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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독립형 일자리’의 확산인가? ‘시간제 일자리’의 양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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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토요판] 뉴스분석 왜?

‘긱 이코노미’ 시대의 명암

에어비앤비·우버 등 공유경제 확산

수요자, 싼값에 원하는 서비스 이용

공급자, 일하는 시간 통제 이점 누려

디지털플랫폼의 긍정적 측면 해석돼

세계경제 회복해도 체감도 떨어져

고용률 높아도 임금 오르지 않은 탓

비자발적 시간제 증가가 주된 원인

“새로운 사회구조 디자인 고민해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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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유’라는 이름을 내건 서비스가 전세계적으로 널리 확산되고 있다. 정해진 공간에서 정해진 시간에 일하며 안정적인 수익을 거두는 전통적 형태의 경제구조는 빠르게 허물어지는 중이다. 최근 들어 이런 현상을 일컫는 ‘긱 이코노미’란 용어도 등장했다. 하지만 긱 이코노미엔 어두운 그림자도 분명 존재한다. 긱 이코노미 시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여행을 좋아하는 A씨는 요즘 외국여행을 계획할 때 주로 에어비앤비에서 숙소를 찾아보곤 한다. 호텔보다 저렴한 가격으로 현지의 가정집 문화를 느낄 수 있고, 외식이 쉽지 않은 아이의 식사도 직접 조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행지에 도착해 공항과 숙소 사이를 이동할 때에는 주로 우버를 이용한다. 처음 이용할 땐 기사를 믿을 수 있나 조금 걱정스러운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한두번 이용하다 보니 이용도 편하고 가격도 싸 외국에서는 택시보다 우버를 더 자주 찾게 되었다.

최근에는 청소 도우미 연결 사이트를 통해 가끔씩 밀린 집안 청소를 맡기고 있다. 예전에도 가사 도우미들은 많이 있었지만 한번 계약하면 일정 기간 계속 고용해야 하는 게 부담스러워 이용이 꺼려지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고민이 사라졌다. 시간당 만원이 조금 넘는 비용으로 그때그때 필요할 때만 시간제로 쓸 수 있어서다. 소개자를 거치는 것보다 이용 후기와 평점을 보면서 적당한 도우미를 골라 쓰는 게 A씨에겐 더 편하게 느껴진다.

디지털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이처럼 재화와 서비스를 ‘공유’하고 ‘연결’해주는 서비스가 늘어나고 있다. 이에 따라 고용·노동 관계도 변화하는데, 이런 경제 구조를 두고 최근 ‘긱 이코노미’라는 용어가 널리 퍼지고 있다.

필요 따라 임시직에게 일 맡기는 경제 형태

긱 이코노미란 그때그때 발생하는 필요에 따라 임시직을 섭외해 일을 맡기는 경제 형태를 말한다. 1920년대 미국 재즈 공연장 주변에서 필요할 때마다 연주자를 섭외해 단기 공연을 진행하던 ‘긱’(gig)에서 유래한 용어다. 앞서 예로 든 것처럼 필요할 때 차량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 자기 집을 단기간 내놓고 세를 받는 ‘에어비앤비’, 영국판 ‘배달의 민족’이라고 불리는 음식 픽업 서비스 ‘딜리버루’ 등이 모두 긱 이코노미 현상으로 언급되는 사례들이다.

어떤 경제 구조든 많은 사람에게 빠르게 확산되기 위해서는 수요자와 공급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한다. 긱 이코노미의 경우 수요자의 입장에서는 조금 더 싼 가격으로, 자신에게 적합한 것을 직접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디지털 플랫폼을 이용하기 때문에 전화를 걸거나 직접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정서적’ 수고도 없다. 무엇보다 기존 서비스보다 ‘싸다’는 점이 높은 호응의 비결이다.

공급자의 측면에서도 매력적인 부분이 많다. 우선 일하는 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고,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자신이 이용하지 않는 때에만 ‘공유’를 허용하고, 내가 일할 수 있는 시간에만 노동을 공급하면 된다. 한 조직에 속하는 형태가 아니어서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계약을 맺는 것도 가능하다. 그 때문에 육아와 일, 학업과 일을 병행하는 등 시간을 쪼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노동 형태다.

긱 이코노미는 남아도는 시간과 재화를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해 서로에게 ‘윈윈’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매우 합리적으로 보인다. 특히 조직에 얽매이는 것을 꺼리는 젊은층이 늘어남에 따라 자유롭게 시간을 선택해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자율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디지털 플랫폼이 발달해 일감과 노동의 연결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전제에서다. 이런 점들 때문에 긱 이코노미는 ‘독립형 일자리 경제’의 확산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한발짝만 더 들어가 보자. 만약 공급자가 ‘남아도는’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찾을 수 있는 일감이 이것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남는 시간에 배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배달 말고는 남는 일거리가 없는 상황이라면? 그래도 긱 이코노미는 과연 ‘독립형 일자리’로 추앙받을 수 있을까?

최근 세계경제에 드리워진 근심은 긱 이코노미의 확산이 그리 아름답지만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2017년 세계경제는 선진국을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인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세계경제를 앞장서 이끌고 있는 미국과 유럽의 경기 호조가 이어져 두 지역 모두 선진국에서는 높은 수준인 2% 이상의 성장률을 보였다. 이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는 세계경제가 2017년에는 3.6%, 2018년에는 3.7%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록 금융위기 이전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최근 2~3년의 경험과 비교하면 꽤 높은 수치다.

