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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박수찬의 軍] 한미동맹이라도 美 무기 ‘묻지마 구매’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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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기가 가장 훌륭하다. 수십억 달러 규모의 장비를 (한국이 미국에) 주문할 것이고, 이미 승인된 부분도 있다.”

지난 7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제 무기 판매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사업가 출신답게 한국 방문 일정 내내 미국제 무기의 성능을 언급한 트럼프 대통령의 세일즈에 문재인 대통령도 ”최첨단 군사정찰자산 획득과 개발을 위한 협의도 즉시 개시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최첨단 무기 도입 및 개발 발언에 대해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핵추진 잠수함과 관련된 부분도 있고, 정찰자산도 포함돼 있는데 향후 미국과 긴밀하게 협의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한미 정상회담 결과가 발표되자 군 안팎에서는 미국으로부터 도입하게 될 첨단무기가 어떤 것인지를 놓고 다양한 주장이 제기됐다. 우리 군이 도입할 예정인 F-35A 스텔스 전투기나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UAV)는 물론 SM-3 함대공미사일이나 핵추진잠수함까지 미군이 운용중인 첨단무기 대부분이 포함됐다. 하지만 우리나라가 실제로 도입이 가능한지, 우리 군에 꼭 필요한 것인지, 성능 대비 가격 등의 측면에서 대체할 무기가 있는지 등에 대한 고민 없이 ‘묻지마 도입’식의 무기 구매를 요구하고 밀어붙일 경우 비싸고 쓸모없는 무기만 떠안고 재정부담만 가중시킬 우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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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 오후 청와대 본관에서 정상회담에 대한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남제현 기자


◆실제로 들여올 수 있는 첨단무기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나라와 일본,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미국제 무기를 구입하라”는 말을 여러 차례 반복했다. 무기 구매 요구를 직접적으로 하지 않는 기존의 미국 대통령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미국제 첨단무기들의 사정을 살펴보면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도입 대상 장비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조인트 스타즈(JSTARS)가 대표적이다. 9~12㎞ 상공에서 250㎞ 범위 안의 지상 이동 표적 600개를 동시에 탐지할 수 있어 북한군 탄도미사일이나 야전 부대의 이동 등을 정밀하게 감시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 군이 들여올 만한 조인트 스타즈가 없다는 것이다. 플랫폼인 B-707 항공기는 생산이 중단됐다. 합성개구레이더(SAR)를 비롯한 전자장비도 노후해 미군의 작전요구를 제대로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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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군 E-8 조인트 스타즈 정찰기가 훈련을 위해 비행하고 있다. 노스롭 그루먼 제공


미국 공군은 조인트 스타즈를 대체할 장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화된 조치는 없다. 방산업체인 보잉은 B-737에 레이더를 장착한 정찰기를, 록히드마틴은 봄바디어의 G-6000 비즈니스 제트기에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를 장착한 항공기를, 노스롭 그루먼 걸프스트림 G-550에 레이더를 탑재한 정찰기를 제안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공군은 F-35나 글로벌호크 등 기존 장비들의 센서를 통합한 정찰체계가 더 효율적인지를 따져 본 뒤 사업을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대체기 사업 추진 여부도 불투명하다.

미군이 사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도입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미군이 쓰지 않는 무기를 구매할 경우 운영유지비가 과도하게 소요되어 운용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보잉이 수출용으로 개발한 E-737 조기경보통제기를 도입한 우리 공군의 경우 장비유지비가 2012년 9억1800만원, 2013년 24억5300만원에서 2014년 581억5900만원, 2015년 619억원으로 크게 상승했다. 군 관계자는 “공군이 E-737 조기경보통제기 운영 문제로 고심하는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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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공군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가 비행을 마치고 활주로에 착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추가 도입 가능성이 제기되는 글로벌호크 무인정찰기(UAV)도 적지 않은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우리 군은 2018~2019년 4대를 도입할 예정이다. 하지만 도입 직후 실질적으로 대북 정찰임무를 얼마나 수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글로벌호크 3대를 도입할 예정인 일본에서는 지난해부터 글로벌호크의 운영유지와 작전운용 측면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어왔다. 주요 부품 생산이 종료되어 대체 부품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비용이 상승해 예산을 초과하는데다 기상조건이 나쁜 고고도를 비행하기 때문에 정비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일주일에 2~3회만 비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기체 정비를 미국에서 진행해야 하고 수집된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중 일부를 비밀유지라는 이유로 미국에 맡기는 등 제약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일본 언론들은 보도했다.

