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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성화 첫주자 박지성 “2002년처럼… 국민 응원이 기적 만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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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올림픽 성화 채화]그리스 올림피아 현지 인터뷰

동아일보

23일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만난 한국인 첫 성화 주자 박지성. 올림피아=박민우 기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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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성화를 떨어뜨리지 않고 얼마나 잘 옮기느냐다. 그래서 과거에 성화를 떨어뜨린 사람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참고하려 하는데 아직 답을 못 들었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한국인 첫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는 한국 축구 레전드 박지성(36)은 혹시나 성화를 떨어뜨리지는 않을까 신중한 모습이었다. 23일 성화 채화 리허설이 열린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만난 그는 “성화를 들고 특별한 퍼포먼스를 하는 것도 이상할 것 같다. 기본에 충실할 생각”이라며 평소의 그답게 소박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릎이 좋지 않아 은퇴를 결심했던 그는 “200m 정도 뛰는 걸로 안다. 그 정도는 무릎에 무리 없이 뛸 수 있을 것 같아 따로 달리기 연습을 하지 않았다. 카메라 기자분들이 쫓아올 수 있을 만큼의 속도로 뛰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국의 첫 번째 주자가 된 데 대해 “올림픽이라는 큰 축제를 보면서 자라 왔다. 얼마나 큰 의미가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개인적으로 무척 영광스럽게 생각한다”고 소감을 말했다.

소감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로 참가했던 때의 기억으로 이어졌다. 그는 “올림픽 축구 종목이 주경기장에서 열리지 않아 올림픽에 참가하고도 성화를 보지 못하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 그래도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모여서 친분을 쌓다 보니 말 그대로 스포츠 축제라는 기분을 느꼈다”며 “올림픽은 4년에 한 번 열리기 때문에 그에 대한 기대나 자세가 남달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한국 축구대표팀은 조별리그에서 당시 역대 최고 성적인 2승 1패를 하고도 탈락했다. 이에 대한 아쉬움이 지금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런 큰 대회를 통해서 개인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더 좋은 선수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다”고 덧붙였다.

박지성은 올림픽과 월드컵 등에서 국민의 열정과 응원이 선수들에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강조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팬들의 굉장한 힘이 드러났다고 생각한다. 그런 성원이 없었다면 2002년 4강의 기적은 있을 수 없었다. 제가 어렸을 때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처음 열린 1988년 서울 올림픽도 많은 이들의 관심 속에 치러져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도 우리 국민과 팬들이 얼마나 많은 성원을 보내주느냐에 따라 선수들의 성적이 달라질 수 있다.”

평창 올림픽에서 꼭 보고 싶은 종목이나 선수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종목별로 기대와 관심을 일으키는 상황이 많다. 과연 피겨에서 김연아 다음으로 어떤 선수가 나타날지, 아이스하키가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줬는데 올림픽에서도 이어갈지, 봅슬레이 선수들이 열악한 환경에서도 너무나 잘하고 있는데 올림픽에서도 선전할지 궁금하다. 각기 다른 종목 선수들이 매력적인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기대가 크다. 모두 선전하길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일부에서 최근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평창 올림픽 안전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국제대회가 열릴 때마다 나오는 말들이다. 많은 사람이 불안해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는 그동안 올림픽과 월드컵을 너무나 훌륭하게 잘 치러냈다. 안전에는 큰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각 나라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는데 우리에게는 북한 문제가 가장 큰 문제다. 그만큼 만반의 준비를 해왔고 그만큼 노하우가 쌓였다고 본다. 그런 점들이 평창에서도 안전하게 올림픽을 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는 알지만 그만큼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근황을 여전히 궁금해하는 팬들을 위해 자신의 진로와 향후 계획에 대해서도 밝혔다. 그는 올해 7월 국제축구연맹(FIFA) 마스터스 코스를 졸업하며 축구 행정가로 나설 토대를 마련했다.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네덜란드 명문구단 아약스의 최고경영자(CEO)가 된 에드빈 판데르사르와 비슷한 길을 가길 원한다. 판데르사르에게 조언도 들었다고 했다. “첫 번째 조언은 축구선수는 운동을 해야 하지만 행정가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책상에 앉아서 업무를 해야 한다는 고충이 있다는 걸 알라는 것이었다. 이론적으로도 많이 공부해야 현장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선수 출신으로 CEO가 됐다는 건 그만큼 행정 역량을 보여줬다는 건데, 저 역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걸 입증하고 싶다. 그게 제가 가고 싶은 길이다.”

당분간은 선진 축구 시스템과 행정 능력을 갖춘 유럽에 최대한 머물면서 다양한 경험을 쌓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축구 행정인으로서 많은 경험을 하고 충분히 능력을 입증하고 나서 아시아로 돌아왔을 때 아시아의 현실과 유럽의 차이점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유럽의 좋은 점을 아시아와 한국에 도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직 구단들로부터 구체적인 러브콜은 없다. 하지만 “유럽 구단들을 견학하면서 구단별로 다른 목표가 어떻게 현실에 적용되는지 그런 차이점을 배우고 있다. 여러 사람을 만나 조언을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 축구의 위기에 대한 생각도 전했다. 그는 “현재 축구대표팀에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이다. 그만큼 대표팀이 안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고, 질타를 받고 있기 때문에 다음 경기에서도 내가 경기를 한 뒤 또 질타를 받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래서 플레이 자체가 위축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며 “개인뿐만 아니라 팀으로서 얼마나 빨리 자신감을 찾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올림피아=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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