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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기자의 시각] 금융위원장의 미움받을 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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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김재곤 경제부 기자


최종구 금융위원장의 직전 직함은 수출입은행장이었다. 지난 3월 은행장으로 취임할 때 이례적으로 '무혈입성'에 성공했다. 수장이 바뀔 때마다 으레 '낙하산' 반대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던 노조가 출근 첫날부터 길을 터준 것이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노조에서 전 직장(서울보증보험) 노조 측에 소위 평판 조회를 해봤는데 뭐 하나 시비를 걸 만한 나쁜 얘기가 없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실제로 최 위원장을 겪어본 직원들 사이에선 예의 바르고 배려심 많은 그의 인품에 감복했다는 얘기가 여기저기 들린다.

두루 사람이 좋기 때문일까. 금융위원장 취임 이후 최 위원장의 행보는 대체로 무난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소신이나 강단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 위원장은 지난 7월 청문회 등을 통해 인터넷 전문 은행에 한해 산업자본도 은행의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현행 은산(銀産) 분리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최근 돌풍을 일으킨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전문 은행의 경우 IT 기업인 카카오가 대주주가 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해 줘야 기존 은행과 차별화된 혁신적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16일 열린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당 김관영 의원은 "여당이나 청와대 내에 (은산 분리 완화에) 엄격한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업무 보고에서도 (관련 내용이) 빠졌다"며 "(금융위원장이) 이 부분에 대해 소신을 갖고 일을 한다면 청와대와 여당 내 반대자를 충분히 설득해 매듭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날 최 위원장은 여당 의원들의 공세에 밀려 "인터넷 전문 은행의 긍정적 기능을 살리기 위해 은산 분리 원칙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활성화 방안을 강구해나갈 계획"이라는 어정쩡한 답변을 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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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구 금융위원장이 16일 오전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금융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진복 정무위원장의 발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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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최 위원장은 청문회 당시만 해도 현 정부의 금융 분야 공약 사항에 대해 "시장 개입 논란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고 밝힐 정도로 소신 있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막상 금융위원장에 취임한 후엔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해 금융권에선 '현 정부의 금융 로드맵이 보이지 않는다' '금융 당국의 존재감이 사라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금융 당국의 수장으로서 만에 하나 생각이 바뀌었다면 "막상 금융위원장 입장에서 보니 은산 분리 완화는 이러이러한 이유 때문에 어렵겠다"고 솔직히 털어놓는 편이 낫다. 그래야 은산 분리를 풀어주겠다는 정부 말을 믿고 은행업에 뛰어든 인터넷 전문 은행들도 늦게나마 자구책을 찾아볼 것 아니겠는가.

지금 최 위원장에게 필요한 것은 눈앞에서 맞닥뜨리는 청와대·정부 관계자, 여야 정치인 같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미움받을 용기'다. 책임진다는 각오로 현안을 처리할 때 가부 간에 정책의 결과물이 나오게 된다. 정책 혼선이 계속되면 그 피해는 금융산업을 넘어 애꿎은 국민들에게 돌아간다.

[김재곤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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