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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23만명 청원한 ‘낙태죄 폐지 운동’ 현실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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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11월 중 낙태죄에 대한 공식 답변

-연간 34만명 낙태…불법 시술, 낙태약 횡행

-女 자기결정권 vs 태아 생명권 논란 재점화



[헤럴드경제=박일한 기자]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 광장 코너에 등록된 ‘낙태죄’ 폐지 청원의 참여인이 한달만인 30일 23만5372명으로 마감됐다. 청원 참여인이 20만 명을 넘은 건 얼마전 만 14세 미만은 형사처분을 받지 않게 돼 있는 현행 소년법을 개정해 처벌을 강화해달라는 청원 이후 두 번째다.

앞서 청와대는 특정 청원의 참여인이 30일 이내 20만명을 넘으면 장관이나 청와대 수석급이 공식 답변을 내놓겠다고 해 어떤 답변이 나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헤럴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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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형법 제269조에 낙태죄가 명시돼 있다. 임신한 여성이 낙태를 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낙태 수술은 현행법상 강간, 정신장애, 전염성 질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 특수한 경우에만 허용하고 있다. 의사도 이를 어기면 처벌 받는다. 형법 270조는 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등이 여성의 요구로 낙태 시술을 하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럼에도 낙태는 음성적으로 횡행한다. 결혼하지 않은 커플이나, 아이를 원하지 않은 부부도 임신을 할 경우 낙태를 선택하는 사례가 많다.

불법이다 보니 실태를 파악하긴 쉽지 않다. 보건복지부가 2005년과 2010년에 실시한 조사가 거의 전부다. 2005년 조사에서 한 해 동안 낙태 건수는 34만2400여건으로 추정됐다. 그런데 5년 후 2010년 조사에서는 이 수치가 16만8700여건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2009년부터 정부가 불법 낙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긴 했지만 실제보다 과소 추정됐을 것이란 게 전문가들은 평가다. 실제 2010년 조사에 여성들의 낙태 인식도 조사가 포함됐는데, 응답자의 40.2%가 최근 3년간 낙태가 오히려 증가했다고 답변했다. 감소했다는 답변은 15.7%에 불과했다. 정부가 단속 성과를 과장하기 위해 상당히 보수적으로 추정치를 잡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은밀하게 진행되는 낙태가 많은 만큼 불법 낙태약 판매도 횡행한다. 조금만 검색하면 별도 성인인증 절차없이 낙태약을 살 수 있는 불법 온라인 상거래 사이트를 찾을 수 있을 정도다. 제대로 된 진단과 검증 없이 거래되다 보니 성분을 알 수 없고 중국산 유사품도 많이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약품 가운데는 과다출혈을 일으키는 등 여성의 건강을 크게 해치는 것들도 많아 주의해야 한다는 게 산부인과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낙태를 불법으로 정했지만 우리나라의 낙태율은 높은 편이다. 경기연구원은 최근 한국 가임 여성 1000명당 낙태를 20명 초중반대로 추정했다. 2005년 추정치 29.8명보다 높지만 2010년 과소 추정된 15.8명보다는 높을 것으로 봤다. 이는 미국(2013년 15.9명), 노르웨이(2008년 14.5명), 프랑스(2012년 14.5명), 캐나다(2005년 13.7명), 네덜란드(2013년, 8.5명)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과 뉴질랜드, 영국, 이스라엘, 일본, 칠레, 핀란드 등 9개 나라를 제외한 25곳에서 낙태는 합법이다.

이번 낙태 청원운동을 주도한 최초 청원인은 “원치 않은 출산은 당사자와 태어나는 아이, 국가 모두에 비극적인 일”이라며 “현재 119개국에서 자연유산 유도약(미프진)을 합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낙태죄 폐지와 자연유산 유도제의 국내 도입을 부탁한다”고 주장했다.

낙태죄 폐지 논란은 청와대 청원을 계기로 앞으로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재판소가 2012년 낙태죄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며 ‘태아 생명권’을 ‘여성 자기결정권’보다 중요한 가치로 내세웠지만 현실과 법의 괴리가 크다 보니 아직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임명된 김명수 대법원장도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여성의 자기결정권 존중 차원에서 임신 초기에 한해 낙태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법원 판결에서도 이런 분위기는 감지된다. 낙태죄에 대한 처벌이 대부분 벌금형에 그치는 것은 이런 논란과 무관하지 않는게 법조계 시각이다.

대전지방법원은 지난 7월 41건의 낙태 시술을 한 산부인과 의사 A씨에게 벌금 8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태아의 생명 보호를 위해 낙태 행위를 금지하고 있지만,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 또한 가볍게 볼 수 없는 점, 임부들이 낙태를 원해 이뤄진 것이고 이들이 낙태에 이르게 된 동기 및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다”고 판시했다.

불법이지만 여성의 자기결정권도 인정해야 한다는 다소 ‘모호한’ 판결이다. 낙태죄에 대한 사회적 시각이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았다는 방증인 셈이다.

/jumpcut@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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