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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사설] 탈원전 눈치보다 탄소배출권 할당 미룬 정부, 골탕먹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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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당장 내년부터 적용되는 탄소배출권 할당량 배정을 미루는 바람에 기업들이 골탕을 먹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권의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정부는 탄소배출권 기본계획이 시작되는 시기로부터 6개월 전에 구체적인 내용을 정해 발표해야 한다. 그런데도 아직 할당량을 확정하지 못했다니 이를 감안해 공장 증설 등 투자 계획을 세워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정부가 뒤늦게 공식 사과했다고 하지만 법정 시한을 6개월이나 넘긴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은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등 관련 부처의 늑장 행정 탓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있다. 정부는 지난달 24일 신규 원전 건설 백지화와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금지 등을 통해 현재 24기인 원전을 2038년까지 14기로 줄이겠다는 에너지 전환 정책을 내놓았다. 여기에 맞춰 전력수급계획을 수립하고 기존 온실가스 감축 로드맵을 수정하다 보니 탄소배출권 할당 작업도 지연된 것이다.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온실가스 감축은 에너지 전환 정책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는 사안이다. 그런 만큼 탄소배출권 관련 정책도 치밀하게 세워야 한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서 우리나라는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 대비 37%의 탄소배출량을 감축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를 지키려면 석탄과 LNG 등 화석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 문제는 탈원전과 온실가스 감축을 동시에 추진하는 게 어렵다는 점이다. 원전을 급하게 감축하면 화석연료 비중이 커지면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증가한다. 프랑스 정부가 2025년까지 원전 비중을 50%로 줄이기로 했다가 최근 감축 시한을 최대 10년 연장하기로 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을 위해 탈원전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이다. 영국과 스웨덴 등 다른 선진국도 탄소배출 증가를 우려해 기존 원전 폐기 또는 감축 정책을 번복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은 하나의 이념이나 명분만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물론 신재생에너지 기술 수준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전력 수요 증가 추세 등 모든 요인을 감안해야 한다. 그래야 안정적인 전력 공급으로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 삶의 질을 높인다는 에너지 정책의 본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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