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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피의 숙청' 사우디에 세계 각국 '픽미' 외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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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

1000억 달러 사상 최대 IPO 나서

영국·미국·일본이 치열한 유치전

영국 정부, 아람코에 신용보증 제공

상장 규정도 아람코에 유리하게 개편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로 직접 구애

중앙일보

지난 4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살만 국왕과 만난 테리사 메이. 메이는 런던증권거래소의 장점을 역설하며 살만 국왕에게 아람코 런던 증시 상장을 권유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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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에서 왕권을 둘러싼 '피의 숙청'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각국 정부들은 기업공개(IPO)를 앞둔 사우디 국영 석유기업 아람코에 적극 구애를 보내고 있다.

영국 재무부는 아람코에 사상 최대 규모인 20억 달러(2조2380억원)의 신용보증을 제공할 방침이라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9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재무부는 성명을 통해 신용보증을 위한 아람코의 자산실사를 실시했으며 현재 수출신용기관인 수출금융청(UKEF)을 통해 이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영국 정부가 아람코의 IPO를 유치하기 위해 신용보증이라는 특혜를 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FT는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를 인용해 "이번 신용보증은 아람코 IPO를 유치하려는 절박한 시도"라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FT에 "영국 정부의 신용보증 제공은 시기적으로 볼 때 IPO와 관련이 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사우디는 아람코의 지분 5%를 내년 중에 상장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어느 증시에 상장할지는 결정을 내리지 않은 상태다. 사우디 정부는 아람코의 기업 가치를 약 2조 달러로 보고 있다. 실제 증시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을 경우 IPO 규모는 최소 1000억 달러로 인류 역사상 최고 액수가 될 전망이다. 현재 최고 기록은 2014년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세운 250억 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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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살만 국왕을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아베 총리는 살만 국왕에게 대형 석유업체 아람코 주식의 도쿄 증시 상장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총리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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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재무부는 이번 신용보증이 아람코의 IPO와 무관한 별개의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재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내고 "UKEF는 영국 상품을 구매하려는 해외 구매자에게 자금을 제공해 영국의 수출을 늘리기 위해 일한다"며 "아람코에 신용보증의 형태로 영국에서 상품을 조달하도록 돕는 것도 UKEF 업무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영국 정부는 지금까지 아람코 IPO 유치를 위해 사우디에 각종 특혜를 제공해왔다는 점에서 이번 신용보증도 일종의 특혜가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난 7월 영국 금융감독청은 국영 기업이 런던 증시에 상장할 경우 각종 의무를 면제받도록 규정을 수정한 데 이어 증시 상장 기준을 추가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모두 아람코의 상장에 유리한 조치다.

영국뿐 아니라 미국, 일본, 홍콩, 싱가포르 등 세계 주요 증권거래소 소재 국가에서도 아람코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3월 사우디의 살만 국왕이 방일했을 때 "아람코 주식의 도쿄 증시 상장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아람코 유치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아시아 순방을 앞둔 지난 4일 트위터를 통해 "사우디아라비아가 아람코 IPO를 뉴욕증권거래소(NYSE)와 함께 한다면 매우 감사할 것"이라며 "이는 미국에는 중요한 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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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사우디 리야드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 두번째)과 살만 국왕(왼쪽 세번째)이 대화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살만 국왕에게 아람코의 뉴욕 증시 상장을 요청했다.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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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기내 기자회견에서도 "얼마 전 사우디의 살만 국왕과 이 문제에 대해 얘기했다. 그들은 (뉴욕 증시 상장을) 고려해보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러나 사우디는 지금 아람코 IPO가 안중에 없다. 여러 위험요소가 있기 때문"이라며 "아주 슬픈 일"이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말한 위험요소 중 하나는 사우디에서 벌어지고 있는 권력 암투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4일 자신이 이끄는 반(反)부패위원회를 통해 왕자 11명, 현직 장관 4명, 전직 장관 수십 명을 부패 혐의로 체포했다. '중동의 워렌 버핏'이라 불리는 억만장자 무함마드 알왈리드 빈탈랄 왕자, 군부의 핵심인사인 미텝 빈압둘라 왕자, 리야드 주지사를 지냈던 투르키 빈압둘라 왕자 등 왕족이 이날 투옥됐다. 만수르 빈무크린 왕자는 5일 원인 불명의 헬기 사고로 사망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빈살만의 왕가 숙청 작업이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하에 이뤄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WP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제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이 지난달 29일 비밀리에 사우디를 찾아 며칠 동안 빈살만과 새벽 4시까지 밀담을 나누며 향후 전략을 논의했다.

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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