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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년 보수단체들의 이른바 관제데모 의혹이 터져 나올 때마다 취재했다. 보수단체 관계자들은 딱 잡아뗐다. 지난 2011년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 사퇴 후 기자를 만난 한 보수단체 대표의 말이 전형이다. “좌파에 비해 보수는 판이 좁다. 누가 어디 돈을 받았다고 하면 바로 소문이 퍼진다. 물론 국정원이 뒤를 봐준다고 과시하는 사람도 있다. 어디나 그런 것이 있게 마련이지 않나.”
“보수는 배고프다.” 항상 듣는 말이었다. 문화권력을 장악한 ‘좌파’에 비해 ‘보수우파’에 대한 지원이나 후원은 없다고 하소연했다. 다단계 회사를 운영하는 회사 회장의 개인적 출연, 수도권 유력 학원 원장, 그리고 개신교 대형교회 목사. 그들로부터 들을 수 있었던 보수우파를 돕는 ‘유력 독지가’들이었다.
가장 크고 합법적인 지원은 전경련으로부터 나왔다. MB정부의 청와대 전 핵심 관계자는 기자에게 “전경련 지원금을 유심히 살펴보면 배후에 국가기관이 있을 수 있다”고 귀띔했었다. 영수증을 안 남기는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전경련 지원금의 외피를 쓰고 보수우파 단체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원 관련 15개 주요 사건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정원의 보수단체 지원은 “2009년 청와대, 구체적으로 정무수석실 시민사회비서관의 요청에 따라 소위 ‘좌파의 국정 방해와 종북 책동에 맞서 싸울 대항마로서 보수단체 역할 강화’를 위해 보수단체 육성방안을 마련했고, 공기업부터 시작해 2010년에는 사기업, 2011년에는 보수 인터넷매체를 추가해 확대했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010년에는 S급에서 D급까지 18개 단체를 지목해 32억여원을 지원했고, 전경련뿐 아니라 삼성, 현대차, LG, SK, 한화 등 사기업과 수자원공사, 한수원, 도로공사, 석유공사, 산업은행 등 공기업까지 동원되었다는 것이다.
■ 마중물 여성연대, 하람꾼…는 뭐하는 단체?
문건을 보다 보면 종북좌익척결단, 자유청년연합, 국민행동본부 등 그동안 관제데모 등으로 악명을 떨쳐온 단체들과 함께 의외로 생소한 이름의 단체들 이름이 눈에 띈다. 구체적으로 이해 12월 13일 작성된 ‘보수단체·기업체 추가 매칭 추진 결과’를 보면 포스코는 ‘노노데모’와 ‘하람꾼’을, LG는 ‘탐미주의클럽’이라는 단체를 지원한 것으로 되어 있다. STX와 연결시켜준 마중물 여성연대라는 조직도 마찬가지다. 일단 노노데모는 단체가 아니다. 포털 네이버에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시위 비판 목적으로 만들어진 온라인 카페다. 탐미주의클럽도 마찬가지다. 류근일 조선일보 논설위원의 기고 활동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인터넷 카페다. 오프라인에서 행사를 하더라도 따로 많은 운영비는 들어가지 않는다. ‘하람꾼’은 댄스팀이다. 유튜브 등에 남아있는 이들의 활동을 보면 2010년 11월, 북한의 3대 세습을 비판하는 거리 퍼포먼스를 한 기록이 있다. 2012년 대선 때는 청년애국단체 퍼포먼스팀이라는 이름으로 박근혜 선거운동 주변에서 공연한 기록도 있다. 이후에도 애국단체총연합회가 2013년 8월 14일 개최한 ‘종북 반역세력 심판 8·15 국민대회’에 참석해 공연도 펼쳤다. 우연히도 11월 13일 홍대앞 길거리 버스킹에서 여성 관객의 머리를 잡는 퍼포먼스로 논란이 일어났다. <주간경향>은 이 단체의 임병두 대표와 11월 17일 통화해 국정원과 포스코의 지원 여부를 물었다. 그는 “더 이상의 언론 대응은 하지 않기로 했다”며 전화를 끊었다.
