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3.19 (화)

이렇다 할 화제작 없이… 조용히 막내린 부산영화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작년보다 관객 수 17% 늘었지만

기대작들 혹평… 반짝 관심 그쳐

日中 영화 편중에 다양성 부족도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

文대통령 방문에 영화인들 환영

필름마켓 활성화는 좋은 성과로
한국일보

수년째 독립성 침해 논란을 겪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가 21일 폐막작 ‘상애상친’ 상영을 끝으로 22번째 영화축제의 막을 내렸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가 21일 폐막식을 끝으로 열흘 간의 항해를 마쳤다. 영화제 독립성 침해 논란으로 영화계와 부산시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던 지난해보다는 다소 활기가 돌았지만, 아시아 대표 영화제라는 위상에 걸맞지 않은 침체 분위기는 올해도 계속됐다. 다만 문재인 대통령이 부산영화제를 직접 방문해 공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혀 영화제 정상화에 힘을 실어준 점은 긍정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부산영화제의 새 출발을 위한 영화계 논의에도 한층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관객수 증가에도 화제작 부재

올해 부산에서는 76개국 영화 300편이 상영됐다. 총 관객수는 19만2,991명으로 지난해 16만5,149명보다 17% 증가했다. 그러나 22만명을 훌쩍 넘기던 예년 수준에는 미치지 못했다. 극장 안팎의 분위기도 차분함을 넘어 냉기가 느껴졌다. 돋보이는 화제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는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 등이 큰 화제를 모았지만, 올해는 기대작이었던 대런 애러노프스키 감독의 ‘마더!’와 우위썬(오우삼) 감독의 ‘맨헌트’ 등 거장의 신작들이 혹평을 받으면서 반짝 관심에 그치고 말았다. ‘마더!’의 유명 배우 제니퍼 로런스는 부산영화제 방문 계획을 갑자기 취소해 찬물을 끼얹기도 했다.

일본 영화와 중국어권 영화가 초청작의 다수를 차지해 다양성 면에서 아쉽다는 평가도 나왔다. 올해 갈라 프리젠테이션 초청작 5편 중 한일합작 포함 일본 영화는 ‘나비잠’ ‘나라타주’ ‘세 번째 살인’ 등 3편이나 됐다. 부산영화제 핵심 부문인 아시아 영화의 창 경우, 초청작 56편 중 14편이 일본 영화, 10편이 중국과 대만 등 중국어권 영화였다.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선 “일본ㆍ중국 영화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지난 5월 칸국제영화제 출장 도중 타계한 김지석 부집행위원장 겸 수석프로그래머의 빈 자리가 컸다. 고인은 21년간 아시아 영화를 발굴하고 소개했다. 개막식에서 초청 인사를 소개하는 목소리도 항상 그였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올해는 눈에 띄는 작품도 부족했고 초청작들을 통해 영화적 화두를 제시하지도 못했다”며 “김 부집행위원장의 부재가 여실히 느껴졌다”고 평했다.

지난해에 이어서 한국영화감독조합(감독조합)과 한국영화촬영감독조합 등 주요 영화단체가 불참을 선언한 점도 악재로 작용했다. 감독들의 부산 방문이 많지 않아 이들을 만나려는 배우들의 발길도 크게 줄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동호 이사장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이 영화제가 끝난 후 사퇴하겠다고 지난달 밝혀 영화제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분위기에서 열렸다는 평가도 따른다. 그래도 초청 인사 면면은 제법 화려했다. 이병헌, 박해일, 장동건, 문근영, 공효진, 김해숙 등 스타들이 관객을 만났다. 세계적인 영화 거장 올리버 스톤 감독은 아시아 신예 감독을 대상으로 한 뉴커런츠 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았고, 고레에다 히로카즈, 우위썬, 대런 애러노프스키 등 유명 감독과 후쿠아먀 마사하루, 아오이 유우, 나카야마 미호 등 인기 배우들이 부산을 찾았다.
한국일보

뉴커런츠상을 수상한 한국 영화 ‘죄 많은 소녀’.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마켓 활성화ㆍ정부 지원 약속 ‘청신호’

영화제 정상화에 긍정 신호들도 감지됐다. 영화제의 주요 목적 중 하나인 필름마켓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지난해보다 200명 늘어난 1,583명이 참여해 영화 제작, 투자, 수입, 수출 등 비즈니스가 활발하게 진행됐다. 신작 영화 ‘침묵’과 ‘그것만이 내 세상’ 등이 여러 나라에 판매됐고, 하정우 주연의 ‘1987’에도 판매 문의가 쇄도했다. 겨울 개봉을 앞둔 ‘신과 함께’가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 선판매도 이뤄졌다. 제작사 리얼라이즈 픽쳐스의 원동연 대표는 “부산영화제에 가면 좋은 영화를 선점할 수 있다는 인식이 아시아 영화인들에게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올해 필름마켓에서 확인했다”며 “마켓 활성화가 향후 부산영화제가 정상화되고 발전해 가는 데 큰 동력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4년 세월호 다큐멘터리 ‘다이빙 벨’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외압을 행사하고 검찰에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을 업무상 횡령혐의로 고발하는 등 영화제 파행의 장본인으로 비판 받아 온 서병수 부산시장이 개막식과 폐막식에 참석해 거센 비난을 샀지만, 문재인 대통령의 영화제 방문은 정치인에 냉담한 영화인들 사이에서도 크게 환영 받았다. 문 대통령은 영화인들을 만나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겠다”고 영화제 정상화를 거듭 약속했다. 한 영화인은 “문 대통령의 방문이 여전히 사과를 거부하고 있는 서 시장에게 경고하는 의미로도 풀이된다”며 “대통령이 나서서 영화제 지원을 약속한 만큼 내년에는 상황이 나아지지 않겠냐”고 말했다. 부산영화제는 2014년 국고 지원금이 15억원이었으나 2015년 8억원으로 급감했고, 올해는 7억6,000만원을 국가로부터 지원 받았다.

그럼에도 과제는 산적해 있다. 당장에 공석이 된 집행위원회를 새로 꾸려야 하고, 김 부집행위원장의 역량을 메울 인력 충원과 사무국 재편도 불가피하다. 영화계의 보이콧 문제도 풀어야 한다. 영화제의 한 관계자는 “지도부에 힘의 공백이 생겼는데, 만약 새 이사장이나 집행위원장이 낙하산식으로 임명되면 예전보다 더 큰 시련이 닥칠 수 있다는 경계심이 내부에 있다”고 전했다.

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한국일보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왼쪽)과 강수연 집행위원장은 올해 영화제를 끝으로 자리에서 물러난다. 부산국제영화제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