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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살에 회사 때려치고… ‘잘나가는 꾼’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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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B]

‘늦깎이’ 배우 허성태

과장 진급 앞둔 대형 조선소 사원

우연히 ‘기적의 오디션’ 도전

“한 번 해봐” 아내 격려에 배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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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태는 “배우가 된 건 모두 아내 덕분”이라며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 디엠’이라는 말로 내게 용기를 주고 아낌없이 지원해줬다”고 말했다. 최지이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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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허성태(41)는 행복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걸었다. 10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얻은 안정된 삶을 포기했고,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 낯선 서울에서 꿈을 키웠다.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회사에 사표를 던진 건 배우라는 도전 때문이었다.

6년이 흐른 지금 허성태의 도전은 작은 꽃봉오리를 피웠다. 송강호와 함께 열연한 영화 ‘밀정’(2016)으로 얼굴을 알리더니 요즘 극장가의 화제작 ‘범죄도시’와 ‘부라더’에서도 맹활약했다. 영화 ‘꾼’ ‘창궐’도 연이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안방극장에서도 파란신호등이 켜졌다. 시청률 10%대를 기록하며 인기를 얻고 있는 KBS2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악의 축 조갑수(전광렬)의 오른팔인 백상호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눈도장을 받았다. 최근 조갑수의 술수로 죽임을 당해 하차하면서 시청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그를 서울 세종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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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2 월화드라마 '마녀의 법정'에서 백실장으로 출연한 배우 허성태.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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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에서 LCD TV 팔고, 조선소서 잘 나가던 직장인

허성태를 만나면 두 번 놀란다. 험상궂은 첫 인상에 한 번, 유창한 러시아어를 구사하는 유능한 직장인이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부산 태생인 그는 부산대에서 노어노문학을 전공하며 러시아어 실력을 키웠다. 대형 전자회사에 입사해 해외 마케팅팀에서 일하며 러시아를 드나들었다. 그는 러시아 현지 호텔을 상대로 LCD TV를 대거 판매해 회사에서 인정 받은 인재였다. "현재 러시아 호텔에 비치된 LCD TV 대부분은 제가 뚫은 결과물"이라고 힘주어 말할 정도다.

경남 거제도의 대형 조선소로 이직한 그는 기획조정실에서 사업계획서를 짜던 엘리트직원이었다. 연봉도 제법 높았다. 먹고 사는 데 별 걱정이 없었다. 그의 앞은 탄탄대로였다. 그러다 우연히 SBS 예능프로그램 '기적의 오디션'(2011) 광고 문구를 보고 만다. 배우 재목을 발굴하는 프로그램이었다. 안정된 삶에 큰 파도가 밀려왔다. "장난 삼아" 접수한 ARS 전화 한 통이 그의 운명을 바꿨다. 제작진에서 실제로 보고 싶다며 연락이 왔다. 거제도에서 차로 3시간 거리인 해운대로 아내와 함께 갔다. 단지 "추억도 만들고, 해운대도 구경한다”는 생각이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허성태는 부산 지역 예선에 보란 듯이 붙었고, 방송 출연을 위해 합숙에 들어가야 했다.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됐다. 부모님과 직장 동료, 친구들은 "왜 그런 걸 하느냐"며 뜯어 말렸다. 하지만 아내만큼은 "한 번 해보라"며 그의 어깨를 두드려줬다.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의 나이 35세였고, 과장 진급을 앞두고 있었으며, 결혼 6개월째였다.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던 걸까. "전국 예선에서 심사위원 5명이 만장일치로 합격을 준 건 제가 처음이라더군요. 정신이 번쩍 들더라고요. 만약 합격을 하더라도 만장일치가 아니면 그만 두려고 했거든요. 의외의 결과에 '아! 내가 소질이 있구나'했죠."

중학교 시절 마이클 잭슨과 김완선, 박남정의 춤에 빠져 댄스팀에서 활동하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는 영화에 미쳐 극장에 살다시피 했다. 잠복해있던 끼가 ‘기적의 오디션’을 만나 폭발한 것이었다. 5등으로 프로그램을 마친 뒤 그는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신림동에서 보증금 300만원에 월세 50만원 원룸을 얻었다. 돈이 떨어져 월세를 내지 못해 보험을 깼다. 그렇게 6년 간 60여편의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무명의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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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남한산성'에서 만주족 용골대를 연기한 배우 허성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선배들의 응원에 성장하는 ‘늦깎이’

"성태야, 장모님 모시고 영화 '남한산성' 보러 갔다가 깜짝 놀랐다." '마녀의 법정'에서 호흡을 맞춘 배우 전광렬은 최근에야 허성태의 ‘정체’를 알았다. 전광렬은 허성태에게 "배우로서 인상도 좋고 연기도 제법 하니, 이 드라마 끝나면 잘 될 것 같다"며 용기를 북돋아주던 선배였다. 지난달 추석이 지나고 만난 전광렬은 "'남한산성'의 용골대가 네가 맞느냐?"며 허성태의 변신에 놀라워했다. 영화 속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전광렬의 반응에 그는 "배우로서 너무 듣기 좋은 소리"라고 말했다.

"요즘 자주 듣는 질문이 '당신이 그 역할을 한 배우가 맞느냐'는 겁니다. '범죄도시'의 독사와 '남한산성'의 용골대, OCN드라마 '터널'의 사이코패스 정호형 등이 쉽게 매치되지 않는가 봐요. 여러 얼굴을 지녔다는 말이니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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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성태는 영화 '밀정'에서 하시모토(엄태구)의 부하 하일수로 등장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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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상업영화를 촬영할 때만 해도 이런 행복은 꿈도 꾸지 못했다. 1,000만 관객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서 '국문장 나장 1'을 연기했다. 광해군(이병헌)의 처남을 취조하며 인두로 고문하고, 주리를 틀던 단역이었다. 1초 만에 스쳐간 이 장면을 위해 3박4일간 기다리며 연기하고 15만원을 받았다. 하지만 이병헌과의 첫 대면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됐다.

그런 그가 5년 만에 '남한산성'에서 이병헌과 활을 겨루는 상대역으로 성장했으니, "어머니도 우셨다"는 말이 과하게 들리지 않는다. 요즘에는 선배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 '부라더'와 '범죄도시'에서 호흡을 맞춘 마동석은 "성태야, 올해는 네가 주인공이다"고 용기를 주고, 송강호도 "많은 작품에 나오니 좋다"며 직접 연락을 줬단다. 무명의 설움이 깨끗이 씻기지 않았을까. 그는 “인스턴트 커피를 마시다 이제야 따뜻한 라떼 한 잔 사먹을 수 있는 정도”라고 했다.

늦깎이 배우인 그는 다른 늦깎이들에게 조언을 했다. “실패한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마세요. 내일 당장 세상과 작별한다면 오늘 하지 못한 일이 두고두고 가슴에 맺히지 않겠어요?”

강은영 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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