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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전국 곳곳 무너진 건물 잔해 속 '꺼져가는 생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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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 재개발·재건축 현장에 길고양이들 '수난'

뉴스1

22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한 재개발지역 현장에서 발견된 길고양이.©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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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병욱 기자 = 22일 오후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한 재개발지역 현장. 철거공사가 잠시멈춘 휴일 오후 현장은 무너진 건축물 더미와 뼈대만 앙상하게 남긴 건물들로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지난 9월부터 시작된 철거작업으로 3만9313㎡의 넓은 부지에 몇 채 안 남은 건물 주변은 바닥 곳곳 깨진 유리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바스락 소리가 났다.

바닥에 깔려 있던 건축물 잔해 속에서 검은 물체가 하나 포착됐다. 버려진 전기장판 위에 자리 잡고 앉아 늦가을 따뜻한 햇살을 쐬던 검은 길고양이였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생김새가 비슷한 새끼 고양이도 한 마리 눈에 들어왔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부터 인근에서 길고양이 밥을 챙겨왔다는 '캣맘' A씨에 따르면 둘은 어미와 새끼 고양이다.

자신의 영역에 침입한 낯선 이들 때문에 놀란 고양이들은 잠시 모습을 보여준 뒤 이내 무너진 건물 뒤로 조용히 모습을 감춰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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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미 고양이가 한 건물 지하에서 두번에 걸쳐 새끼 고양이를 입으로 물고 나와 은신처를 옮기고 있다.©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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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건물이 철거되기 전에는 꽤 많은 길고양이들이 생활하고 있었다"면서 "공사가 시작되자 고양이들이 다른 곳으로 떠나기도 했지만 건물이 무너지면서 새끼를 잃은 일부 어미들은 현장을 떠나지 못하고 주위를 맴돌며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현장에서는 또 다른 어미 고양이가 한 건물 지하에서 두번에 걸쳐 새끼 고양이를 입으로 물고 나와 은신처를 옮기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A씨는 "아직도 공사장을 떠나지 못한 길고양이들이 많은데 어미뿐만 아니라 새끼들도 많이 있다"면서 "건물이 모두 무너지기 전 하루빨리 이들을 구조해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말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이처럼 재개발지역에서 길고양이들이 수난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양천구 신정동 재개발지역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그곳이 주목을 받은 이유 또한 길고양이들의 심각한 피해 때문이다.

캣맘들에 따르면 해당 재개발지역에만 70~80마리 가량의 길고양이들이 살고 있었다. 그런데 공사가 시작된 뒤 현장에서는 길고양이들의 사체가 곳곳에서 발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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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한 재개발지역 현장에서 구조된 새끼고양이.©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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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에 대한 사전 대책없이 진행되는 철거공사로 인해 많은 길고양이들이 무너지는 건물로 이미 목숨을 잃거나 위험에 노출된 채 공사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전국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크고 작은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수천곳에 이른다. 2016년 국토교통부 업무 계획에 따르면 전국 2052구역에서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을 추진하고 있으며, 수도권에서만 1058구역, 서울지역에서만 583구역에서 개발 사업을 추진중이다.

그곳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 떠난 지역에는 길고양이 만이 남아 빈집을 지키고 있다.

공사가 진행되면서 건물이 무너지는 위험 뿐만 아니라 먹을거리도 없는 비위생적인 환경은 고양이들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다.

때문에 재건축·재개발 단지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를 구해달라는 요청이 동물보호단체에 쏟아지고 있다.

전진경 카라 상임이사는 "재개발 과정에서의 이주와 새거주지 정착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이들에게는 시련이 될 수도 있지만, 길에 정착해 살고 있던 길고양이들은 서식지를 잃게 됨으로써 크나큰 위험에 노출되는 등 삶이 단절되는 대재앙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전 이사는 이어 "재개발 지역에서 서식하는 길고양이 등 사람과 함께살아가는 동물들의 생명도 존중하는 재개발 또는 재건축이 반드시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서는 재개발 조합, 건설사, 관공서, 시민, 동물단체, 자원봉사자 등의 협력이 필요한데, 사전에 길고양이들의 TNR을 포함해 영역 이동, 이주 방사 등 계획을 철저하게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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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공사가 한창인 인천시 부평구 부개동 한 재개발지역 현장 모습.©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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