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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19 (화)

'사북'의 눈물…청탁 없인 안 되는 강원랜드 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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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 김광민 변호사의 '헌법 파헤치기']

머니투데이

그래픽=이지혜 디자이너



헌법 제46조 제①항 국회의원은 청렴의 의무가 있다.

②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

③ 국회의원은 그 지위를 남용하여 국가·공공단체 또는 기업체와의 계약이나 그 처분에 의하여 재산상의 권리·이익 또는 직위를 취득하거나 타인을 위하여 그 취득을 알선할 수 없다.


탄광은 역사적으로 노사분규가 격렬했던 산업 중 하나다. 노천탄광이 아닌 이상 대부분 광부들이 손으로 갱도를 파고 들어가 작업을 해야 했다. 지하 깊숙한 막장에서 석탄을 캐내는 작업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모든 산업이 그러하듯 탄광산업도 안전에는 비용이 따랐다. 그러나 광산은 갱도를 파고들어가는 만큼 안전시설도 이어가야 했다. 다른 산업에 비해 총비용 중 안전시설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지하 깊숙이 거미줄처럼 얽힌 갱도에서는 쉴 새 없이 다이너마이트가 터진다. 탄광은 안전에 조금만 소홀해도 곧 붕괴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컸다. 하지만 업체는 안전을 수익에 양보하고는 했고 그만큼 막장 노동자들의 생명은 위협을 받았다.

탄광 노동자들은 열악한 환경에서 고된 일을 하였지만 삶은 넉넉하지 못했다. 저임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노동집약적 산업이었기에 인건비의 절감은 막대한 수익으로 이어졌다. 업체는 나날이 발전했지만 임금인상에는 인색했다. 심지어 정부조차 국가기간산업이었던 탄광산업의 발전을 위해 탄광노동자들의 착취를 방조 혹은 조장하고는 했다. 탄광산업에서 노사분규가 극렬했던 이유다.

1946년 너무나도 적은 배급에 불만을 표출한 화순탄광 노동자들이 미군정에 의해 무참히 진압당한 화순탄광사건과 1980년 회사의 소극적인 임금인상 등에 반발한 노동자들이 경찰과 대치하며 극렬히 저항한 사북탄광사건은 광산에서 발생한 노동분쟁의 대표적 사례다. 특히 화순탄광 이후 대한민국 최대 탄광지역이었던 강원도 정선에 위치한 사북탄광의 분규는 1980년대 민주노동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당시 분규가 발생했던 동원탄좌는 한 때 대한민국 석탄 생산량의 13%를 차지할 정도로 거대기업으로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사북은 탄광에 의해 유지되던 지역이었다. 마을 대부분의 남성들은 광부였고 그들이 벌어오는 돈으로 마을이 움직였다. 마을은 온통 검었다. 시냇물마저 검어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 검정색 크레파스만 썼다. 사북은 탄광에 의지했고 탄광이 없는 사북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석탄산업에도 끝은 있었다. 90년대 접어들면서 국내 석탄소비가 급속히 줄었다. 주로 국내에서만 소비되는 무연탄만 생산되던 강원도 탄광지역은 내수가 줄자 하나 둘 문을 닫기 시작했다. 광산이 문을 닫자 사북의 경제 역시 급격히 위축되었다. 사북은 한 평생 막장에서 석탄을 파내 대한민국을 성장시켰지만 석탄이 필요 없어진 대한민국은 사북에게 냉정했다.

폐광지역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정부는 내국인 카지노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카지노가 불법으로 규정된 대한민국에서 국내 유일의 내국인 대상 카지노라는 유일무이한 엄청난 특혜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공기업인 ‘강원랜드’다. 정부의 엄청난 특혜를 등에 업은 강원랜드는 승승장구 했다. 2016년 말 기준 매출액은 무려 1조 7천억 원에 달했다. 직원들의 평균연봉 또한 5천에서 7천 정도로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은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부의 특혜로 성장한 공기업은 필연적으로 권력에 약했다.

