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17 (수)

[Science &] 얕은데서 흔드는 한국형 지진…日열도 만큼 위험한 까닭

댓글 1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땅도 스트레스(응력)를 받는다. 누군가 세게 건드리면 한번에 욱하면서 터지기도 하고, 참고 참다 쌓인 응어리가 시간이 흘러 마침내 폭발하기도 한다. 땅이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하면서 누적된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게 지진이다. 무엇이 멀쩡하게 있던 땅을 힘들게 하는 것일까. 지구 내부 구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두 발 딛고 서 있는 지구 표면은 거대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보기보다 위태롭다. 하나의 땅덩어리로 이어져 있는 게 아니라 13개의 크고 작은 조각들을 이어붙인 데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치 지그소 퍼즐(jigsaw puzzle)처럼 서로 맞물려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지진은 언제든 인류를 위협할 준비를 하고 있다.

조각조각 나뉜 지각판은 '맨틀'이라 불리는 연약한 물질 위를 둥둥 떠다닌다. 맨틀은 원래 고체지만 땅속 깊은 곳의 열과 압력으로 인해 녹아내려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천천히 땅속을 흐른다. 지구 중심부 열로 뜨겁게 달궈진 맨틀이 지표면으로 올라오고 지표 가까이에서 차갑게 식은 맨틀이 다시 가라앉으면서 맨틀은 '대류'한다. 이 과정에서 지각도 함께 움직인다. 하나의 지각판이 다른 판 밑으로 가라앉기도 하고 부딪쳐서 솟아오르기도 한다. 서로 다른 두 개의 지각이 만나거나 맞물리는 곳에서는 응력(stress·외력이 가해졌을 때 내부에서 발생하는 저항력. 쌓인 응력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면 지진 형태로 폭발)이 발생하고 더 이상 압력을 이길 수 없을 때 부러진다. 이때 생긴 파동은 지표면까지 전달되면서 지진이 발생한다. 지진은 이렇게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는 조각들이 맞부딪치는 경계에서 자주 발생한다. 실제로 전 세계에서 지진·화산 활동이 활발하게 발생하는 곳은 판이 닿아 있는 지역과 일치한다. 지진 발생이 잦은 환태평양판 경계선을 잇는 고리를 흔히 '불의 고리(Ring of Fire)'라고 부른다. 세계 최대 조산대로 길이만 4만㎞에 육박한다. 하지만 어느 쪽에서든 힘을 전달받는다면 판의 경계가 아닌 중앙에서도 지진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불의 고리에 속해 있지 않은 지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란 뜻이다. 한반도처럼 판 경계는 아니어도 비교적 가장자리라면 더더욱 안심할 수 없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인접해 있지만 지진이 발생하는 메커니즘은 다르다.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 필리핀판 등 여러 지각판이 만나는 곳에 위치한 일본은 아시아의 대표적인 '불의 고리' 지역으로 꼽힌다. 지진이 자주 발생할 뿐 아니라 2011년 동일본 대지진처럼 규모 9.0에 해당하는 초대형 지진이 수시로 발생할 수 있다. 해양판이 대륙판 아래로 밀려 들어가면서 땅속 깊은 곳에서 지진이 발생하는 '심발 지진'이 자주 일어난다. 또 일본 동쪽 바다 지역이 판의 경계면인 만큼 깊은 바닷속에서 발생하면 해안가에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다.

땅의 크기가 큰 중국은 대부분 유라시아판의 중앙을 차지하면서 인도판과 맞닿아 있다. 대부분의 지진은 유라시아판과 인도판의 경계면에 해당하는 곳에서 발생한다. 엄청난 피해를 낳았던 중국 탕산·쓰촨성 지진, 아이티 지진 등은 모두 판의 경계면 안쪽 지역에서 일어났는데 모두 규모 7.0 이상인 강진이었다. 1976년 중국 탕산에서 발생한 규모 7.8 지진은 판의 한가운데에서 발생했는데 단 23초의 진동으로 20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참사를 일으켰다. 2013년 중국 쓰촨성에서 발생한 규모 7.0의 지진도 12㎞ 깊이에서 발생해 2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 당시에는 도심 한복판에서 지진이 나 건물 상당수가 무너져내려 피해가 더욱 컸다. 지진 전문가들은 판의 안쪽 지역에서 일어나는 지진은 지진 발생 지점이 지하 5~15㎞ 정도로 매우 얕아서 그 에너지가 지표면으로 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원의 깊이가 얕은 '천발 지진'의 피해가 더 극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한국은 대륙판 중심부에 위치해 있어 지진이 불규칙적으로 발생할 뿐 일본이나 중국처럼 지진이 잦은 국가에 속하지는 않았다. 다만 지각판 중앙에 얼마나 많은 응력이 응축되어 있는지, 판의 경계부에서 발생한 지진이 판의 중앙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 많은 요인을 분석해야 하기 때문에 지진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은 어려움이 있다. 또 판의 안쪽 지역의 경우 지진 발생 지점이 땅속 5~15㎞ 정도로 매우 얕아서 에너지가 지표면으로 바로 전달되기 때문에 더 위험할 수 있다. 이처럼 한국과 중국이 속한 유라시아판처럼 육지 비중이 높은 대륙판 중심부에서 발생하는 지진은 대부분 진원의 깊이가 얕은 '천발 지진'이다. 이번 포항 지진 발생지도 지표면으로부터 9㎞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앞으로 한반도에서 발생하는 지진 역시 천발 지진일 가능성이 높다. 만에 하나 지표면 5㎞ 이내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작은 규모라도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이처럼 통상적으로 지하 70㎞ 미만의 얕은 깊이에서 발생하는 '천발 지진'을 조심해야 한다.

나머지 지하 300㎞ 이상에서 발생하는 '심발 지진'이나 지하 70∼300㎞ 사이에서 발생하는 '중발 지진'은 지표면에 피해를 미치지 않는다. 이번 포항 지진이 경주 지진보다 규모가 약했지만 피해가 컸듯이, 규모 7.0 지진이 땅속 100㎞에서 발생하는 것보다 규모 5.0 지진이 땅속 5~10㎞ 지점에서 나타나는 게 더 진동이 클 수 있다. 선창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본부장은 "한국도 항상 지진에 대해 대비를 해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특히 지난해 4월 일본 규슈 지진이 발생한 곳도 한반도와 같은 유라시아판에 놓여 있어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각판의 충돌로 발생한 큰 지진이 또 다른 지진을 불러 오는 '방아쇠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지각판이 달라도 인접한 판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얘기다.

포항, 경주, 울산 지진이 발생한 지역에서 남쪽으로 떨어진 지역에는 수백 ㎞의 단층대가 연결되어 있는 '쓰시마·고토단층대'가 존재한다. 이번 지진이 쓰시마·고토단층대에 영향을 미친다면 더 큰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인류는 지진에 대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다. 하지만 일본처럼 꾸준히 연구하고 대비한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홍태경 연세대 지구시스템과학과 교수는 "지진 예측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지진이 일어날 수 있는 단층을 꾸준히 조사·연구해야만 한다"며 "일반 국민 역시 대피 요령을 잘 파악하고 비상시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움직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원호섭 기자 / 김윤진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