STX에서 지원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 마중물 여성연대는 이춘호·김애실·이영애·박경아씨가 공동대표 체제로 지난 2011년 3월 24일 프레스센터에서 창립식을 열고 출범했다. 이 단체의 홈페이지 상의 ‘우리소식’란은 지난 2014년 8월 12일 ‘산케이신문의 저열하고 무책임한 펜 놀림에 대한 성명서’라는 글을 끝으로 중단되어 있다. 글은 그해 8월 박근혜 대통령 배후에 정윤회씨가 있다는 조선일보 발 ‘풍문’을 칼럼에 담은 가토 다쓰야 한국특파원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이 단체의 활동을 보면 2012년 대선 시기에 활동이 집중되어 있다. ‘문재인 후보의 박 대표 여성 대표성 비난에 대한 성명서’(2012.11.1.), ‘엽기적 민중미술가 홍성담 사죄 촉구 성명서’(2012.11.22.)에서 보듯 특정 정파에 쏠려 있는 사실상의 정치 외곽단체 활동을 한 것으로 보인다.
“10여명 정도 모여 오프라인 미팅을 한 적은 있지만, 각자 회비를 내서 하는 수준이었다. 어디 후원을 받을까 생각을 해본 것은 사실이다. 전경련에 후원을 받을 수 있는지 문의를 했지만 탐미주의클럽이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지원 자격이 안 된다는 답만 받았을 뿐이다.”
역시 11월 17일 통화한 류근일 전 조선일보 논설주간의 말이다. 그는 “전경련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LG그룹으로부터 지원받은 적은 없는데 왜 국정원 보도자료에 ‘탐미주의클럽’이 언급되어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매칭을 했다면 누군가 류근일 명의의 계좌에 돈을 송금하고 그것을 받아 써야 하는데 그런 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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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과 통진당도 구분 못한 국정원
국정원 개혁위가 발표한 자료에는 블랙리스트 명단도 있다. ‘블랙리스트 작성 관여사건’에는 ‘문예계 주요 左 성향 인물 현황(249명)’이라는 문건이 붙어 있다. 눈길이 가는 대목은 특이사항이다. 이 리스트의 29번으로 거론되어 있는 안건모 작가에게 붙은 ‘특이사항’은 ‘민주노총 주관 독후감 공모전의 심사위원’이다. 쉽게 얻을 수 없는 ‘정보’다. 하지만 어이없는 이유도 존재한다. 235번으로 등장한 방송인 김구라씨의 경우 ‘통진당 후보 김용민 지지 인터넷 동영상 출연’으로 이유가 되어 있다. 팟캐스트 <나는꼼수다> 등의 활동으로 알려진 김용민씨는 통합진보당 후보가 아니라 민주당 후보였다. 119번으로 거론된 작곡가 윤민석씨(본명 윤정환)는 ‘從北카페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조직원’으로 설명되어 있다. 1990년대 초 공안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다녀온 뒤 윤씨는 어떤 조직활동도 한 적이 없다. 게다가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는 조직이 아니라 인터넷 카페였다. 윤씨에게 물어봤다. “하도 황당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라 주장이 궁금해 카페에 가입했을 뿐, 게시물을 올리거나 어떤 활동도 한 적이 없다”는 것이 그의 답변이다. 궁금한 것은 국정원이 윤씨와 같은 단순가입자 정보를 어떻게 알았느냐는 점이다. 포털 측으로부터 해당 카페 가입자 명단을 건네받았거나, 윤씨의 포털 아이디에 대한 불법해킹 사찰을 벌였을 가능성이 높다. 카페가 개설되어 있던 네이버 측은 <주간경향>의 문의에 “폐쇄된 사이버민족방위사령부 카페와 관련해 ‘멤버리스트’를 국정원이나 사법기관에 전달한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국정원 개혁위원회 공보간사를 맡고 있는 장유식 변호사는 “국정원 지원단체, 이른바 화이트 리스트의 경우 지원을 뒷받침하는 다른 문건까지 다 확인한 것은 아니다”라며 “보고과정에서 직원이 자기의 성과 내지는 기여를 과장 내지는 부풀려 보고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보도자료의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는 ‘탐미주의클럽’ 등의 주장에 대해 국정원 측은 11월 17일 <주간경향>에 보낸 회신에서 “보도자료 이외에 추가적으로 답변할 수 있는 사항은 없다는 것이 현재의 공식입장이다”라고 밝혀왔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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