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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6 (화)

[정리뉴스]첫 숙의민주주의 실험, 실제 목격자들의 평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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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24일 출범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지난 20일 막을 내렸습니다. 공론조사 결과는 ‘이미 진행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는 재개하고, 원전 자체는 앞으로 줄여나가야 한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 숙의민주주의 실험 결과를 두고 엇갈린 평가가 나왔습니다. 성숙한 민주주의 일면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있는 반면 공론조사의 전문성·대표성에 시비를 거는 목소리도 여전합니다. 그렇다면 공론조사의 중심이었던 471명 시민참여단은 어떻게 평가할까요? 공론 과정을 직접 목격하고 참여한 이들의 회고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공론화위 시민참여단, 자문위원, 외부 전문가 등 ‘내부자들’이 공론화위 결과 발표를 전후해 언론에 전한 이야기를 모아 정리했습니다.

■“미래세대는 건설 중단을 원했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공론화위에 건설 중단 측 전문가로서 참여했습니다. 윤 교수는 경향신문 기고(▶[녹색세상]신고리 공론화 참여 소회)에서 9월30일 진행한 미래세대 토론회에 참석해 고등학생 106명 앞에서 강의하고 문답했던 때를 언급하며 “정확한 사실을 알고 싶다는 열망으로 학생들의 눈빛은 반짝였고 누구보다 신중하고 치열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이 토론회는 공론화위가 만 19세 미만 청소년이 의견을 개진할 계기가 없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합니다.

윤 교수는 고교생들과 토론회를 함께 한 결과 “공론화위의 기계적 중립이 못내 안타까웠다”고 했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래세대 토론회 11개 조 가운데 5개 조가 중단, 또 5개 조가 기타의견, 나머지 1개 조만 재개로, 다수가 중단을 원했다. 기타의견에도 건설 중단 내용이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중략) 하지만 시민참여단에 보여준 5분짜리 영상에는 건설 중단, 재개, 기타의견이 하나씩 소개되었다. 미래세대 의견이 시민참여단 결정에 반영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미래세대가 건설 중단을 더 원한다는 사실은 전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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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화위는 ‘기울어진 운동장’?

공론화위에 건설 중단 측으로 참여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대표는 민중의소리 기고(▶[기고] 진지한 시민참여단, 물밑에선 한바탕 소동)에서 공론화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행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건설 중단 측 뿐만 아니라 재개 측도 이 같은 문제를 제기하게 된 건 공론화 과정에서 정부, 공기업, 정치권 역할이 명확히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실제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건설 재개 측이 한수원 사장을 발표자로 선정한 사례를 들었습니다. 이 대표는 “공론화 프로그램은 이후에도 다양한 갈등분야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결국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고, 그 과정에서 공론화 결과는 훌륭한 참고자료로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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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점차 전문가가 되어갔다”

공론화 방식을 두고 많이 나오는 비판 중 하나는 ‘전문 지식이 없는 비전문가가 정책을 결정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시민참여단에서 활동한 시민들은 연합뉴스와 인터뷰(▶'과정이 공정하니 어떤 결론도 수용'···시민참여단 40일 기록)에서 이런 주장을 반박했습니다. “원전에 대해 완전히 학습했다고 생각한다” “지속적으로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찾아보며 열심히 준비했다” “비 전문가였던 시민참여단이 공론화 과정을 통해 점차 전문가가 되어 갔고, 결국은 제대로 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한다” 등입니다. 시민들은 오히려 “재개와 중단 입장을 가진 양쪽 대표들이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거나 토론회를 거부하는 등 파행적으로 운영되기도 했다”이라며 전문가 집단의 ‘편향’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혹시 해코지하지는 않을까 걱정도

