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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연중기획-이것만은 확 바꾸자!] "낙오자 될라" 불안감에 아등바등…몸도 ‘아픈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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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사각지대 놓인 ‘청년 건강’ / 청년실업 등 사회문제로 고통 / 20대 자살충동 호소 비율 최고 / 음주율도 연령대 중 가장 높아 / ‘팔팔한 젊음’ 프레임에 갇혀서 / 다급한 일자리 정책에만 집중 / 건강한 삶의 향상 관심 못 받아 / 건보 피부양자 가입돼 있어도 / 건강검진 혜택 40대 이상 제한 / 복지부 "연령확대 용역 진행 중"

세계일보

#1 “열정 페이에 20대의 삶을 바친 게 문제였던 것 같아요. 10년 전 야근, 주말근무를 밥 먹듯 했지만 한 달에 받는 돈은 100만원이었습니다. 친구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찾기 위해 백수로 지낼 때 제 분야에서 나름 경력을 쌓고 있는 점에 만족했지만 지나고 보니 허송세월과 다름없더라고요. 30대 들어 허리 디스크로 수술을 받고 지금 1년째 일을 쉬고 있어요. 첫 단추를 잘못 끼운 데다 건강까지 잃은 제가 결혼은커녕 자신조차 건사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습니다.” 방송 외주제작사 기술직으로 근무했던 정모(36)씨는 3년 전부터 허리 통증을 느끼면서도 무거운 장비를 나르고 밤샘 작업을 지속했다. 추간판탈출증 진단을 받은 뒤 한동안 약을 복용했지만 일상생활조차 어려워지며 결국 수술을 받았다. 정씨는 “쉬는 기간 재충전을 하려 했지만 비정규직의 굴레에서 벗어날 자신이 없고 건강까지 잃다보니 우울증이 깊어졌다. 점점 더 살아가는 게 두렵다”고 탄식했다.

#2 “누굴 탓하겠어요. 위장이 망가진 건 백수 때 자신을 챙기지 못한 제 탓이 크죠. 제 때 안 먹고 대충 먹고 제대로 못 자고…. 돈이 없어서 더 그랬지만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한 탓도 컸던 것 같아요.” 중등 임용고시를 치른 4년과 1년의 취업 병행 기간을 거쳐 공공기관에 입사한 김모(29·여)씨는 술을 일절 입에 대지 않는다. 그는 한때 위출혈과 역류성식도염으로 커피조차 마시지 못했다. 아침 공복에 커피를 마시고 점심은 컵밥, 저녁은 김밥 또는 라면으로 때운 시간이 쌓이며 내부 장기에 문제가 생겼다. 김씨는 “고시원에 대학 졸업 사진을 붙여놓고 ‘대학은 왜 나왔나?’라고 자책하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며 “낙오자가 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건강까지는 미처 신경을 쓰지 못했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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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가장 적은 세대는 젊은이들이다. 사회에서도 ‘팔팔한 젊은이’ ‘젊음은 한 밑천’ 등 젊음을 싱그러움과 열정이 가득한 시기로 여기며 청년 세대의 건강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하지만 청년실업, 비정규직 등 사회구조적인 문제로 시름에 젖은 청년이 늘면서 이들의 건강 지표가 점점 나빠지고 있다. 각 질환의 절대적인 환자 수는 여전히 노년층이 많지만 젊은 층의 증가세가 뚜렷한 데다 자살충동을 호소하는 비율조차 삶의 에너지가 충만해야 할 20대에서 가장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금까지 청년 정책은 일자리에만 머물러 있을 뿐 건강을 포함한 청년의 전반적인 삶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한 시혜적 복지에 머물다보니 ‘팔팔한 젊은이’에게는 건강과 관련한 정책적 관심을 갖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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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만 13세 이상 3만86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자살을 고려한 적 있다”는 질문에 20대(7.9%)가 가장 많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가장 큰 원인은 ‘경제적 어려움’(26.6%)이었고 ‘직장 문제’(25.9%), ‘외로움, 고독’(14.3%), ‘가정불화’(9.7%), 질환·장애(9.5%) 등이 뒤를 이었다.

건강에 나쁜 행동은 가장 많이 하면서 자신을 돌보지 않는 세대도 20대였다. 20대의 음주율은 78.7%로 전 연령대 가운데 가장 높았다.

윤소하 의원(정의당)실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통계정보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알코올의존증 환자의 경우 30∼50대는 2012년에 비해 줄었지만 20대는 20.9%나 늘었다. 우울증 환자도 10대(-14.5%), 30대(1.6%), 40대(-0.4%), 50대(-1.2%)는 소폭 늘거나 감소했지만 20대는 22.2% 증가했다.

식사를 거르거나 운동조차 하지 않는 청년들도 상당했다. 20대 청년의 절반(55.3%)은 아침을 먹지 않았고 3명 중 1명 이상(35.7%)은 운동도 하지 않았다. 아침을 거르는 60세 이상이 10.3%에 그친 것과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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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에서 건강검진 혜택을 주는 중장년층에 비해 20대의 정기 건강검진 비율(28.9%)은 현격하게 낮았다. 정부에서는 건강보험에 가입한 직장·지역 가입자뿐만 아니라 피부양자 또는 세대원에게도 건강검진 혜택을 주고 있는데 40세 이상으로 연령을 제한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20대 청년은 피부양자(또는 세대원)로 등록돼 있더라도 검진 혜택을 받지 못한다.

1980년대까지 청년들은 학교 졸업 후 노동시장에 자연스럽게 편입됐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부터 ‘고용 없는 성장’과 IMF 외환위기를 거치며 대규모 대졸자들이 ‘제도 밖 청년’이 돼 고난의 시기를 겪게 됐다. 이 기간 정신건강뿐만 아니라 신체적 건강까지 나빠지는 비율이 늘고 있다.

하지만 2015년 ‘2020 서울시 청년정책’(서울형 청년보장)을 발표한 서울시를 비롯한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개별적으로 청년정책을 추진하거나 부처별로 사업을 수행하고 있을 뿐 이를 아우른 중앙정부 차원의 청년 종합계획은 마련되지 않았다. 기존 정책들도 일부 교육 정책을 빼면 전부 일자리와 관련된 것들이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에서 만든 대통령 직속 청년위원회를 폐지하고 일자리위원회에 청년분과를 만들었다. 대구경북연구원 김세나 부연구위원은 “청년 문제에 대한 지자체 계획이 속속 발표되고 있지만 중앙정부 차원의 종합계획은 부재한 상황”이라며 “무엇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중앙정부의 방향성 제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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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게 일자리가 최고의 복지인 건 맞지만 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일자리 늘리기의 한계와 저출산·고령화로 향후 청년 세대가 짊어져야 하는 사회적 부담을 고려하면 이들의 건강을 돌보는 정책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 의원은 지난 보건복지위원회 국감에서 “비인간적인 경쟁과 학업·취업·육아 등 스트레스로 인해 가장 건강하고 활발해야 할 청년들의 건강이 악화하고 있다”며 “청년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건강검진조차 받지 못한 채 건강 정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삼포, 오포 세대로 대변되는 심리적 절망감으로 인해 마음과 신체 건강이 악화되는 것 같다”며 “(청년 세대 맞춤형 건강검진 추가 도입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도 “청년들의 건강이 나빠지는 추세가 계속 나타나 지난 3월부터 건강검진 연령대 확대와 관련한 연구용역을 이미 진행 중”이라며 “우울증과 관련된 항목 포함 여부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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