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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5천원 아끼자고…” 아파트 경비원 해고 막아낸 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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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경기 고양·충남 서산 한 아파트 주민들

주민투표서 경비노동자 감축 압도적 ‘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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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미경씨가 작성한 호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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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주민의 호소문이 회색 도시 아파트에 한떨기 작은 공존을 꽃피웠다. 그가 사는 아파트 단지가 경비 노동자 감원을 추진했으나, 주민투표 끝에 감원을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의 한 아파트 주민 엄미경씨는 지난 11일 밤 경비원 감축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호소문 900여장을 아파트 단지 내 우편함에 일일이 꽂았다. 경비 노동자 24명 중 최소 인력 13명만 남기고 11명을 해고하는 주민투표를 닷새 앞둔 날이었다. 엄씨는 호소문에 “맞벌이 부부가 많은 우리 아파트에서 택배와 민원, 청소 등 경비원분들께서 늘 도움을 주셨다. 당장은 월 2~3만원의 관리비가 줄어들겠지만, 관리 허술로 노후 아파트 이미지(가 되면) 장기적으로 결코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관련기사: “경비원 감축 안돼”…아파트 870세대에 일일이 호소문 돌린 주민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1420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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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한 아파트 주민 엄미경씨가 11일 밤 경비원 감축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호소문을 작성해 870세대의 아파트 우편함에 일일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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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주민투표가 치러졌다. 투표에 참여한 493세대 중 364세대가 감원에 반대표를 던졌다. 엄씨는 24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가정 경제가 어렵다 보니, 몇만원이라도 아끼려고 감축에 찬성하는 분들이 더 많을까봐 걱정했는데,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아 놀랍고 기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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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에 있는 한 아파트 주민 구재보씨가 지난 14일 경비원 감축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호소문을 작성해 760세대의 아파트 우편함에 일일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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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에서도 공생의 호소문이 빛을 발했다. 이곳 한 아파트 단지에서도 일부 주민들이 8명의 경비원을 4명으로 줄이는 안을 제시했다. 하지만 주민 구재보씨가 지난 14일 인원 감축에 반대하는 호소문을 돌리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구씨는 호소문에 “5천원을 아끼기 위해 경비원 4명과 그에 딸린 가족들의 목숨을 끊고 싶지 않다”고 썼다. 그도 760세대 우편함에 호소문을 한장 한장 직접 꽂았다. 구씨는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관리비 1000~2000원이 소중하긴 하지만, 그 돈을 아끼자고 경비원을 해고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면서 “사람에 대한 배려가 없고 경제 논리가 우선인 아파트 환경을 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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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서산에 있는 한 아파트에서 경비 노동자 인원 감축 소식이 알려지자, 일부 주민들이 손글씨로 쓴 호소문을 작성했다.


일부 주민들도 “경비원 해고를 반대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써서 부착하자”는 구씨의 공동행동 제안에 호응했고, ‘경비 노동자 감축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손글씨 호소문이 아파트 곳곳에 나붙었다. 결국 442세대가 참여한 주민투표에서 386세대가 경비 노동자 감원에 반대했다. 구씨는 페이스북에 “최저임금이 오를 때마다 매번 이런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면서 “보다 근본적인 방안을 고민하고 호소가 아닌 운동으로 만들 필요를 느낀다”고 밝혔다.

박수진 기자 jjinpd@hani.co.kr, 사진 엄미경씨, 구재보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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