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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박정희·박근혜는 어떻게 우상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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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영진의 시네마즉설] ‘미스 프레지던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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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환 감독의 다큐멘터리 <미스 프레지던트>는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된 문제작 중 한 편이다. 제목의 ‘미스’는 중의적인데 미혼이었던 전직 대통령을 가리키는 동시에 전직 대통령 부녀를 둘러싼 대한민국의 견고한 신화를 뜻하기도 한다. 정권이 바뀌지 않았더라면 훨씬 논란을 불러일으켰을 이 다큐멘터리는 <트루맛 쇼>, <엠비(MB)의 추억> 등 김재환 감독의 전작을 봤던 사람이라면 예상치 못한 전개와 결말을 품고 있다. 이 영화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고 박정희·육영수 대통령 부부의 초상화에 절을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시작하는 시골 촌부의 삶과 울산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평생 박정희 부부를 흠모하며 살아왔던 노년의 부부의 삶을 따라가면서 친박 시민들의 실제 일상을 보여준다. 그들의 삶에 따로 비판적인 관점을 붙이지 않고 동행하는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다.

이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압도당했던 장면이 있다. 평생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을 듯한 순박한 시골 촌부 주인공이 서울역에서 열리는 박근혜 전 대통령 지지 집회에 처음 참여했을 때 그의 등 뒤를 따라가는 카메라에 사이비 종교 신자들을 방불케 하는 집회 참가자들의 과도하게 흥분한 모습들이 잡힌다. 우리의 주인공 할아버지도 그 광경에 충격을 받은 듯이 보인다. 그의 손은 가늘게 떨리며 안색도 창백하다. 광기를 느끼게 하는 집회 분위기에 질려버린 것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할아버지는 자연스럽게 집회 분위기에 동화된다. 그는 누구보다 열렬히 박수를 치고 구호를 외친다.

이밖에도 이 다큐멘터리에는 살짝 놀랄 만한 장면들이 많다. 거대한 박정희 동상 앞에서 절을 하며 나라의 안녕을 비는 중년 여성의 모습에는 비감한 기운마저 풍긴다. 울산의 점잖은 주인공 부부는 상대적으로 온화하고 얌전하지만 그들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몰락에 대해 갖는 비통한 감정은 우리에게도 그대로 전달된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나라를 망친 불구대천의 역적인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비운의 지도자다. 영화의 후반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지휘한 새마을 운동을 기리는 공원의 정경이 인서트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괴한 인상을 준다. 마치 북한의 공원을 보는 것처럼 뻣뻣하고 음산하며 귀기를 풍긴다.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비판적 거리두기가 생성되는 장면이었다.

<미스 프레지던트>를 보고 나면 어느 편에 있든 간에 누구나 마음이 착잡해질 것이다. 그들도 우리의 이웃이기 때문에 껴안고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는 좀 식상하다. 평자이기 전에 이 나라의 시민으로서 나는 어떤 만족할 만한 답을 찾을 수 없어서 착잡했다. 순박하지만 퇴행적인 정치관을 지닌 영화 속 주인공들이 젊은 시절에 대한 향수와 자긍심을 그렇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박정희 시대에 남긴 수많은 기록 필름들, 영화관에서 의무적으로 정권의 업적 홍보 뉴스를 봐야 했던 시대의 유산이 이 다큐멘터리에는 많이 나오는데, 참 어지간히 세뇌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 화면에 담긴 열광하는 군중의 모습에 내 어린 시절의 모습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달으면서, 정치를 통해 합리적 공론의 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이 시대의 으뜸 과제라는 걸 절감한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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