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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금연구역서 흡연 단속하면… 담뱃불로 지지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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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복의 수난] [3] 폭행·폭언 시달리는 흡연단속원

건물 계단서 흡연자와 실랑이… 계단서 굴러 병원신세 지기도

과태료 물리려 신분증 요구하면 "경찰도 아닌게…" 막말하며 거부

일부는 이튿날 전화, 보복 욕설

지난 13일 오후 법무법인이 입주해 있는 서울 중구의 한 빌딩 비상계단. 담배를 피우던 40대 남성이 중구청 흡연단속원 임모(51)씨에게 적발됐다. 임씨는 주차단속원 신분증을 내보이며 "금연구역서 흡연하셨다.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했다. 이 남성은 "공무원이 맞느냐, 신분증 요구 권한이 있느냐"며 따졌다. 십여 분간 실랑이를 벌이다 겨우 신분증을 받고 과태료를 부과했다.

조선일보

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 앞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된 한 남성이 흡연 단속원에게 손가락질하며 항의하고 있다. 단속원들은 “신분증 제출을 거부하거나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며 잡아떼는 사람들과 늘 실랑이를 한다”고 했다. /장련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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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양재동 남부터미널 인근. 서울 서초구청 소속 흡연단속원이 금연구역서 담배를 피우며 통화를 하던 40대 남성을 적발했다. 이 남성은 지갑에서 5만원 지폐 2장을 꺼내 흔들어 보였다. 흡연단속원은 "현장 납부는 안 된다"며 10만원 과태료를 부과하고 돌아섰다. 남성은 들으라는 듯 "담배 단속이나 하는 주제에"라고 했다.

흡연단속원은 5년마다 계약을 갱신하는 시간제 공무원이다. 엄연히 공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경찰도 아니면서 웬 단속이냐"며 거부하는 이가 많다.

◇"공무원 맞느냐" 무시당하기 일쑤

조선일보

2011년 서울시는 금연 조례를 제정해 공원·광장·버스정류장 등에서 흡연 단속을 했다. 이듬해부터 각 자치구도 금연 조례를 만들고 흡연단속원을 뽑아 본격적인 단속에 나섰다. 현재 132명이 각 구청 소속으로 있다. 서울 시내 금연구역은 2012년 7만9391곳에서 올해 6월 기준 25만5797곳으로 3배 넘게 늘었다.

흡연단속원들은 정년퇴직 후 일자리를 찾아 나선 50~60대 남성과 자녀 학비를 보태기 위해 나온 40~50대 주부가 대부분이다. 과태료 부과를 위해 신분증 제출을 요구하면 "아줌마·아저씨한테 내 개인정보를 왜 넘겨야 하느냐"며 항의하는 이들로 골머리를 앓는다. 서울 종로구 흡연단속원 김재덕(53)씨는 "신분증을 순순히 내주는 사람은 10명 중 서너 명 정도"라며 "2인 1조로 다니다 보니 '사이비 전도사'로 오해받기도 한다. 제때 응해주는 사람들은 천사"라고 했다.

흡연단속원의 신분증 제출 요구에 불응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 질서위반행위규제법에는 '신분증 검사를 거부·방해·기피한 사람에게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규정이 있다.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이다. 서울 마포구의 한 단속원은 "이러한 규정을 들어 과태료를 부과한 적은 없다"며 "규정이 있어도 어떻게 500만원을 물릴 수 있겠느냐. 오히려 화를 더 돋우는 일"이라고 했다.

◇꽁초 버리고 잡아떼는 경우 많아

흡연에 적발된 시민들은 일단 큰소리치며 발뺌한다. 지난 8월 30일 오후 한 40대 남성이 서울 송파구 잠실중학교 인근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학교 정문으로부터 50m 이내는 금연구역이다. 이 남성은 "왜 단속하느냐. 나는 금연구역 밖에서 피웠다"고 큰소리를 쳤다. 결국 단속반이 줄자를 가져와 거리를 재야 했다. 남성이 서 있던 지점이 정문에서 35m라고 나오자 남성은 그제야 단속에 응했다.

보통 단속원들은 지하철역 입구나 공원 등 금연구역 주변에서 지켜보다가 흡연자가 나오면 즉시 달려가 과태료를 부과한다. 주변 카메라 영상에 의지하지 않는 현장 단속이다 보니 발뺌하는 민원인들 때문에 애를 먹는다고 한다. 중구에서는 40대 단속원이 금연구역인 건물 비상계단에서 단속을 벌이다 실랑이 끝에 민원인이 밀쳐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욕설·폭력당하는 분풀이 대상

흡연단속원들은 온갖 욕설을 듣고 폭력을 당하는 분풀이 대상이 된다. 상대적으로 과태료 금액(10만원)이 커 민원인들이 쉽게 흥분하기 때문이다. 반말은 기본이며, 멱살 잡힐 때도 잦다. 지난해 4월 민모(39)씨는 지하철 2호선 잠실역 3번 출구 앞 금연구역에서 담배를 피우다 송파구청 소속 단속원 김모(65)씨에게 적발됐다. 김씨가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라며 신분증을 요구하자 민씨는 이를 거부하며 김씨가 쓰고 있던 모자와 마스크를 잡아당겨 바닥에 내던졌다. 담뱃불로 얼굴을 지지려는 위협적 행동도 했다. 결국 김씨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벌금 50만원을 선고받았다.

윤상원 서초구 금연관리팀장은 "현장에서 끝나면 다행이지만, 다음 날 사무실로 전화해 한 시간 넘게 법 절차를 따지면서 꼬투리 잡고 욕하는 민원인들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많다"고 했다. 다른 단속원은 "우리도 집에 가면 가장이고 아버지인데, 매번 밖에서 이렇게 욕먹고 맞고 하는 일이 많다 보니 단속 나가기 전부터 손이 벌벌 떨리고 울렁울렁하다"고 했다.

[장형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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