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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7 (수)

[양영유의 직격 인터뷰] “간호사는 백의천사 아닌 백가지 일하는 백의전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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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 춤 강요는 인권 유린

병원 갑질 조사해 엄벌해야

비인간적 임신·사표 순번도

폐쇄적 위계 문화에 말 못해

간호사가 청소·심부름 잡일

1명이 환자 수십 명 돌보기도

간호에 전념토록 인력 늘리고

‘갈굼문화’ 추방 노력도 필요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에게 들어본 간호사의 애환

중앙일보

간호사 출신인 박민숙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은 ’간호사들 스스로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를 추방해야 한다“며 ’정부 차원의 인권 보호와 열악한 근무환경 개선 대책도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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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육대회에서 간호사들에게 짧은 바지와 배꼽티를 입고 걸그룹 춤을 추게 한 한림대 성심병원이 사회적 지탄을 받고 있다. 그 사건이 알려지자 전국의 간호사들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나도 그랬다(me too)’는 제보를 쏟아내고 있다. 간호사들의 인권침해와 열악한 근무환경, 군대보다 군기가 심하다는 간호사의 고충이 이번처럼 분출된 적은 없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박민숙(49) 부위원장을 만나 간호사 세계의 실상과 문제점을 들어봤다. 생생한 증언을 들려주겠다며 23년차 현직 베테랑 간호사도 동석했다. 1남1녀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익명을 원해 인터뷰에 L 간호사로 표기했다.



Q : 성심병원 간호사들의 노출 댄스가 큰 파문을 부르고 있다.



A : “도가 지나쳤다. 나도 1990년에 처음 간호사가 됐을 때 장기자랑도 하고 회식자리에서 술도 따랐다. 그런 나쁜 문화가 관행이었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성심병원처럼 신입들을 오디션으로 뽑아 선정적인 춤을 추도록 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명백한 인권침해다. 간호사들의 자존심과 소명의식을 무너뜨렸다. 정부가 병원의 갑질과 인권유린 실태를 조사해 엄벌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한다.”




Q : 왜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고 보나.



A :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병원 사회는 바뀌지 않아서 그렇다. 예전에는 의사들과 합창을 하는 등 가족적인 분위기가 많았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아이돌그룹을 흉내 내면서 간호사를 눈요깃감으로 여겨 행사가 변질된 거다. 신입 간호사들이 왜 저항을 안 했느냐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은 아니다. 더구나 성심병원은 노조도 없다. 윗사람에게 밉보이지 않으려고 ‘그냥 한번 참자’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이번만 지나가면 신입이 들어오니 곧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도 한다.”




Q : 회식자리에서도 인권침해를 당한다는 말이 있다.



A : “술자리 문화는 김영란법 이전과 이후가 확실히 다르다. 예전엔 회식에 무조건 간호사들이 동원돼 2차, 3차까지 가야 했다. 예쁜 간호사를 과장 옆에 앉히고 술 따르고 블루스를 추게 했다. 10년차, 20년차는 안 추려 하니까. 나도 술을 따라봤고 블루스도 췄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한데 1년 전부터 확 달라졌다. 1차로 끝나 그런 일이 없어졌다. 진작 그랬어야 했다.”




Q : 간호사 사회에 구조적인 문제가 뭔가.



A : “수직적이고 폐쇄적인 문화다. 특히 승진평가를 수간호사와 그 윗선이 하니 말을 못하고 눈치만 본다. 간호사들의 위계질서는 군대보다도 심하다. 입사부터 퇴사까지 군기가 확실하다. 간호사 사회에 ‘태움 문화’라는 게 있다. 재가 될 때까지 후배의 영혼을 새까맣게 태우며 도제식 교육으로 군기를 잡는 거다. 하루 24시간 생명을 다루니 긴장해야 한다는 구실로 만성이 돼 버렸다.”(L 간호사)




Q : 군기 잡기 실태가 어느 정도인가.



