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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근 칼럼]균형은 우리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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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이래 문재인 정부까지 10년의 외교사는 미국과 중국 사이 균형에 실패한 시기였고, 또한 균형을 찾는 시기였다. 이 대통령은 한·미동맹 만능주의의 초기 실수를 만회하려고 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균형의 미묘함을 이해하지 못하고 방법도 몰랐지만 균형의 가치는 인식했다. 보수정권으로서는 처음 균형외교를 뜻하는 ‘조화’라는 용어를 쓴 것도 박근혜 정부였다. 문 대통령은 사드·트럼프 요인에 흔들렸지만 균형외교의 필요성을 잘 알고 있다. 한국이 주변 강국 사이에서 평화와 번영의 국익을 추구하는 정상 국가라면 균형은 피할 수 없는, 냉정한 게임의 규칙이다. 이념이나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방법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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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한·미동맹은 북한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중국이 동맹을, 미국이 한·중 협력을 상호 존중할 수 있었던 것도 동맹의 대상이 명확하고 제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민주주의·시장경제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으로 성격을 바꿨다. 이념적으로 중국과 선을 그은 것이다. 그리고 군사동맹의 틀을 완전히 벗고 ‘포괄적 전략 동맹’으로 확장했다. 이젠 “아·태지역, 나아가 범세계적 안보 및 번영의 핵심축”이다. 박 대통령은 이를 발전시켜 ‘글로벌 파트너십’이라고 했고 문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든 미국이 적이라고 찍으면 우리에게도 적이 된다. 이제 적은 북한만이 아니다.

이렇게 달라진 동맹은 균형외교에 난관을 조성한다. 중국 견제 의미를 띤 동맹을 유지하면서 한·중관계를 발전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부터 집 나간 동맹을 한반도에 묶고 대중협력을 확대하는 실용적 접근을 해야 한다. 우리의 평화와 번영을 온전히 한 국가에 맡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한·중 간 사드 갈등 때 미국이 그걸 입증했다. 미·중 간 전략적 이익 갈등이 사드 문제의 본질인데도 미국은 중국의 한국 경제 보복을 지켜보기만 했다. 미국이 사드 철수 카드로 북핵을 해결하도록 중국을 압박하자는 구상이 나돌 때도 마찬가지였다. 트럼프의 베이징행을 앞두고는 북핵 문제를 두고 시진핑과 최후 담판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있었다. 그런데 시진핑으로부터 2000억달러 통상 선물을 받고는 “중국을 비난하지 않겠다”고 했다.

취임 초는 그 반대였다. 중국에 무역불균형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100일의 시간을 줄 테니 북핵 해결에 나서라, 그렇게 못하면 미국 독자 행동으로 해결하겠다고 압박했다. 통상 이익을 희생해서라도 안보를 얻겠다는 전략이 안보를 희생해서 통상 이익을 챙기는 거래로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이는 미국이 부쩍 커진 중국을 미국 뜻대로 움직일 의지와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이 중국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 무조건 미국을 따라야 한다는 편승외교, 동맹 만능론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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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은 남북관계와 동맹 간에도 필요하다. 인도를 찾은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정지시켜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인도는 소통 창구를 열어둘 필요가 있다고 거부했다. 그런데 인도 논리를 먼저 도입한 쪽은 미국이다. 북한의 국제적 고립을 주도한 틸러슨은 대북 채널이 2~3개라고 자랑했다. 한국은 하나도 없다. 남북대화와 동맹은 함께 가야 한다.

균형을 잃는 때가 언제인지 아는 방법이 있다. 소리가 난다. 바로 나라 밖에서 주권, 주권 하는 소리다. 일제가 조선의 주권을 제약하는 강화도조약에서 조선을 주권국이라고 명시할 때 그랬다. 조선은 일본 것이니 다른 열강은 넘보지 말라는 뜻이나 다름없었다. 미국 요구에 한국이 사드 배치로 기울 때도 그랬다. 중국에서 ‘한국은 주권국’이라고 했고, 미국에서도 그 소리가 났다. 이번에 한·중 간 사드 갈등을 봉인하면서 균형외교 논란이 일자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그랬다. “한국이 주권을 포기하지는 않을 것이다.”

서울에 온 트럼프가 북핵 문제 해결 과정에 한국을 건너뛰지 않겠다고 말했을 때 한국인들은 안도했다. 하지만 좀 이르다. 북핵 논의에서 한국이 밀려날지 여부는 한국이 문제 해결을 주도하는 정도에 달려 있다. 북핵 문제를 미국에 맡겨 놓았다면 결코 안심할 일이 아니다. 이명박 정부 때를 떠올려 보자. 한국으로부터 같은 요청을 받은 미국은 형식적인 남북대화 기회 한 번 주는 절차를 거쳐 북한과 단독 협상했다. 자기의 운명을 남의 선의에 맡기는 자에게 돌아갈 것은 없다.

우리가 진정 주권국이라면 두 눈으로 보고 두 발로 서야 한다. 오른발이 왼발에 필요 없는 발이라고 불평하지 않고, 왼발이 오른발을 쓸모없다고 무시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뚝 설 수 있다.

<이대근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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