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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취재파일]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스펙' 만들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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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종시대, 새로운 사교육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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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활동. 다 같이 해볼까요? 동아리는 생기부의 꽃이다”
“동아리는 생기부의 꽃이다”


강단에 서 있는 강사가 동아리는 ‘생활기록부의 꽃’ 이라고 외치자 앉아 있던 학부모들도 다 함께 그 말을 구호처럼 외친다. 오전 11시, 서울 강남의 한 컨설팅 학원의 풍경.

학생부 종합전형의 비율이 점차 늘어나면서 이런 풍경은 대치동에서 흔한 모습이 됐다. 실제 2018학년도 4년제 대학의 전체 모집인원 중 74%는 수시로 뽑힌다. 그 중 학생부 교과전형이 51%, 학생부 종합전형이 32% 정도인데 비율상 제일 많은 학생부 교과전형은 지난해에 비해 2%정도 줄었고, 학생부종합전형은 오히려 2.8%정도 늘어났다. 학생부 종합전형이 대세는 대세다.

당연히 사교육 시장도 ‘학생부 종합전형’을 위한 맞춤형 컨설팅으로 바뀌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고등학생들의 소논문 쓰기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애플리케이션 만들기가 대세다. 학생부종합전형을 위한 스펙도 유행이 있는데 강남의 사교육이 이 유행을 선도한다. 고등학생들은 사교육의 힘을 빌려 이공계 박사과정생이 쓸법한 소논문을 만들어 내고, 학생부에 기록한다. 보통 학원에서는 이런 소논문 하나당 약 2~3백 만 원을 부르는데 실제로 이공계 석·박사 생들이 대신 실험해주고 대필까지 해준다. 고등학생들이 너도 나도 돈만 내면 소논문을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교육부가 이런 상황을 보다 못해 학생부에 외부 소논문활동을 기록하지 못하게 하자 이제 사교육 시장은 교내활동으로 손을 뻗쳤다. 그게 바로 동아리다.

동아리도 어른들이 알던 그 동아리가 아니다. 단순히 학생들끼리 모여서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남들과 다른 것을 창출해 내고 그걸 학교생활기록부에 적어야만 학생부 종합전형을 위한 ‘스펙’이 되기 때문이다. 결국 컨설팅학원들이 앞 다퉈 동아리 사교육 강좌를 만들었다. 도대체 동아리 사교육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서 한 컨설팅학원을 찾아가 봤다. 그들은 학생들이 스스로 만들어서 활동하는 ‘자율동아리’를 위한 동아리 계획서를 써주고, 동아리 활동에서 하는 실험을 다른 곳에서 대신 해주기도 한다. 또 동아리 활동의 결과물로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어 구글플레이 스토어에 직접 등록해주기도 한다고 광고한다. 어떤 학원은 교과 과목을 수강하면 자율동아리 활동까지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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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런 학원을 다닐 수 있는 학생들이 소수라는 것이다. 동아리 사교육을 위해 찾은 한 학원은 설명회에서 수강료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설명회가 끝난 뒤 직접 물어봤지만 ‘어디서 나오셨나?’ 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기자인 걸 알아챘나 싶어서 다음날 저녁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전화로 수강료를 물어봤지만 이번에는 유선으로는 알려줄 수 없으니 학원으로 상담을 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결국 서울시교육청에서 운영하는 학원민원서비스에서 검색해 가격을 알 수 있었다. 가장 비싼 과목은 200만원이 넘었다. 이런 비싼 컨설팅을 받지 않아도 수험생 본인의 실력이 뛰어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으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으니 학생부 종합전형에 ‘금수저 전형’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게 아닐까.

교육부도 이러한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은 지난 8월 수능절대평가 확대를 유예하는 브리핑에서 학생부 종합전형 개선방안도 언급했다. 학생부 종합전형에 대한 불신을 해소할 수 있도록 공정성과 투명성을 강화하고, 사교육 유발요소도 대폭 개선하겠다고 강조한 것이다. 하지만, 현재 교육부가 들여다보고 있는 교사추천서 폐지와 수능 최저 기준 폐지 등이 학생들 간 격차를 줄이는 해결책이 될지는 미지수다. 수능 최저 기준을 폐지한다고 해서 학생부에 기록할 스펙을 만들어 주는 컨설팅 학원들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취재를 위해 방문했던, 2백 만 원이 넘는 수강료를 받고 학생부를 관리해준다는 그 컨설팅학원은 홈페이지에 ‘SBS 8뉴스 프로그램 보도자료’ 라며 뉴스 화면을 캡처해서 광고를 하고 있다. 더 좋은 학교생활기록부를 만들기 위해 그런 학원까지 다녀야 하는 단상을 비판하려고 했는데, 그 뉴스마저 학원을 위한 홍보물이 됐다. 씁쓸한 웃음이 나온다.

▶ "생활기록부의 꽃" 동아리도 사교육…금수저 전형의 현주소

[노유진 기자 knowu@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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