강원랜드가 신입사원을 모집하자 엄청난 청탁이 이뤄졌다. 지역 유지, 정치인, 국정원, 언론사 할 것 없이 너도나도 청탁을 했다. 특히 이들 청탁자 중 상당수는 국회의원이었다. 청탁이 단순한 시도로 끝난 것도 아니었다. 국회의원 등 고위직 인사들이 청탁한 이들은 거의 합격했다. 특히 2012~2013년에 신규채용은 518명은 전원 청탁을 받은 이들이었다. 사실 상 청탁 없이 강원랜드에 입사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강원랜드는 청탁받은 이들을 합격시키기 위해 정량평가인 인·적성 검사는 아예 반영하지 않았고 면접점수도 추후 수정할 수 있게 연필로 기재하도록 했다고 한다. 아예 청탁받은 이들을 뽑고자 마음먹고 채용절차를 밟은 것이다.

헌법은 국회의원에게 청렴할 것과 청탁을 하지 않을 것이 명령하고 있다. 그러나 제20대 국회의원 중 전과자는 92명으로 전체 국회의원의 30.7%에 달했다. 물론 민주화운동이나 사회운동을 하다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이나 ‘국가보안법’으로 고초를 받은 전과자도 있다. 그러나 폭행, 성폭행, 음주운전 또는 뇌물수수와 같이 파렴치범도 다수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제20대 국회의원의 평균 재산은 41억 원이나 되었다. 재산이 많다는 것이 반드시 탐욕이나 부정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2015년 기준 대한민국 가구 당 평균 재산이 2억 8천 65만원인 점을 고려해 보면 쉽게 받아들이긴 어려운 규모다.

청탁 또한 청렴과 같은 맥락을 가진다. 청탁은 재산상 이익을 목적으로 이루어진다. 평균 연봉이 5000~7000만 원이나 되고 직원들의 복리후생 역시 상당한, 게다가 공기업으로 대부분의 직원들이 정년을 보장받는 강원랜드의 직원채용에 국회의원들은 청탁을 했다. 이는 오히려 그들의 평균 재산이 일반 국민에 비해 월등히 높다거나 전과자가 많다는 것 보다 심각한 문제일 수도 있다. 국회의원이 그들의 직위를 남용하여 권력에 약한 공기업의 인사에 개입한 것이기 때문이다.

헌법이 국회의원에게 청렴할 것과 청탁을 하지 말 것을 규정한 이유는 그들이 국민의 대표자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대표자인 국회의원은 국민의 이익을 위해 사무를 처리해야 한다. 만약 국회의원이 자신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선택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나 국회의원이 국민의 대표자로 막강한 권한을 가졌다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국회의원의 사익추구가 국민들에게 미칠 피해는 엄청날 것이다.

탄광지역은 검은 냇물이 흐르는 동네에서 아이들을 키워야 했다. 평생 목숨을 걸고 일하다 운 좋게 무사히 퇴직을 해도 진폐증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팍팍했다. 그들이 캐낸 석탄이 기업의 배만 불렸기 때문이다. 기업은 자신들의 잇속만 챙겼고 국가는 방조 내지 조장했지만 탄광지역민들은 열심히 노력하여 일했다. 오늘 날 대한민국의 경제발전은 상당부분 그들의 희생에 빚지고 있다. 그러나 권력은 폐광이 이어지고 피폐해진 탄광지역을 개발한다며 카지노를 만들어 놓고는 그 마저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는데 활용했다. 지역주민들을 우선하여 채용해야 할 카지노가 국회의원 청탁에 따라 신입사원을 선발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은 국회의원이 청렴과 청탁금지 의무를 위반했을 때 발생하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역발전을 위한 정부의 사업은 지역주민이 아닌 권력자들을 위해 운영되었다. 당연히 지역의 삶은 여전히 녹녹치 않았다. 강원랜드에게 내국인 카지노라는 전무후무한 특혜가 부여된 것은 평생을 막장에서 희생한 지역주민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보상하기 위함이었다. 국회의원들의 청탁은 탄광지역 주민들의 삶을 두 번 짓밟는 것과 마찬가지다.

머니투데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이다. 청소년을 만나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그들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는 자신의 모습에 오늘도 힘들어한다. 생물학적 회춘은 불가능해도 정신적 회춘은 가능하리라 믿으며 초겨울 마지막 잎새가 그러했듯 오늘도 멀어져가는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을 힘겹게 부여잡고 살아가고 있다. 정신적 회춘을 거듭하다보면 언젠가는 청소년의 친구가 될 수 있기를...]

박보희 기자 tanbbang15@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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