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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이슈 난민과 국제사회

난민 사망자 3만3293명 이름 불러준 독일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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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나치에 떠밀려 추락사한 소년

살 길 찾다 바다에 빠져 죽은 임신부

신원, 사망 사유 등 한줄씩 기록

"한줄 한줄이 각각 이야기 한다,

사망자 명단은 갈수록 길어진다"

중앙일보

지난 6일(현지시간) 리비아 해안에서 해안 경비대의 구명선에 올라타는 난민들. 구조되지 못한 5명은 사망했다. (Lisa Hoffmann/Sea-Watch via AP)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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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1일, 무명(17·소년), 소말리아, 네오나치 당원이 독일 튀링겐 슈몰른의 탑에서 뛰어내리라고 강요."


유럽에서 새 삶을 찾겠다고 독일에 온 소말리아의 난민 소년은 이렇게 네오나치의 등에 떠밀려 탑 아래로 몸을 던졌다.

독일 일간 타게슈피겔은 이렇게 1993년부터 지난 5월까지 유럽으로 향하다 숨진 난민 3만3293명의 명단을 11일(현지시간) 게재했다. 이름과 나이, 성별, 고향, 사망 사유 등을 한줄에 축약했지만 신문 지면 46쪽을 빼곡히 채우는 분량이다.

"2016년 7월 25일, 무함마드 산라키(남), 시리아, 자신이 게이라고 밝히는 바람에 납치·강간당한 뒤 이스탄불에서 참수."

"2006년 2월 21일, 무명(임신부), 아프리카, 난민 보트를 타고 프랑스령 마요트 섬으로 향하다 바다에 빠져 익사."

특별한 사망 사유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유럽으로 향하는 도중 지중해에 빠져 죽었다. 유럽 본토 상륙에 성공했더라도 이들을 기다리는 건 참혹한 죽음이었다. 얼어 죽거나 폭력으로 숨지고, 난민 구금 센터에서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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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일간 타게슈피겔이 홈페이지에서 공유한 난민 사망자 명단 PDF 파일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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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게슈피겔은 이 명단을 실으면서 독일에게 11월 9일이 '운명의 날'인 이유를 설명했다. 1923년 11월 9일에는 히틀러가 반란을 선포했고, 1938년 11월 9일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시작됐다. 1989년 11월 9일엔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최고와 최악이 반복되는 가운데 통일이라는 선물을 받게 됐고, 독일이 정의를 지켜야할 의무가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

신문은 "오늘날 독일 사람들이 가진 기회가 모든 사람에게도 부여돼야 한다는 걸 잊지 않고 싶다"고 밝혔다. 국경 없는 시대에 국경 밖에서 살아야 하는 수백만 명이 고국의 공포와 굶주림, 가뭄과 전쟁으로부터 도망치지만 사람들은 그저 '난민이 있다' 정도로만 인식한다는 것이다.

신문은 "유럽 국경 안팎의 통제 정책으로 인해 숨진 망명 희망자와 난민, 이민자들에 관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면서 "우리는 그들을 존중하는 동시에 한줄 한줄이 이야기를 한다는 걸, 그리고 그 명단은 날이 갈수록 길어진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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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명보트에 오르기 위해 필사적으로 헤엄치는 난민. AFP PHOTO / Alessio Paduan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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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명단에는 단 한줄이지만, 그 속엔 담지 못하는 사연들이 숨어 있다. 명단에는 " 2016년 10월, 파팀 자와라(19·여), 감비아, 이탈리아로 향하던 중, 리비아 해안에서 익사"라고 표현된 소녀. 가디언에 따르면 파팀 자와라는 감비아 국가대표 여자 축구 골키퍼였고, 유럽에서 승부를 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운명이다. 어떤 위험이든 감수하겠다"며 난민선에 올랐다. 하지만 갑작스런 폭풍으로 배가 뒤집혔다.

역시 "2003년 7월, 엘마스 오즈미코(40·여), 터키, 영국에서 의료 처치 늦어져 패혈증으로 사망"이라 간결히 적힌 이 여성은 두 아이와 조카까지 데리고 트럭의 뒷꽁무늬에 매달려 국경을 탈출했다. 먼저 영국으로 탈출한 남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BBC뉴스에 따르면 몸이 좋지 않다고 느꼈지만 억류되는 바람에 진료를 받기까지 12시간이 걸렸다. 그의 남편은 5년 만에 병실에서 재회한 아내가 말조차 할 수 없는 상태였다며 눈물을 흘렸다.

난민 사망자 명단 다운로드 링크.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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