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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포항 지진에 지난해 공포 떠올라…경주 시민 오늘 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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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포항시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한 15일 진원지로부터 약 26km 떨어진 경주시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이 긴급 대피한 학생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학생들은 지난해 9월 12일 발생한 경주 지진의 공포를 떠올리며 몸을 떨었다. 일부 학생은 눈물을 흘렸다. 군데군데 교사들이 배치돼 놀란 아이들을 다독였다.

아이들이 무사한지 살펴보기 위해 황급히 학교를 찾는 부모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학부모들은 대부분 승용차 대신 택시와 버스 등 대중교통을 이용했다. 학교 주변엔 주차된 차량이 몇 대 안 보였다. 초등학교 3학년 딸을 데리러 온 윤모 씨(49·여) “작년 지진 때 다들 차를 가지고 와 학교 주변이 완전히 꽉 막혔다. 그때 느꼈던 답답함 때문인지 오늘은 다들 차 없이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 유치원 앞 공터에 고깔 모양의 노란색 방재 모자를 쓴 아이들이 눈에 띄었다. 지난해 9월 지진 이후 유치원에서 구비한 지진 대비용 물품이었다. 아이들은 방재 모자를 평소 등받이로 쓰다가 이날 진동을 느끼자마자 곧바로 고깔처럼 뒤집어썼다. 학부모 정모 씨(38·여)는 “지난 한 해 동안 학교와 유치원에서 정기적으로 지진 대피 훈련을 해서 이번에는 크게 혼란스럽진 않았다”며 “재난 알림 문자메시지도 금방 왔고 주민센터 사이렌도 일찍 울렸다”고 말했다.

일부 경주 시민은 지난해 지진 이후 준비해뒀던 생존배낭을 다시 꾸려 현관문 앞 등 손에 쉽게 닿는 곳에 비치했다. 회사원 우모 씨(44)는 “한동안 큰 여진이 없어 생존배낭을 장롱 속에 넣어뒀는데 오늘 다시 배낭을 쌌다”며 “날씨가 추워져 두꺼운 옷과 담요를 배낭에 많이 넣었다”고 말했다. 지인들끼리 만든 지진 대비 관련 단체 카카오톡방도 이날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렸다. 주부 윤 씨는 “엄마들끼리 만든 카톡방에서는 대피 방법뿐 아니라 불안함을 다스리기 위한 심호흡법도 공유했다”며 “건물이 흔들리면 높은 가구나 액자가 ‘흉기’가 될 수 있다고 해 액자를 떼고 긴 책장은 옆으로 뉘여 놨다”고 말했다.

이날 포항 지진으로 경주의 피해는 크지 않았지만 많은 경주 시민은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아파트 1층에 사는 회사원 박모 씨(43)는 “포항 지진이 남의 동네 일로 느껴지지 않는다”며 “지난해 지진 이후 1층으로 이사를 했는데 높은 층에 살았다면 불안해서 집에 못 들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씨는 “큰 지진이 한 번 나면 계속 여진이 몰려온다는 것을 겪어봤기 때문에 당분간 마음을 놓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경주=이지훈기자 easy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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