A : “군대 사수처럼 간호사도 2개월 정도 선배가 신입 교육을 한다. 신입은 무조건 따라다니며 일을 배운다. 한번 가르쳐 주면 알아들어야 하는데 긴장해서 몇 번 얘기해도 실수할 때가 많다. 나도 그랬다. 그러면 ‘머리는 장식품으로 달고 다니냐’ ‘너 때문에 우리 모두 퇴근 못한다’며 모욕을 준다. 3교대 근무가 톱니바퀴처럼 굴러가야 하니 한 명이 굼뜨면 다 피곤해진다. 그래서 말로 상처를 준다. 3~4년차가 돼야 태움 대상에서 벗어난다. 의사들처럼 폭행은 절대 안 한다. 가끔 장난스럽게 꼬집기는 해도.”(L 간호사)




Q : 수간호사가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다는 말도 있다.



A : “간호사 보직부터 설명하겠다. 90% 이상은 평간호사, 그다음이 주임·책임 간호사, 그 위가 병동을 책임지는 수간호사다. 간호과장과 간호부장도 있지만 실제 병동의 왕은 수간호사다. 그들이 무서운 건 근무 편성권을 쥐고 있어서다. 3교대 근무를 하는데 밉보이면 야간근무를 배로 늘리고 낮밤 근무표를 불규칙하게 짠다. 그걸 ‘퐁당퐁당 표’라고 한다. 그러면 미치는 거다. 수간호사가 몸매 좋고 얼굴 예쁜 신입 위주로 장기자랑 출전 멤버를 뽑아도 항의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Q : 간호사들의 자성이 필요하지 않나.



A : “물론이다. 이참에 수직적인 도제식 교육도 바꿔야 한다. 스스로 태움 문화를 태워버리는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환자·직원·노동 존중 3대 캠페인을 통해 ‘폭언·폭행 없는 병원, 태움 없는 병원 만들기’에 나서고 있다. ‘나도 1년차, 2년차 땐 그랬어’라는 생각 자체가 인권침해다. 그런 몹쓸 관념을 없애고 수평적 문화로 가야 한다.”




Q : 저출산시대에 일과 양육이 중요한데 임신 순번제까지 있다고 들었다.



A : “임신은 축복 그 자체인데 슬픈 일이 생긴다. 한 병동에 13~14명이 일하는데 두세 명이 임신하면 괴로워진다. 그래서 임신을 남편과 상의하는 게 아니라 수간호사가 ‘1번, 2번’ 식으로 순서를 정해준다. 나도 순번제를 했다. 솔직히 사생활 침해다. 2002년 결혼해서 2006년 첫애를 낳았다. 임신이 딱 되면 좋은데 못하니까 ‘왜 못하냐’고 욕먹고 순번이 밀렸다. 2014년엔 늦둥이를 낳았다. 순번제를 어기면 집중적으로 ‘태운다’. 간호사 중 17%가 그런 경험을 했다는 조사가 있다. 스트레스를 받아 유산도 한다. 부끄럽다.”(L 간호사)




Q : 결혼·임신·출산·양육의 과정을 버티는 게 고통스러울 것 같다.



A : “임신 순번은 약과다. 사직 순번도 있다. 너무 힘들어 1년 이내에 그만두고 싶다는 간호사가 70%다. 하지만 ‘양심도 없이 사표를 내느냐’며 받아주지 않는다. 인력 충원이 안 되니까 사표 순서도 수간호사가 정해준다. 무작정 관두면 병원 측이 손해배상까지 청구한다.”




Q : 근무 강도가 어느 정도길래….



A : “우리는 서로를 ‘백의천사’가 아닌 100가지 일을 하는 ‘백의전사(百의戰士)’라 부른다. 한 마디로 3D 업종 막노동 수준이다. 간호사가 의사 역할까지 하며 청소와 심부름, 환자 등 밀어주기 같은 온갖 허드렛일을 한다. 간호사들은 ‘밥을 마신다’고 말한다. 바빠서 평균 식사 시간이 6분 정도이고 절반은 제대로 먹지 못하고 일한다. 생리 중에 생리대를 갈지 못하기도 하고 소변을 참다 방광염을 앓기도 한다. 최소 인원으로 24시간 교대근무를 하니 벌어지는 일이다. 환자들의 온갖 불평이나 불미스러운 행동도 참아야 한다. 수면장애가 일어나고 야간근무를 하면 얼굴이 썩는다. 3교대 근무는 오전 7시~오후 3시, 낮 12시~밤 10시, 밤 10시~다음 날 오전 9시 패턴이다. 가장 바쁜 건 아침 시간이다. 상시 근무를 하며 출퇴근하는 게 간호사들의 꿈이다.”(L 간호사)




Q : 열악한 근무환경의 근본적 문제가 뭔가.



