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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왕자의 난'이 불붙인 기름값… 저유가 시대 저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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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1~2위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갈등이 국제 유가를 폭등시키고 있다. 중동산 두바이유는 지난 6일 배럴당 60.58달러를 기록, 2년6개월 만에 60달러를 돌파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유가는 40~50달러선에서 안정세를 유지했다.

만일 사우디와 이란이 전쟁으로 치닫는 경우에는 국제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작년 초만 해도 미국의 값싼 셰일오일이 쏟아져 나오면서 국제 유가는 배럴당 20달러대까지 내려앉았고 저유가 시대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중동 정세 불안이 국제 유가의 흐름을 정반대로 바꾼 것이다.

사우디와 이란, 석유 패권 다툼도

최근 유가 상승은 사우디가 촉발했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지난 4일(현지 시각) 왕위 계승권을 놓고 경쟁했던 압둘라 전 국왕 아들 무타입 빈압둘라 국가보위부 장관을 비롯한 자신의 정적(政敵)을 숙청했다. 빈살만 왕세자는 원유 감산을 주장해 원유 값이 올라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조선비즈


게다가 자신의 입지를 굳히기 위해 오랜 앙숙인 이란에 화살을 돌리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사우디는 지난 9일 예멘 반군(叛軍)에 대해 공습을 가했다. 예멘 반군이 사우디 수도 리야드에 미사일을 발사한 데 대한 보복 조치로 사우디는 배후에 이란이 있다고 주장했다. 사우디는 10일 레바논에 머무는 자국민들에게 서둘러 출국하라고 명령했다. 레바논은 이란 지원을 받는 무장 정파 헤즈볼라 근거지다. 자국민들이 헤즈볼라 공격 대상이 될까 우려한 것이다.

지금은 인접국을 통한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지만 직접 부딪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동 산유국들은 전 세계 석유 공급량의 20% 정도를 이란과 오만 사이의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수출한다. 사우디·이란 전쟁이 발발해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되면 공급 부족으로 국제 유가는 폭등할 수밖에 없다. 미국 CNBC는 컨설팅 업체인 프린스턴 에너지 어드바이저스의 분석을 인용해 "사우디와 이란 간에 전쟁이 발발하면 국제 유가가 2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11일 전했다.

정준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실장은 "사우디·이란 다툼의 밑바닥에는 원유 시장 패권을 둘러싼 기 싸움이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란은 지난해 서방 제재가 풀린 이후 원유 생산량을 늘리고 있으며 사우디는 원유 시장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해 이란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갈등이 전쟁까지 간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도 있다. 글로벌 석유 업체인 BP의 밥 더들리 최고경영자는 지난 13일 CNN머니 인터뷰에서 "현 상황에서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전쟁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라며 "2~3년간 국제 유가는 현재 상태를 지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동 정세에 따라 춤추는 유가

국제 유가는 중동 지역 정세가 불안할 때마다 급등한다. 1957년 이집트의 수에즈운하 국유화 선언 이후 영국·프랑스 등이 이집트를 침공하면서 위기가 생겼을 당시 세계 석유 공급은 10% 급감했고, 한 달도 안 돼 미국과 유럽은 경기 침체에 빠졌다.

1973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때 중동 OPEC 산유국들이 석유 수출을 중단하면서 국제 유가는 4배 폭등했다. 2012년 이란의 핵개발에 반발한 이스라엘이 이란 공습을 추진하자 유가는 단숨에 배럴당 124달러를 찍었다.

작년 초부터 시작된 저유가는 우리 경제에 호재였다. 산업연구원이 '국제 유가 10% 하락 시 주요 국가별 전체 산업의 생산비 하락 효과'를 분석한 결과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전체 산업의 생산 비용이 0.76% 절감됐다. 이는 중국(0.36%)·일본(0.34%)의 두 배 정도이며 미국(0.16%)·EU(0.12%) 등 선진국의 4~6배 수준이다. 오정근 건국대 교수는 "유가가 급격히 오를 경우 원가 상승으로 국내 수출 기업의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원가 절감 방안을 미리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고유가가 되면 업종별 희비는 엇갈린다. 항공유를 많이 쓰는 항공사들은 긴장하고 있다. 유가가 1달러 오를 때마다 대한항공은 연간 약 370억원, 아시아나항공은 2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정유 업계의 경우 유가 상승이 수출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매출에는 호재로 작용하지만 원가 상승에 따른 정제 마진 하락으로 영업이익이 떨어질 수 있다. 반면 조선 업계는 글로벌 석유 회사들이 해양 플랜트 발주를 재개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건설 업계도 유가 상승으로 산유국의 재정이 확충되면 '수주 텃밭'인 중동 지역 발주 물량이 늘 것으로 보고 있다.

김승범 기자;안준호 기자(libai@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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