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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전영기의 시시각각] 임종석 비서실장이 해야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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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론위 “탈원전 지지 13.3% 불과” 함구

원전 건설이 탈원전이란 궤변 중단해야

중앙일보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공론화위원회의 원전건설 재개 발표가 있던 20일 오후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그는 “87년 6월 뜨거웠던 거리의 민주주의, 지난겨울 온 나라를 밝혔던 촛불 민주주의, 그리고 오늘 공론화위가 보여준 또 하나의 민주주의”를 감격하며 “처음에 대통령께서 숙의 민주주의와 공론화 절차를 꺼냈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이 공론화위 발상의 주인공임을 적시한 것이다. 임 실장은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연장선에서 공론화 민주주의의 공을 문 대통령에게 돌리고 싶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공론화위에 대해선 다른 평가도 많다. 우유부단한 정부의 의사결정 도피처, 대의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는 포퓰리즘의 도구라는 주장이다. 만일 그런 문제가 불거지면 정치적·헌법적 책임은 임 실장이 발상자로 지목한 문 대통령이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한다. 임종석이 대통령을 특정한 건 그를 보호해야 할 비서실장으로서 경솔했다.

임 실장의 페북엔 시민참여단의 가장 중요한 결정인 원전 재개에 대해 반성과 사과가 빠졌다. 원전 재개는 이 정권이 밀어붙였던 ‘탈원전을 목표로 한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을 민심이 막은 것이다. 애초부터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공정이 30% 진행되고 생돈 1조6000억원을 투입한 국책사업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건설 중단시킨 것 자체가 문제였다. 현지 주민과 부품 제조 및 공급업체, 건설 노동자와 기술자, 세계 최고 수준의 원전 산업과 해외 수출이 순식간에 붕괴 위기에 몰렸다. 100일 건설 중단 기간 중 쓴 헛돈만 1000억원이다. 이건 누가 책임져야 하나.

19%포인트라는 압도적 격차로 원전 재개 결과가 나왔는데도 청와대·정부는 ‘건설은 재개해도 탈원전은 그대로’라는 또다른 여론몰이에 골몰하고 있다. ‘탈원전 하더라도 수출은 가능하다’는 궤변과 닮았다.

왜 궤변인가. 첫째, 7월 17일 발효된 국무총리 훈령 제1조에 따르면 공론화위는 “신고리 5·6호기 원전 건설 중단 여부에 관하여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설치됐다. 공론화위는 건설 재개냐 중단이냐를 결정하는 게 존재 목적이다. 그런데 규정에도 없는 탈원전 문제를 공론화위가 결론낸 것처럼 이 정부는 선전하고 있다. 둘째, 공론화위는 규정에 따라 신고리 5·6호기 중단 여부만 물었어야 했다. 그런데 향후 원전 정책에 관한 설문을 슬쩍 끼워 넣었다. 그 결과 ‘원전 축소’와 ‘원전 유지+확대’가 각각 53.2%대 45.2%로 나왔다. 오차범위 구간 7.2%포인트를 겨우 넘긴 8%포인트 차이다. 그런데 공론화위는 원전 축소 지지 비율이 “훨씬” 높았다고 과장했다. 게다가 이 설문은 ‘전쟁이냐 평화냐’ 같은 규범적 선택을 요구하는 질문이다. 처음부터 원전 축소 쪽이 유리하게 설계됐다.

세번 째, 정부는 원전 축소 지지율 53.2%를 탈원전 여론몰이의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도 궤변이다. 원전 축소와 탈원전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전자는 원전의 비중을 줄이는 것이고 후자는 원전을 아예 없애는 것이다. 그렇기에 공론화위 설문에서도 탈원전 항목은 따로 뒀다. ‘건설 재개 이후 필요 조치사항’이란 문항에서 시민참여단은 13.3%만이 ‘탈원전 정책 유지’를 선택했다. 김지형 공론화위원장은 마이크 앞에서 발표할 때 이 부분을 함구했다. 13.3%라는 수치는 보도자료의 표에만 적혀 있다.

다시 임종석 문제로 돌아가자. 임 실장은 대통령 보호의 최전선에 서 있다. 숙의 민주주의에 감격하는 일은 다른 사람한테 맡기고 진실에 기초해 정책 판단을 해야 한다. 공론조사를 냉철하게 분석해 대통령이 상처입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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