그런데 정작 경제는 회복되고 있다는데 그 체감은 높지 않아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2017년 경제성장률이 3%대를 회복한 것으로 예측되고 있지만 회복의 온기가 잘 느껴지지 않는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경기 회복 속에서도 임금이 크게 오르지 않는 것이 체감 지체의 주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실업률 통계는 낮게, 고용률 통계는 높게

경기가 회복된다는 말은 기업 투자가 개선되면서 고용이 늘고 임금도 상승하면서 점진적으로 물가도 함께 오르는 것을 일컫는다. 그래서 실업률이나 고용률 등과 같은 고용지표와 물가지표 등을 함께 살펴보면서 경기 회복 여부를 판단한다. 미국과 유럽에서 금융 양적완화 정책을 정상화하거나 금리를 다시 올리기 위해 경제 상황을 살펴볼 때에도 이 두 지표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런데 최근 세계경제에서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 가운데 하나는 실업률 등 고용지표는 개선되는데 물가가 따라 올라가는 것이 다소 미진하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고용지표가 좋아지면 물가도 바로 따라 올랐는데, 과거에 비해 이 속도가 떨어져 경기 회복이 불완전해 보인다는 얘기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여러 분석이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노동생산성 증가세가 둔화되면서 기업의 임금 상승 여력이 제약되었기 때문이란 해석도 있다. 예전보다 기업 생산성이 크게 향상되지 않아 임금이 따라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또 앞으로 물가가 얼마나 오를 것인가 하는 ‘기대 인플레이션’이 좋아야 고용도 늘고 물가도 따라 오르는데, 저물가가 지속되면서 기대 인플레이션이 낮아졌기 때문이란 분석도 있다.

그 가운데 최근 들어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의 증가’가 임금 상승 둔화의 주범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국제통화기금 기준에 의하면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란 정규 노동자만큼 일할 의지는 있으나 주당 30시간 미만을 일하는 노동자들이다. 즉, 구직활동을 꾸준히 하면서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이런 부류에 속한다.

그런데 이들은 ‘취업자’로 간주돼 실업률 추계에서 빠진다. 이런 불완전 취업자들이 늘어난 탓에 ‘실업률’이 현실보다 낮게 집계돼, 정확한 고용 상태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수입을 목적으로 주당 1시간 이상 일한 사람을 취업자로 본다.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기준 때문에 현실보다 실업률 통계는 낮게, 고용률 통계는 높게 집계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와 같은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의 임금은 정규직 노동자보다 상대적으로 낮기 마련이다. 일하는 시간이 짧아 총액으로도 적지만 시간당 임금도 대부분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이 낮은 시간제 노동자가 늘면서 임금 상승률이 둔화되고, 임금이 오르지 않으니 구매력이 떨어져 물가 회복도 더뎌지고 있다는 얘기다.

국제통화기금의 최근 연구에선, 금융위기 이후 실업률이 크게 떨어진 국가일수록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의 비율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즉 실업률을 낮춘 비결이 정규직 일자리를 늘려서가 아니라 일을 적게 하는 시간제 노동자들을 늘려서 나타난 결과라는 것이다. 또한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들의 비율이 늘어날수록 그 국가의 평균 임금 상승률도 떨어졌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당 36시간 미만 일하는 노동자를 ‘시간제 노동자’로 정의한다. 올해 8월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시간제 노동자는 주당 평균 20.4시간 일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간제 노동자의 비율은 꾸준히 늘었다. 2003년 전체 임금노동자 가운데 6.6%에 불과했는데 2017년에는 13.4%로 두 배 이상 늘었다. 7명 가운데 한 명은 시간제 노동자인 셈이다.

이처럼 시간제 노동자가 늘어난 것은 기업이 고용을 더욱 유연하게 가져가기를 원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향후 경기에 대한 전망이 불투명하니 정규직 채용보다는 시간제로 필요 인력을 그때그때 공급받고자 한 것이다. 물론 취업자들의 자발적 선택이었을 가능성도 있긴 하다. 실제로 프로젝트 단위로 운영되는 특정 산업에서는 이와 같은 형태가 더 일반적이기도 하다. 긱 이코노미가 확산됨에 따라 이런 시간제 일자리의 기회가 더 늘어나고 있는 것도 그런 요인 가운데 하나다.

이와 같이 일자리와 일이 분리되는 추세를 무작정 나쁘다고 볼 수만은 없다. 선진국이 될수록 서비스 중심 경제로 변모되기 마련이고, 기존 제조업 중심의 풀타임 노동 형태도 변화될 수밖에 없다. ‘긱 이코노미’는 디지털 플랫폼의 발전 속에서 이런 산업적 변화를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긱 이코노미, 현재의 사회보장체계와 안 맞아”

오히려 고민해야 할 지점은 이런 변화에 맞춰 사회의 어떤 점들이 보강되어야 할 것인가가 되어야 한다. 긱 이코노미 체제에서는 소득이 일정하지 않아 경제적으로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원활하게 일을 구할 수 없을 경우 당장 생계가 위기에 빠질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기업이 제공하는 각종 사회보험 혜택도 없다. 기업이 원하는 유연함을 보장하는 만큼 노동자들의 위험을 보장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국제통화기금에서는 “긱 이코노미가 풀타임 노동자를 중심으로 설계된 현재의 사회보장체제와 맞지 않는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퇴직금도 연금도, 건강보험도 없는 자율 노동 계약 제도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사회안전망도 다시 설계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경제 구조가 바뀌면 사회 구조 디자인도 당연히 바뀌어야 한다.

김윤지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연구위원

한겨레

비자발적 시간제 노동자의 증가는 긱 이코노미의 어두운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진은 2013년 4월 알바연대 회원들이 서울 마포구 대흥동 한국경영자총협회 앞에서 연 기자회견 모습.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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