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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포럼]평창올림픽 성화(聖火) 봉송을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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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안용규 한국체육대 교수.


올림포스의 불꽃이 한반도를 밝히고 있다. 지난달 24일 그리스 아테네에서 채화된 성화는 봉송주자 7500여명의 손을 거쳐 대한민국 17개 시군을 101일 동안 누빈다. 성화가 지나는 거리는 2018㎞에 이르고, 평창에 이르는 날은 2018년 2월9일이다. 이 숫자들은 모두 의미를 담고 있다. 17개 시군은 올림픽 기간(17일)을, 주자 7500여명은 남북한 인구를 합산한 수를, 2018㎞는 평창올림픽의 개최연도를, 성화 봉송 기간은 완성을 뜻하는 100을 넘어 새로운 지평을 연다는 의미로 1을 더했다고 한다.

근대 올림픽에서 성화는 1928년 암스테르담 대회 때 등장했다. 1896년 아테네에서 근대올림픽이 시작된 뒤 아홉 번째 대회였다. 이때 성화는 횃불에 지나지 않았다. 주경기장 상단에 대형 접시를 놓고 기름을 부어 불을 켰다. 오늘날과 같은 채화 및 봉송이 시작된 대회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이다. 독일의 스포츠 학자이며 베를린 올림픽 조직위원회 위원장인 칼 딤의 구상이었다. 그의 구상은 올림픽을 나치 선전장으로 이용하려던 아돌프 히틀러의 구미를 당겼다.

그리스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에서 태양열에 의해 채화된 성화는 봉송주자 3300명에 의해 총 3190㎞를 이동했다. 이 과정을 선명하게 기록한 영화가 레니 리펜슈탈 감독이 제작한 '올림피아'다. 올림피아는 베를린 올림픽을 통해 나치 독일이 구현하려는 이상을 드러낸다. 그리스의 신전에서 얻은 불씨가 젊은 청년들의 손에 이끌려 베를린까지 운반되니 그리스의 정신, 곧 유럽 문명의 정수가 제3제국의 수도에 이식돼 활활 타오르는 것이다. 이제 3제국이야말로 유럽의 중심이며 본질이라는 선언이다.

태생이 그러하기에, 성화는 가끔 불결해진다. 1954년 도쿄 올림픽 성화가 그랬다. 마지막 성화 주자 사카이 요시노리는 원자탄이 떨어진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청년이었다. 일본은 그를 내세워 '피해자 코스프레'를 한다. '우리는 비인간적인 원자탄 폭격의 희생자다. 그러나 다시 일어섰다.'

세계가 지켜보는 성화는 단순한 불꽃이 아니다. 상징이자 이미지며 그 자체로 이데올로기고 강력한 선전이다. 평창의 성화도 예외일 수 없다. 나는 성화가 도착할 때부터 궁금했다. 저 불꽃은 무엇을 말하려 하며 우리에게 무엇을 남기고 떠날 것인지. 사실 여기에는 이미 답이 있다. 나의 궁금증은 미지(未知)가 아니라 염려에서 나온 것이다. 최근의 메가 이벤트들은 여러 비난에 직면했고, 평창 동계올림픽도 마찬가지다. 대회 성공 여부, 올림픽 시설의 사후관리, 동계 스포츠의 영속적 발전 가능성 등을 의심받고 있다.

이러한 우려는 단숨에 불식할 수 없다. 특히 올림픽이 끝난 뒤 경기장을 비롯한 각종 시설의 사후 활용은 우리에게 풀기 어려운 과제로 남을 것이다. 시설들이 이른 시일에 흑자를 낼 가능성은 전혀 없다. 많은 노력과 시간, 그리고 일치된 지혜가 없다면 파국을 맞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평창의 유산은 가치의 부문에서 결실을 맺어야 한다고 나는 본다.

나는 피겨스타 김연아 씨가 14일(현지시간) 미국 유엔본부에서 한 연설에 공감한다. 그는 "평창이 세계 평화라는 유산(Legacy)을 전 세계, 후세에 남길 수 있도록 도와 달라. 올림픽 평화의 정신을 지지해 달라"고 호소했다. 평화라는 면에서 평창의 유산은 사실 약속을 받았다. 성화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 휴전선에서 80㎞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빛을 낸다. 이 빛은 전례 없는 호소를 담고 있다. 세계가 공감하는 한 우리 올림픽은 성공을 예약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남은 과제는 우리에게 가능한 최선의 준비를 하며 세계인의 축제를 거듭 꿈꾸는 일뿐이다.

안용규 한국체육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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