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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외환위기 20년, 끝나지 않은 고통](상)외환위기 대가는 ‘비정규직 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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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89%가 ‘최악 영향’ 꼽아

올해 경제지표 호전에도 불구 양극화 심화 ‘위기의 상시화’

경향신문

꼭 20년 전이던 1997년 11월14일 김영삼 대통령은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로부터 “IMF(국제통화기금)와 자금지원을 협의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이를 재가했다. 사실상 IMF 구제금융 신청을 결정한 순간이었다. 이미 한국은행이 사태의 심각성이 외환위기로 번질 가능성을 전달하고 IMF 자금지원 요청이 필요하다는 보고를 했지만, 정부는 최대한 IMF에 자금을 요청하는 일은 피하고 싶었다. 당시 경제부총리와 경제수석은 대통령 보고에도 일부러 이 내용을 축소했다. 그러나 이미 연초부터 한보와 기아 등 재계 상위 그룹이 줄줄이 부도로 쓰러지고, 10월 한 달에만 1조원 이상의 외국자본이 한국을 빠져나가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일주일 뒤인 11월21일 밤 임창열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은 “정부는 IMF에 대가성 차관을 요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고속성장과 한강의 기적을 이뤄냈다는 자부심이 있던 한국 경제가 혹독한 구조조정과 실직을 겪고, 중산층의 희망이 사라지는 어두운 터널에 진입하는 순간이었다.

20년이 흐른 지금 한국 경제는 외환위기의 충격으로부터 벗어난 듯하다. 전 세계적으로 저성장 시대에 접어든 상황에서도 한국은 올해 3%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정보기술(IT) 업종을 중심으로 수출 역시 호조를 보이고 있다. 1997년 당시 무리한 차입과 부실경영으로 부도를 맞았던 국내 대기업들의 재무구조는 세계화와 금융실명제 등의 흐름을 타면서 투명해지고 안정화됐다.

그럼에도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도리어 외환위기는 한국 사회에 ‘위기의 상시화’를 고착화했다. 구조조정은 사회 곳곳에 붙어 있고 평생직장이 사라진 자리에 비정규직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빈부격차와 양극화가 급격히 심화되면서 이제 중산층 진입을 기대하는 서민들의 희망도 많이 사그라들었다. 외환위기가 기업의 부도에서 촉발됐다면 현재는 가계빚 증가에 따른 ‘가계 부도’가 시한폭탄처럼 다가오고 있다. 20년 전에도 문제였던 재벌 중심 경제체제는 더욱 공고화됐다.

14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외환위기 발생 20주년을 계기로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상대로 최근 실시한 인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IMF 외환위기가 현재 한국에 끼친 영향(복수 선택)을 묻자 응답자의 88.8%는 비정규직 문제 증가를 꼽았다. 공무원·교사 등 안정적인 직업 선호 경향을 낳았고(86.0%), 국민 간 소득격차를 키웠으며(85.6%), 취업난을 심화시켰다(82.9%)는 반응도 높았다. 현재 한국에 가장 중요한 과제로는 경제 면에서는 일자리 창출 및 고용 안정성 강화(31.1%)를 꼽았다.

임원혁 KDI 글로벌경제연구실장은 “국민들은 외환위기 극복의 원동력으로 금 모으기 운동 같은 국민 단합을 구조조정이나 개혁 노력보다 더 높게 평가하고 있다”며 “포용적 성장을 통해 사회 응집력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윤주 기자 run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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