A : “인력 부족이다. 전국에 간호사 면허 보유자가 34만 명인데 실제 종사자는 18만 명이다. 양호교사 등 비의료기관 종사자 3만5000명을 뺀 12만4000명은 장롱 면허다. 평균 근속연수가 5.4년에 불과하다. 힘들어 그냥 쉬는 거다. 그러니 인력 부족이 지속된다.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간호사는 2.37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6.74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Q : 근무 강도가 세 이직이 많은가.



A : “간호대생이 매년 2만 명 졸업한다. 취업은 거의 다 된다. 하지만 신규 간호사 이직률이 34%나 된다. 조사해 보니 일반 간호사도 58%가 이직을 고려한다고 하더라. 주 5일 40시간 근무도 안 지켜진다. 평균 47시간을 근무하는데 연장근무 수당도 안 준다.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Q : 외국 간호사들의 환경은 어떤가.



A : “간호사는 간호만 한다. 외국은 시트 교체, 위생 관리, 이송, 피 뽑는 사람을 모두 따로 뽑는다. 그런데 우리는 그런 일은 기본이고 환자 심부름에 목욕까지 거들어 준다. 한마디로 수퍼우먼을 요구하는 거다.”(L 간호사)




Q : 간호사 1명이 돌보는 환자 수도 선진국과 차이가 나나.



A : “물론이다. 우리는 간호사 1명당 환자 수가 15~20명이다. 미국은 5명이다. 의료법상 우리도 환자 5명당 간호사 2명을 배정하게 돼 있다. 간호사 1명당 2.5명인데 지키지 않아도 처벌 조항이 없다. 이걸 지키는 데는 몇몇 대형병원을 비롯, 13.2%에 불과하다. 시골은 한 간호사가 50명까지 돌본다.”




Q : 그렇게 힘들게 일하는데 급여 수준은.



A : “초임은 2700~3000만원 정도로 일반 의사들과 최소 세 배 이상 차이 난다. 25년차 수간호사가 6000만원대 정도다. 반면 외국 간호사는 의사와의 차이가 우리만큼 나지 않는다. 우리가 일도 많이 하고 임금은 적게 받는 구조다.”




Q : 그대로 놔두면 해결될 것 같지 않다.



A : “모성 정원제를 시행해야 한다. 임신하거나 분만해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가도 그 인원을 정원으로 보고 인력을 더 뽑으라는 것이다. 인력 보충이 단순히 노동 강도를 낮추는 것만은 아니다. 환자의 안전·생명과 직결된 환자의 안정권이기도 하다. 대학병원은 1년에 50~100명이 출산·육아휴직을 한다. 그걸 보충해야 한다. 남은 간호사들만 골병들게 하지 말고 상시 결원 인원을 정원으로 확정해 책임져야 한다.”(L 간호사)




Q : 결원 인원을 정원으로 인정하려면 어떻게 하는 방안이 있나.



A : “제도적으로 풀어야 한다. 인력 충원을 병원에 맡기면 돈 때문에 절대 안 한다. 간호 인력을 많이 채용할수록 인력 수가를 반영해 병원에 지원하는 게 필요하다. 간호사가 늘면 병원 재정이 늘어나니 간호사를 더 많이 채용할 수 있다. 그 비용을 사용자에게만 부담시킬 게 아니라 정부가 일정 부분 지원해주자는 의미다. 보건의료 특별법도 제정해야 한다. 국가가 직접 실태조사를 하고 교육·양성시스템을 정비하자는 거다. 그리하면 인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Q : 문제는 역시 재정이다. 방안이 있나.



A : “건강보험 흑자가 21조원, 내년 정부 예산이 429조원인데 여기서 풀 수 있다. 의료는 기본적으로 공공재다. 민간 의료기관도 공공성을 가진다. 그러니 민간이든 공공이든 일정 재정을 투입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재정 지원이 이뤄지면 민간 병원도 인력 수급에 숨통이 트일 것이다.”


박민숙은 …
1990년부터 간호사 생활을 했다. 주로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환자들을 돌봤다. 2003년부터 보건의료노조 대전·충남 지역 본부장을 맡으면서 간호사 인력 부족과 처우 개선, 불규칙한 교대근무제 개선에 앞장섰다. 현재는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전국 170개 병원 간호사 등 5만5000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양영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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