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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단치히 자유시(1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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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1920년 오늘 '단치히 자유시'가 건국했다. 39년 사라질 때까지 19년 간 펄럭였던 도시국가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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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그 해 6월 연합국과 독일제국이 평화협정인 ‘베르사유 조약’을 체결했다. 국제연맹 창설과 알자스-로렌의 프랑스 할양 등 독일제국 영토 나눠 갖기가 주 내용이었다.

제국 서프로이센의 주도(主都)였던 발트해 항구도시 단치히(Danzig)는 독립 도시국가의 지위를 부여 받았다. 단치히는 중세 한자동맹의 무역 거점이던 시절부터 폴란드 영토였으나 18세기 프로이센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의 폴란드 분할 이후 내도록 프로이센이 지배해왔다. 연합국이 그곳을 독립 도시국가로 지정한 것은 어느 나라에도 떼어주기 아까워서였다. 인구 35만 명, 면적 1,966㎢에 독자 화폐와 국기를 지닌 단치히 자유시(Freie Stadt Danzig)가 그렇게, 1920년 11월 15일 건국했다. 단치히 자유시는 철도와 항구 물류 중심도시로서, 조선소와 유류가공업 등 제조업을 갖추고 자립했다.

담장 같은 ‘회랑(일명 폴란드 회랑)’을 사이에 두고 본토와 동프로이센이 나뉘게 된 독일에겐 빼앗긴 그 땅과 중부 유럽의 대양 관문이던 단치히가 절실했다. 33년 집권한 나치 히틀러는 줄기차게 단치히 반환을 요구했으나 매번 거절 당했다. 나치는 독소불가침조약을 맺자마자 곧장 폴란드를 침공(39. 9. 1)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이었다. 그 날 독일은 군함 ‘슐레스비히 홀슈타인’을 앞세워 단치히 항에 입항, 사흘 만에 단치히와 폴란드 북부를 장악했다. 단치히 의회는 9월 2일 독일 합병을 선언했다. 그로써 도시국가는 소멸했지만, 폴란드 출신 시민들이 주축이 돼 독일군에 맞서 항전(단치히 우체국 방어전)했다. 전쟁 중 단치히 시가지는 85%가 파괴됐고, 폐허가 된 땅은 전후 폴란드에 귀속돼 그단스크(Gdansk)가 됐다. 독일 출신 시민들은 희망자에 한해 전원 본국으로 귀환했다.

귄터 글라스의 대표작 ‘양철북’의 주인공 오스카가 태어난 곳이 1924년의 단치히 자유시였고, 레흐 바웬사의 ‘연대자유노조’가 탄생한 곳이 1980년 9월의 그단스크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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