스트(인터넷 라디오방송) '김생민의 영수증'이 방송국 정규 방송으로 편성될 정도로 큰 인기를 끈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안승호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허리띠를 졸라 매고 돈을 아끼는 것을 창피해 하지 않는 사회가 됐다"며 "절약이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당장 먹고 살기 위한 생존 문제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최근 일부 젊은층의 소비 트렌드는 단순히 절약을 넘어 절벽에 직면했을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라며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당장 살아야 하기 때문에 싫어도 줄여야 하는 생존 문제가 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수년째 소비시장 트렌드로 자리잡은 '가성비'도 한 요인이다. 유통기업이 내놓은 PB(자체브랜드)를 비롯해 유니클로, 다이소 등 저렴한 제품만 인기를 끌고, 백화점 매장에서 제품을 보고 온라인이나 모바일이나 가격을 비교해 제품을 구매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막연한 불안감에 돈을 쓰지 못하는 일본식 장기불황의 그늘이 시작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고용·소득 등 사정이 좋지 않은 것도 소비 침체와 직결된 문제다. 국내 취업자수는 2016년 2623만5000명에서 올 상반기 2686만명으로 증가했다. 하지만 매달 들쭉날쭉 불안한 고용 상황은 지속되고 있다. 실제로 양질의 일자리로 분류하는 제조업 취업자는 9월 감소했다. 실업률은 2016년 3.7%에서 올 상반기 3.8%로 되레 높아졌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지난해말 486만7817원에서 올 상반기 470만8183원으로 줄었다. 서용주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주요 소비계층인 30~50대 인구가 줄고 있는데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 돈을 못 쓰는 트렌드가 굳어지고 있다"며 "젊은 세대는 취직이 안돼서 돈이 없고, 중년층은 자녀 교육비 부담, 베이비부머는 노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소비에 적극 나서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 교수는 이어 "경제지표가 좋은 것을 실제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경기와 동일시해서는 안된다"며 "금리인상 등 후속조치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송지유 기자 clio@, 김태현 기자 thkim124@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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