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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Why] 똥항아리에 푹 빠진, 사나이 '똥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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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이 사람] 10년째 똥독 모으는 김명현씨

- 축사 가득 채운 '보물'

수백만~천만원씩 주고 전국 각지서 45개 모아

- 청자·백자도 있는데 왜?

"똥항아리는 가짜가 없어 감추는 게 없다는 얘기"

- 최종 목표는 박물관

선조들 철학 담긴 명품, 언젠간 제 평가 받을 것

조선일보

김명현씨는 10년 동안 똥항아리를 모으고 있다. “똥항아리는 보이는 것 그대로죠. 꾸미거나 감추는 게 없어요. 그래서 애착이 갑니다.”/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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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현(63)씨는 똥독(항아리)에 빠진 사람이다. 10년 가까이 재래식 똥항아리를 모으고 있다. 과거에 정화조 대신 화장실 바닥에 파묻었던 항아리다. 경기 여주시 강천면에 있는 그의 창고 두 곳에는 가로·세로 1m30㎝ 똥항아리 45개가 있다. 똥을 거름으로 쓰려고 밭에 나르는 데 쓰던 똥장군과 요강도 300여개나 됐다.

지난 14일 김씨는 똥항아리 하나를 두 팔 벌려 안더니 헤벌쭉 웃었다. "정말 멋있게 생겼지요? 저는 똥항아리 중에 순천 율촌과 덕양에서 만든 것만 전국을 뒤져 모았어요. 다른 지역 똥항아리는 일반 항아리처럼 생긴 게 많은데, 순천에서 만든 건 역삼각형 구도예요. 어깨가 딱 벌어진 장사 같죠. 힘이 넘쳐요."

항아리에는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인분 때문에 생긴 뿌연 소금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왜 청소를 안했냐'고 묻자 "그것 자체가 역사니까요" 했다. 항아리들이 있는 창고에선 냄새가 진동했다. 항아리에 남은 것들 때문이 아니었다. 원래 돈사(豚舍)로 쓰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돼지에 빠진 사람이었다. 그가 돼지 키우던 자리에 똥항아리를 채운 것이었다.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공고 2학년을 중퇴하고 돈 벌려고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리어카 끌고 행상도 했다. 작은 회사에 다니다가 1984년부터 경기도 광주에서 돼지 20마리를 키우기 시작했다. 김씨는 "불도저처럼 돼지를 길렀다"고 했다. 몇 년 안 돼 수백 마리로 늘더니 3000마리를 넘어섰다.

김씨는 오른쪽 다리를 살짝 절었다. 돼지에 치여서 그렇게 됐다고 한다. 구제역 파동이 일어나 김씨가 키우던 돼지 2603마리가 살처분당하기도 했다. 그는 "그때부터 똥항아리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한다. '왜 백자나 청자를 모으지 않았냐'고 물었다. "제 아버지가 작은 골동품점을 했어요. 어릴 때 청자, 백자 많이 봤지요. 그런데 이런 도자기는 가짜가 많아요. 똥항아리는 가짜가 없잖아요? 나한테 감추는 게 없다는 얘기지요."

김씨는 똥항아리에 손가락으로 그려진 문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일반 도자기는 다른 사람 보라고 문양을 넣지만 똥항아리는 땅속에 묻혀서 안 보이는데도 이렇게 문양을 넣었어요. 다른 사람 의식 안 하고 휙휙 무작위로 그렸으니 선에 활기가 넘치죠."

그는 "멋있는 똥항아리는 수백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줬다"고 했다. 그의 아내와 두 아들, 친척들과 동네 사람들 모두 "정신이 조금 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똥고집'이었다. 모두 말렸지만 김씨는 똥항아리를 계속 수집했다. "지금은 괜찮은 똥항아리를 찾아보기 힘들어요. 이렇게 큰 항아리를 구울 수 있는 가마도 없고요. 우리 조상의 철학이 담긴 똥항아리가 사라진다는 게 안타까워요."

'어떤 철학이냐'고 물었다. "우리 선조는 그릇(도자기)을 관으로 쓰기도 했지요. 정화수 떠 놓고 빌기도 했고요. 그릇이 이승과 저승을 잇는 통로였던 거예요. 우리 조상은 여기에 똥까지 담았어요. 똥항아리에서 삭힌 똥을 밭에 뿌렸고 그렇게 자란 채소를 먹었지요. 그릇에 똥을 담는 발상을 우리 조상 말고 누가 또 했을까요?"

조선일보

김명현씨는 똥바가지를 ‘루이뷔똥’이라고 부른다. “이게 진짜 명품입니다.”/김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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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똥과 관련된 것 외에 오래된 한옥이 철거될 때 나오는 고재(고목재)도 모으고 있다. 나중에 똥항아리 박물관을 지을 때 쓰려고 수집했는데, 이렇게 모은 고재로 창고 5개를 채웠다. 아예 '돼지 아저씨의 나무 창고'라는 가게도 차렸다. 고재를 팔아서 똥항아리 박물관 건축비와 운영비로 쓰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언제 꿈이 이뤄질지는 모른다"고 했다.

김씨는 나무로 만들어진 오래돼 보이는 똥바가지 하나를 들더니 가방을 든 모양새를 취했다. "이게 제가 제일 좋아하는 명품 백입니다. 제가 '루이뷔똥'이라고 부르고 있죠." 그는 크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아니 이게 진짜 명품이잖아요? 똥항아리가 분명히 올바른 평가를 받는 날이 올 겁니다."

사전에 '똥항아리'는 똥 받는 항아리 외에 '지위만 높고 아무 능력이 없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있다. 이 뜻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여주=전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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