시민참여단에서 활동한 한 시민은 한겨레신문 기고문(▶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조사 시민참여단입니다)에서 자신이 겪은 공론화위 과정을 회고했습니다. 시민참여단으로 선정됐을 때 주변사람들이 보인 상반된 반응, 첫 오리엔테이션 장소 인근 시위대를 보고 혹시 해코지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기억, 공론화위 ‘하이라이트’인 2박3일 합숙토론회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상세하게 묘사했습니다. 이 시민은 “앞으로는 이런 갈등이 일어나지 않는 게 제일 좋겠으나, 만일 또다시 이런 상황에 맞닦뜨린다면 주저없이 참여해 제 의견을 당당히 밝히고 싶다”고 글을 맺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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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인 시민적 숙의가 이뤄졌다”

공론화위 자문위원으로 참여한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경향신문에 기고한 글(▶사회갈등 조정하고 타협하는 시민의 힘 ‘숙의민주주의 가능성’ 보여준 공론조사)을 통해 “시민들은 이번 공론조사를 통해서 적절한 기회가 주어지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다면, 누구보다 현명하게 갈등을 해소할 방법을 찾아낼 능력이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평가했습니다. 그러면서 공론화위를 두고 제기된 여러 비판을 ‘국론 분열’ ‘대표성’ ‘전문성’ ‘숙의 효과’ 등 4가지로 요약해 조목조목 반박했습니다.

국론 분열 주장에 대해 이 교수는 에너지 정책처럼 영향 받는 사람이 많고 이해관계 대립이 극심한 경우 공론화 없이 밀어붙였을 때 극심한 사회갈등을 유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시민참여단에 대표성이 있느냐’는 비판엔 “공론조사에 참여하는 시민들은 의견의 담지자일 뿐”이라며 “어디까지나 정부가 정책의 최종 결정자”라고 했습니다. 전문성 문제제기엔 시민참여단의 설문지 지식문항 정답률 증가, 전문가에 던지는 질문이 시간이 갈수록 충실하게 변했던 점 등을 반박 근거로 제시했습니다.

숙의 과정 자체를 불신하는 입장에 대해선, 공론화위 홈페이지에 공개된 자료 및 동영상을 직접 보면서 ‘5가지 숙의 조건’이 어떻게 실현됐는지 직접 검증해보기를 권했습니다. 5가지 조건이란 ‘공론조사 창시자’로 불리는 제임스 피시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가 제시한 정보의 충실성, 주장의 균형성, 참여자 다양성, 토론의 평등성, 주장의 설득력 등을 이릅니다. 이 교수는 “의견 변화의 규모로 보나 학습수준으로 보나 성공적인 시민적 숙의가 이루어졌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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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에서 ‘숙의’로의 전환, 언제 할 것인가

공론화위에 검증위원으로 참여한 박원호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는 경향신문 기고(▶[공론조사 참관기]우리는 그렇게 토론을 시작했다)에서 공론조사 ‘결과’보다는 ‘과정’에 주목해 얻은 교훈을 정리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시민을 설득하는 일이 어렵지만 불가피하고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시민참여단은 낯선 사람들과 토론하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며 생각의 차이가 토론과 합의를 향한 출발점이란 걸 알았다는 것입니다. 박 교수는 “이번 공론조사의 가장 핵심적 결과는 59:41의 분할이 아니라, 최종결과가 본인의 의견과 다를 경우에도 이를 존중하겠다는 93.2%의 숫자였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과제 또한 지적했습니다. 우리가 택한 대의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정책 결정 권한과 책무를 짊어져야 마땅한데, 앞으로 과연 언제, 어떻게 이번 공론화 같은 숙의민주주의 과정을 택할 것인지에 대해 논란이 남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일각에서는 “앞으로 모든 정책 결정에 공론화위를 설치할 것인가”란 의문도 제기해 왔습니다. 박 교수는 기고문 제목에서도 언급했듯 “이제야 우리는 비로소 토론을 시작할 준비가 된 셈”이라고 글을 맺었습니다.

<정리|허남설 기자 nshe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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