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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文대통령ㆍ노동계 만찬, '용금옥 추어탕' 직접 먹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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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식, 원주식과 다른 '서울식 추탕'…고춧가루 양념 빨간 국물에 유부도 들어있어

24일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 인사들의 청와대 만찬 메인 메뉴인 '용금옥 추어탕'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용금옥은 1932년 개업해 지금도 서울 청계천 옆인 다동에서 성업 중인 곳이다. 청와대는 청계천은 노동계의 뿌리이며 이곳에서 공수한 서민들의 가을철 보양식 추어탕은 상생과 화합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그 상생과 화합의 음식을 직접 먹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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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금옥의 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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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식, 원주식과 다른 서울식 '추탕'=추어탕이라고 소개됐지만 용금옥에서 정식 메뉴 이름은 '추탕'이다. 이는 예로부터 서울식 추어탕을 이르는 말이었다. 미꾸라지를 갈고 된장을 쓰는 남원식이나 미꾸라지를 통째 넣고 고추장으로 맛을 낸 원주식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배추와 간 추어를 넉넉하게 넣고 된장을 풀어 끓인 경상도식과도 다르다. 서울 사람조차 낯선 서울식 추탕은 소고기로 육수를 내 얼큰하게 고춧가루 양념을 하고 미꾸라지를 통째로 넣어 끓이면서 유부, 두부, 버섯 등도 함께 넣어 맛을 더한 음식이다.

추어탕은 1950년대만 해도 이 같은 서울식이 주류였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전후 술로 명성을 떨쳤던 시인 수주 변영로는 '명정 40년'에 이렇게 썼다. "유명한 해정(解酊) 주점이 화동에 있었는데 일컫기를 황보 추탕집이라 하였다. 그 당시 황보 추탕이라 하면 간이주점의 별칭이고 해정 술집의 대용어나 상징어가 될 만한 정도의 명물 집이었다. 우리는 거시내시(去時來時) 심심하면 들러서 해정보다는 차라리 해갈을 한 바…" 그러면서 변영로는 이 황보 추탕집과 불가분의 관계로 연상되는 인물이 한글학자이며 역사학자였던 애류 권덕규라고 소개했다. 그 시절 수주와 애류는 해장을 위해 추탕을 먹으로 갔다가 또 그 국물에 술을 마시고 그랬던 모양이다.

수주와 애류가 해장을 위해 찾았다 해갈을 했던 그 추탕집은 당시 경기중학교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화동에 있던 경기중학교 건물은 지금의 정독도서관이다. 정독도서관 인근에서 그 황보 추탕집은 이미 찾을 수 없다. 이 집과 더불어 1930년대 서울에는 명성 높은 추탕집이 세 곳 더 있었는데 형제추탕과 곰보추탕 그리고 바로 용금옥이다.

우선 형제추탕은 1920년대 말 선산 김씨 다섯 형제들이 동대문 밖 신설동 경마장 옆에 문을 연 집이었다. 1960년대 중반 문을 닫았다가 형제 중 막내가 사라져가는 추탕을 계승하기 위해 1980년대 말 문을 다시 열었고 지금은 평창동으로 이전해 형제추어탕이라는 이름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곰보추탕은 형제추탕에서 일하던 정부봉씨가 1930년대 초 독립해서 낸 가게인데 처음에는 간판 없이 추탕을 팔았다. 주인의 얼굴 때문에 손님들이 '곰보추탕'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집은 안암교 근처에서 80년 넘게 자리를 지켰지만 가게를 물려받을 사람이 없어 최근 문을 닫았다.

용금옥은 1932년 개업해 지금도 서울 한복판에서 성업 중이다. 올해로 85년의 역사다. 이 세월 동안 서울식 추탕만을 고집하고 있다. 황보 추탕집에서 해장을 하다 해갈을 하던 변영로도 용금옥의 단골이었다고 한다. 요리사 박찬일은 노포 기행을 엮은 '백년식당'이라는 책에서 이 집에 대해 이렇게 썼다. "현대사의 고단한 역사를 그대로 안고 있는 집이다. 이곳이 식당은 밥 먹는 집이라는 전통적 통념과 달리 현대사에서 늘 거론되는 건 이유가 있다. 해방 전부터 민족 지사와 문사, 예술인들의 사랑방이었고, 해방 후에는 야당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북 회담에서 북측 인사가 이 식당의 안부를 물었다는 전설 같은 얘기도 소개돼 있다. "그곳의 맛은 여전합니까?"라고 물었을까. 아마도 북한에서는 이 서울식 추탕의 맛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맛은 어떨까. 용금옥의 추탕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고춧가루 양념을 한 빨간 국물에 뜬 유부였다. 추어탕에 유부라니 다소 생경했지만 휘 저어보니 통째 든 추어가 떠올랐다. 10㎝는 돼 보이는 크기의 추어가 꽤 여러 마리 들어 존재를 뽐냈다. 넉넉하게 준비된 파를 넣고 한 숟가락 떠 입에 넣으니 육개장과 비슷한 대중적인 맛이 들어왔다. 유부는 국물과 잘 어울리고 두부, 버섯 등 여느 추어탕에는 들어가지 않는 건더기들도 한 그릇의 추탕 맛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었다.

추어의 살은 국물을 머금고 있지만 담백하고 뼈는 고소하게 씹혔다. 추탕 한 그릇에 고단한 역사도 담겼지만 다양한 맛도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는 것이다. 소고기 육수의 시원함과 미꾸라지의 고소함, 얼큰한 국물을 머금은 국수, 제피가루의 매콤하고 톡 쏘는 향까지. 수주가 소개한 것처럼 서울식 추탕은 술을 부르는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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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가을 음식 '추탕' = 청와대가 서울식 추탕을 만찬 메뉴로 선택한 이유는 추탕이 가을 제철 음식이면서 서민들의 음식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름만 봐도 고기어(魚)에 가을추(秋)를 더해 미꾸라지추(鰍)를 쓰는 추어는 겨울잠을 자기 전 몸에 충분한 영양을 비축하는 이 시기 살이 올랐다. 늦여름 논에서 물을 빼기 위해 골을 내는 작업을 하면 살이 오른 미꾸라지를 잔뜩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미꾸라지로 예로부터 국을 끓여 잔치를 열었는데 이를 '상치마당'이라고 했다. 상치(尙齒)는 노인을 존경한다는 뜻이다. 효능을 살펴보면 동의보감에는 "맛은 달고 성질이 따뜻할 뿐 아니라 독이 없어 비위의 기능을 보해주고 설사를 멈추게 한다"고 소개돼 있다. 중국 약학서 본초강목에는 "배를 덥히고 원기를 돋우며 양기에도 좋고 백발을 흑발로 변하게 한다"고 언급돼 있다. 성분을 봐도 단백질, 칼슘, 철분, 비타민 등의 함량이 높고 지방은 적다.

하지만 미끈거리고 기다란 미꾸라지를 통째 넣어 탕으로 끓여 먹는 것을 썩 내켜하지 않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하천가에 사는 못생긴 물고기로 천대받기도 했다고 한다. 청계천에서 서민들이 모여 끓여 먹던 추탕이 유명했다는 얘기도 전해온다. 추탕에는 그 외양보다는 영양과 맛을 더 중히 여겼던 서민의 정서가 서려 있었던 셈이다.

김철현 기자 kch@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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