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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잊혀져서는 안되는 세월호 참사 13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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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311일째인 16일 오후 목포신항에 세월호 선체가 옆으로 누워 있다. 세월호 선체 수색이 사실상 마무리된 가운데 미수습자 가족들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18일 목포신항을 떠나겠다고 밝혔다.2017.11.16/뉴스1 © News1 박준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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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뉴스1) 전원 기자 = 제주도 수학여행길에 나섰던 경기 안산 단원고 학생과 교사를 포함해 304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

침몰 후 3년7개월의 세월이 흘렸지만 아직도 미수습자 5명은 여전히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가 침몰한 뒤 진도와 목포에서 이를 지켜보던 미수습자 가족들도 침몰 1313일 후인 18일 추모식을 통해 돌아오지 못한 가족들을 떠나 보내고, 그 자신들도 목포신항만을 떠난다.

이에 침몰에서부터 미수습자 5명의 추모식까지 국민들과 함께 울었던 세월호 참사의 기록을 되돌아봤다.

봄볕이 무척이나 포근했던 2014년 4월16일 오전, 텔레비전 속보로 전해진 세월호 침몰사고는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렸다.

15일 오후 9시, 단원고 학생과 교사, 일반인 등 승객 476명을 태우고 인천항을 출항한 세월호는 12시간 만인 16일 오전 8시50분 전남 진도군 조도면 부근 해상에서 침몰했다.

'배가 침몰하고 있다'는 학생들의 구조전화를 받은 해경 선박이 사고해역에 도착했지만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을 믿고 구조를 기다리던 승객 대부분은 배에서 탈출하지 못했다.

한때 "승객 모두 구조됐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국민들은 잠시 안도하기도 했으나 이는 잘못된 보도로 알려졌고, 결국 476명의 승객 가운데 살아남은 이는 172명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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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침몰 당시 모습.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2014.4.16/뉴스1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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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의 책임을 물어 사고 한 달 뒤인 5월 해경 해체가 발표됐고 세월호 운영선사인 청해진해운에 대한 본격 수사가 진행됐다. 승객들을 놔두고 먼저 배에서 탈출한 세월호 이준석 선장은 살인죄로 무기징역이 확정돼 복역 중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여야 합의로 통과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구성돼 활동을 벌였지만 사고원인 규명 등은 여전히 밝혀져야할 진실로 남아있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2015년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진도 팽목항에서 대국민담화를 통해 세월호 인양을 약속했고, 그 해 8월 정부가 중국 인양업체인 상하이샐비지와 계약해 본격적인 선체 인양작업에 들어갔다.

당시 상하이샐비지는 2016년 7월까지 선체 인양을 완료하겠다고 밝혔지만 기상여건 등을 이유로 인양은 수차례 지연되면서 미수습자 가족들의 기다림은 3년 가까이 이어졌다.

2016년 6월12일 세월호 '뱃머리 들기'를 시도했지만 실패로 끝나면서 인양작업은 하염없이 지연되는 듯 했으나 대통령 탄핵 등으로 국내 정국이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인양작업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올해 들어 해수부가 세월호 인양을 3월19일 시도하겠다고 발표했다가 3시간 만에 취소하는 해프닝을 겪기도 했지만 3월22일 진행된 시험인양이 성공적인 결과를 내놓으면서 곧바로 본인양에 들어갔다.

세월호는 침몰 1073일째인 23일 오전 3시45분 배의 좌우 균형을 잡아주는 스태빌라이저가 육안으로 관측되면서 선체를 물 밖으로 내보였다. 침몰 1075일째인 25일 오후 9시15분 반잠수선에 선적되면서 전체 모습을 드러냈다.

반잠수선에 실린 세월호는 31일 목포신항만에 접안했고, 선체를 실어 육상으로 옮기는 작업에는 특수운송장비인 모듈트랜스포터가 600대가 투입됐다.

3차례의 하중부하 테스트를 거쳐 4월9일 오후 1시부터 반잠수선에서 육상으로 운송이 시작됐고, 침몰 1090일째인 이날 오후 5시30분 세월호 선체는 육상으로 완전히 올라왔다.

모듈트랜스포터에 실려 있는 선체를 받침대에 올려놓는 작업이 11일 오후 4시 마무리되면서 세월호는 참사 발생 1091일 만에, 2015년 8월7일 인양작업에 착수한지 613일 만에 인양작업은 완전히 마무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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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현장수습본부가 화물칸 내부 사진을 15일 공개했다. 사진은 지난 9일 수습본부 관계자들이 촬영한 화물칸 C 데크 구역의 모습으로, 승용차와 소형 트럭, 컨테이너들이 엉망으로 뒤엉켜 있다. (세월호 현장수습본부 제공) 2017.6.15/뉴스1 © News1 남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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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간 진행된 선체 외관 세척이 3주기를 하루 앞둔 15일 끝나면서 진흙에 덮여있던 '세월'이라는 선박이름도 3년 만에 선명하게 드러났다.

이후 미수습자를 찾기 위해 세월호가 침몰해있던 해역과 세월호 선체 내부에 대한 수색이 이어졌다.

지난 5월 5일 오전 11시36분쯤 세월호 침몰해역에서 유해 1점이 처음 수습됐었다.

국과수 DNA 검사 결과 미수습자인 단원고 체육교사 고창석씨로 밝혀지면서 황양의 시신이 수습된지 931일만에 296번째 수습자가 확인됐다.

이후 5월 13일 세월호 4층 선미 좌현에서 미수습자인 단원고 조은화양의 유해가 발견됐고, 또 5월 16일 오전 8시30분쯤 선체 3층 객실 중앙부 우현 측에서 단원고 허다윤양의 유해가 발견되기도 했다.

5월 22일 오후 4시40분쯤 세월호 3층 선미 좌현쪽에서 수습된 유해는 미수습자인 이영숙씨로 확인됐었다.

이후 세월호 선체 수색도 기관실까지 거의 마무리 돼 갔지만 나머지 미수습자 단원고 학생 남현철·박영인 군, 양승진 교사, 권재근씨와 아들 혁규군 등 5명의 유해는 발견되지 않았다.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세월호를 직립으로 세워 조사를 진행하면서 수색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던 5명의 미수습자 가족들은 18일 추모식을 갖고 목포신항만을 떠나기로 했다.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은 지난 16일 목포신항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선체 수색이 마무리돼 가고 있는 지금 저희 가족들은 비통하고 힘들지만 이제 가족을 가슴에 묻기로 결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가족이 너무 보고 싶어 내려놓지 못했다.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 따뜻한 곳으로 보내주고 싶다는 간절한 희망으로 여기까지 왔다"며 "그동안 같이 울어주고 아파해주신 평생 갚지 못할 큰 사랑을 국민 여러분들께 받았다.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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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오후 세월호가 거치된 전남 목포신항만에서 한 시민이 미수습자 온전 수습을 기원하며 노란 리본을 달고 있다. 2017.10.29/뉴스1 © News1 남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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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습자 가족들은 "미수습자 5명의 이름을 영원히 잊지말고 기억해 달라"고 당부하면서 오열했다.

가족들은 추모식을 갖은 뒤 목포신항만을 떠나 안산제일병원과 서울아산병원에서 장례를 치른다. 이후 다른 세월호 희생자들이 잠든 곳에 안치한다.
jun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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