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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테프론 돈(Don)과 못믿을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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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정렬의 Echo]]

1985년 개봉한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의 ‘백 투 더 퓨처(Back To The Future)는 시간여행 영화의 레전드로 불린다. 주인공 마티는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인 1955년으로 간다. 마티는 영화제목처럼 자신이 살던 미래로 돌아가기 위해 타임머신을 개발한 브라운 박사를 찾아간다. 하지만 타임머신을 개발하기 이전인 브라운 박사는 마티가 미래에서 온 사실을 믿지 않는다. 두 사람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브라운 박사 : 누가 1985년 미국 대통령이냐?

마티 : 로널드 레이건.

브라운 박사 :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로널드 레이건? 그 배우?....그럼 제인 와이먼(레이건의 첫 부인, 영화배우)이 퍼스트레이디겠네.

영화 개봉 당시 실제 미국 대통령이 로널드 레이건이었다. 할리우드 삼류배우출신의 대통령 레이건은 1981년부터 1989년까지 재임하면서 미국의 최장기 호황을 이끌었다. ‘강하고 풍족한 미국’을 기치로 감세, 규제완화, 경기부양, 고용창출 등을 위한 경제회복 프로그램, 이른바 ‘레이거노믹스’를 추진하면서다.

레이건은 재정적자 확대에도 보수적이고 강경한 국내외 정책들을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얻은 별명이 ‘테프론 대통령’다. 테프론은 듀폰이 1945년 출시한 특수섬유의 상품명이다. 통기성이 좋고 먼지 등 오염물질을 막아주는 특성을 갖고 있다. 레이건이 정책적 실수나 오판을 저질러도 그 책임에서 면제되고, 정치적 타격도 입지 않는 현상을 두고 야당인 민주당 정치인과 언론이 붙인 별명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롤 모델이 같은 공화당출신인 레이건이다. 트럼프는 세제개혁, 일자리창출 등 레이거노믹스와 오버랩되는 정책들을 추진하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고 있다. 심지어 테프론이라는 별명까지 이어받았다.

지난해 미 대선 당시 언론들은 트럼프에 ‘테프론 돈’(Don)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다른 정치인이면 정치인생을 끝날 수 있는 막말과 추문 논란에도 트럼프가 당당히 백악관에 입성하면서다. 트럼프는 집권 초기부터 러시아스캔들에 발목을 잡히고 백인우월주의자 두둔 발언, 반이민정책 등으로 거센 비판을 받았지만, 테프론다운 맷집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테프론이라는 수식어가 다른 한 곳에도 붙었다. 주인공은 뉴욕증시다. 뉴욕증시가 북한 핵문제, 무역갈등, 트럼프 행정부의 잇따른 입법실패 등 온갖 국내외적 악재에도 흔들림 없이 사상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면서다. 다우지수, S&P 500지수, 나스닥지수 등 3대 주요지수는 지난 1년간 24%, 19%, 29%나 치솟았다. 뉴욕증시가 사상 최고가를 기록할 때마다 트럼프도 자신의 치적인양 트위터로 깨알 같은 자랑을 늘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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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테프론 대통령은 미국 국내외적으로 균형과 안정보다는 쏠림과 불안정을 의미한다. 테프론 증시도 상승의 기쁨 이면에 존재하는 조정의 불안감을 반영한다. 테프론 대통령이 추구하는 자국 중심의 강경 정책들은 필연적으로 포퓰리즘과 맞닿아있다. 북핵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강화하기 위한 첫 아시아 순방에서 트럼프는 무역적자 해소를 주장하며, 무기판매 등 실리를 톡톡히 챙겼다.

트럼프에겐 자국의 이익이 정치적 생명선이자 표다. 이익 앞엔 우방과 이웃국가도 없다. 변화도 기대하기 어렵다. 때문에 30여년만에 부활한 미국의 테프론 대통령 시대는 우리 외교와 경제엔 단기 변수가 아닌 새로운 상수다. 때론 무기구매 선물도 안기고, 때론 '못믿을 친구'(unreliable friend)라는 비판도 기꺼이 감수하는 장기적이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뉴욕(미국)=송정렬 특파원 song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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