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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대타’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선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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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김호정 문화부 기자


“이제 베를린필·빈필과 협연하는 게 새로운 목표.” 쇼팽 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조성진(23)이 지난해 11월 했던 말이다. 그리고 꼭 1년 만에 그 목표에 도달했다.

베를린필은 다음달 19일 열리는 한국 공연의 새로운 협연자를 조성진으로 결정했다고 지난 13일 발표했다. 지난해부터 정해 놓았던 협연자는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35)이었다. 한국뿐 아니라 독일·중국·홍콩 등지의 베를린필 연주 투어에서 8회 협연하기로 했다. 하지만 랑랑은 왼팔 부상으로 공연 취소를 결정했고 협연자 자리엔 공백이 생겼다. 8회 중 4회를 조성진이 대신한다. 조성진의 꿈은 이렇게 우연히 대타로 이뤄진다.

베를린필 투어 전체를 들여다보면 ‘대타’라는 단어는 더 선명히 떠오른다. 랑랑도 대타였다. 17세에 피아니스트 앙드레 와츠 대신 오른 이후 세계적 수퍼스타로 올라섰다. 이번에 랑랑 대신 중국·일본에서 베를린필과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유자 왕(30) 역시 대타로 출발했다. 2007년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공백을 메웠던 신인 유자 왕에게 청중은 열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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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음악인가 10/23


음악계 대타의 역사는 따로 정리해야할 만큼 많다.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피아니스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역시 대타로 시작했다.

성공한 대타를 볼 때마다 그 뒤에 얼마나 많은 준비가 있었을지 짐작해 본다. 기회가 오케스트라 협연으로 올지, 독주회로 올지, 주최 측에서 어떤 작품 연주를 의뢰할지 이들은 알 수 없었다. 출제 범위도 모르는 시험을 공부하는 것과 같다.

조성진도 마찬가지다. 그가 다음달 베를린필과 연주하는 작품은 라벨 협주곡이다. 2년 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조성진이 전 세계 무대에서 주로 연주하는 협주곡은 쇼팽 1·2번이다. 간간이 베토벤 협주곡 3·5번도 있지만 라벨 협주곡은 거의 없다. 아마도 오케스트라의 요청, 취소되기 이전 프로그램과의 비슷한 분위기 등으로 라벨이 정해졌을 테지만 갑작스러운 곡을 가장 중요한 무대에서 쳐야 하는 ‘대타의 고단함’이 전해진다.

열심히 준비해 잘 완성된 형태로 세상에 나갈 것이라는 신인의 꿈은 그야말로 꿈이다. 등 떠밀리듯 가장 중요한 순간을 맞이하는 경우가 더 많다. 언젠가 언 땅을 뚫고 나올 수많은 대타들에게 격려를 보낸다.

김호정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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