◆‘비용 폭탄’에 체계적인 전력증강 저해 우려

군 전력증강 측면에서 볼 때 미국제 첨단무기의 ‘묻지마 도입’은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안겨준다. 우리 군이 전력증강 사업을 추진할 때, 각 군의 소요를 합동참모본부가 종합 검토해 5년 단위의 국방중기계획을 수립하고 그에 따라 전력증강사업을 추진한다. 국방중기계획은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분석하고 우리 군이 보완해야 할 분야를 도출, 우선순위를 매겨 사업 추진을 계획적으로 진행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런데 정치적인 이유로 갑작스레 대규모의 무기도입사업이 추진되면 국방중기계획상의 우선순위가 흐트러진다. 총예산은 늘어나지 않는데 예상치 못한 단기적 성격의 지출이 발생했기 때문에 원래 계획됐던 사업은 뒷전으로 밀린다. 결국 정말로 필요한 무기도입은 뒤로 밀리고 정치적으로 ‘생색’을 낼 수 있는 사업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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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제 첨단무기 도입에 소요되는 막대한 비용 조달은 국방예산과 전력증강계획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gettyimagesbank 제공


이는 수년에 걸쳐 군 전력증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국방예산의 대폭 증가가 어려운 상황에서 ‘정치적 생색’을 내기 위해 사용되는 ‘편법’이 할부금 집행방식 변경이다. 무기도입이 결정되면 전력화가 완료되는 시점까지 대금을 나누어 생산업체에 지불한다. 이같은 방식을 이용해 사업 초기에는 매우 적은 액수만 지불하고 차기 정부에서 본격적인 지출을 진행하도록 계약조건을 바꾸는 것이다. 일종의 ‘폭탄돌리기’다.

‘폭탄돌리기’의 폐해는 이미 현 정부에서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국회 국방위 소속 김종대 정의당 의원이 방위사업청에서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박근혜 정부에서 시작한 획득사업 중 현 정부가 부담해야 할 잔금 규모가 큰 전술정보통신체계(TICN), 한국형 전투기(KF-X), 공중급유기, 장거리지대공유도무기(L-SAM) 등 11개 사업의 총지출비용은 31조 6604억원이다. 이 중에서 박근혜정부는 14%에 불과한 4조 5862억원의 예산을 집행한 반면 현 정부는 60%에 달하는 18조 9647억원의 잔액을 부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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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애리조나주 루크 공군기지에서 미국 공군 소속 F-35A 전투기가 이륙하고 있다. 미 공군 제공


2012~2021년에 진행되는 F-35A 도입은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한지 2년이 지난 사업을 박근혜 정부가 이어받아 4년간 총사업비의 25%인 1조 9443억원을 집행했다. 현 정부는 총사업비의 70%에 달하는 5조 4458억원을 지출해야 한다. 2015~2023년까지 진행되는 TICN 사업 총사업비 5조 3795억원 가운데 박근혜정부에서 집행한 1조 2421억원을 제외하고 현 정부는 총사업비의 77%에 달하는 4조 1374억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김 의원은 “박근혜 정부 임기 동안 집행한 예산액에 비해 차기 정권에 할당한 사업 잔금 규모가 너무 크다. 차기 정부가 현 시점에 필요한 전략적 투자를 어렵게 하는 것은 안보를 위한 자세라고 보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수십억 달러의 첨단무기 도입을 추진할 경우 현 정부는 박근혜 정부가 썼던 ‘편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 이는 2020년대 초 북한 위협 패턴의 변화에 따른 군 당국의 대응을 어렵게 할 수 있다. 국회의 예산권을 침해하면서 다른 사업 예산을 전용하는 과거의 관행이 반복될 수도 있다. 적폐청산을 기치로 내건 정부가 과거 정부의 폐해를 답습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가 도입하는 첨단 무기 중에는 미국제가 가장 많다. 한미 동맹에 따른 상호운용성을 고려한 조치다. 첨단 무기 도입이 군 전력 유지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되는 전력증강사업에 영향을 미치면서까지 ‘끼어들기’식으로 급박하게 추진되는 무기 도입 사업은 비싸고 불필요한 무기만 군에 떠넘기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장비 운영유지나 예산지출, 전력증강 우선순위 등 광범위한 분야에 악영향을 미친다. 철저한 사전 검토를 통해 미국 이외에 유럽 등 제3국에서도 구매할 수 있는 장비인지, 국내 개발은 가능한 것인지, 국방예산에 미치는 영향을 어느 정도인지 등을 검증하고 법률에 따라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손님이 왕”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해야 ‘글로벌 호구’라는 오명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정부와 군은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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