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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8 (목)

[창간기획-혐오를 넘어](3) 힘이 세지는 혐오대응법…‘노!’ 라고 말하세요 이제부터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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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NO라고 말하는 사람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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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적으로 이뤄지는 혐오와 차별에 맞서서 대응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이뤄지는 혐오에 당사자가 대응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NO”라고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다. 경향신문 창간 71주년 기획 <혐오를 넘어>에서는 지금, 여기에서 실천할 수 있는 ‘혐오대응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직접적 혐오의 대상이 되는 성소수자, 장애인, 이주민, 여성 등 사회적 약자들이 직접 혐오에 맞선 사례들을 시작으로, 당사자가 아닌 시민들과 제3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법과 제도는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순서대로 짚어보고자 한다. ‘힘이 세지는 혐오대응법’은 당장의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도 혐오와 차별에 고통받는 이들에게 힘을 주고, 사회에 만연한 혐오와 차별에 작은 균열을 일으키는 시작점이 될 것이다. 지면에 다 싣지 못한 자세한 내용은 웹페이지 nohate.khan.co.kr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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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혐오 당사자의 대응, 혐오가 이뤄지는 시공간에 함께 있는 제3자의 대응, 법과 제도적 변화 모두 중요하다. 3회에서는 혐오를 받는 당사자 대응법을 다양한 사례로 구성해 보았다.


# 그건 혐오입니다 - 혐오 표현의 구체적 의미를 알고 나면 사용을 자제하는 이들도 많다

경향신문

충북 보은여고의 교실의 칠판 한 귀퉁이. ‘오늘의 혐오표현-김치녀, 사용하지 않기’라고 적혀있다. 인권동아리 ‘소수자들’ 회원들이 써 놓은 것이다. 김하린양(17)은 “혐오표현을 줄이기 위해 지난 4월부터 해왔다. 생각보다 효과가 좋아 매주 단어를 바꿔 적고 있다”고 말했다. 김양은 “친구들이 혐오표현을 쓰다가도 ‘칠판에 써 있잖아, 쓰면 안돼’ 하면서 사용을 자제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혐오표현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하지 못한 채 그저 재미나 장난으로 쓴다. 하지만 의미를 알고 나면 사용을 자제하는 이들도 많다. 김양은 “ ‘병신’이 장애인 비하 발언이고, ‘김치녀’가 여성혐오, ‘급식충’이 청소년을 비하하는 표현이라고 얘기하면 친구들이 ‘몰랐다’고 하면서 표현을 자제한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한 중학교 인권동아리 회원 이혜영양(15·가명)도 친구들이 혐오표현을 쓰면 앞장서서 말린다. 이양은 “친구들이 ‘강간농담’을 했다. 조두순 사건 때 ‘조’를 빼고 아이들 성을 따서 ‘김두순’ ‘윤두순’ 식으로 말했다. 그건 범죄고 실제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는 사건이니까 쓰지 말라고 했다”고 말했다. 앞장서 혐오표현을 쓰던 아이로부터 “노력하겠다”고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칠판의 ‘일러둠’은 엄격한 의미의 ‘검열’이나 ‘금지’가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차별에 대한 대화를 만들어내는 의미있는 노력이다.(류민희, 이하 류)

# 기분 나쁘면 웃지 않아도 된다 - 혐오와 차별이 섞인 ‘농담’에 안 웃을 권리가 있다

‘웃기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혐오와 차별 발언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

혐오 표현에 불쾌감을 느끼더라도 마지못해 웃는 청소년들이 많다. 농담을 웃어넘길 수 있는 ‘쿨한 애’가 되지 않으면 ‘진지충’으로 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웃기지 않으면 안 웃어도 된다’는 당연한 이야기는 교실 밖 사회에서도 행동으로 옮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민 등 소수자를 비하하는 ‘농담’은 우리 생활 곳곳에 그만큼 많이 포진하고 있다.

이 같은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한마디는 ‘웃기지 않는다’이다. 개그맨 장동민·유상무·유세윤으로 구성된 ‘옹달샘’이 팟캐스트에서 여성 비하, 장애인 비하 등을 일삼아 사회적 문제가 되자 이들이 사과한 사례도 있다.

초등성평등연구회 윤모 교사는 “아이들에게 차별과 혐오 섞인 농담에 정색하고 기분 나쁘다 말하고, 웃어주지 말라고 얘기해준다”며 “기분이 나쁘면 웃지 않고 무표정으로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용기가 더 난다면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상대방에게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쿨함’을 요구받는 건 여학생뿐이 아니다. 남학생들도 또래 집단에 끼기 위해 마지못해 혐오표현을 쓰기도 한다. 박모 교사는 “혐오표현이 쿨하고 멋진 게 아니다. 찌질한 것이고 남을 괴롭히는 행동일 뿐이라는 걸 반복해서 말해준다”고 했다.

▶웃기려고 한 말에 웃지 않는 것에는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처음에는 자신이 고립되겠지만 적극적 대응을 통해 거꾸로 발화자를 고립시켜야 한다.(홍성수, 이하 홍)

# 없는 매뉴얼, 우리가 만든다 - 성평등 교육의 가장 큰 수혜자는 ‘남성성’의 틀에 맞지 않는 남학생이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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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장의 ‘성평등 교육’은 겉핥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여자도 의사가 될 수 있다’ ‘남녀차별을 하지 말자’는 선언은 있지만, 일상생활과 문화 속에 존재하는 성차별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은 이뤄지지 않는다. 현직 교사 13명으로 구성된 초등성평등연구회는 성평등 교육 매뉴얼을 만들어 공유하고, 수업에 적용하고 있다.

고정된 성역할에 기반을 둔 가상의 학급규칙을 만들어 고정관념이 왜 잘못됐는지를 아이들이 깨닫게 하는 것이 일례다. “남자는 훗날 성공해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을 1시간 더 받고 간다” 같은 규칙을 만들어보고, 남녀 임금격차와 노동시장에서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윤모 교사는 “ ‘남자답다, 여자답다’에 대해 느끼는 바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뚱뚱하다, 못생겼다’는 식의 외모평가가 잘못됐음을 알려주는 교육을 하고 있다”며 “누군가를 이유 없이 비난하고 혐오하는 것에 대해 제재하니 교실 내 폭력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성평등 교육의 가장 큰 수혜자는 전형적인 ‘남성성’의 틀에 맞지 않는 남학생이었다. 윤 교사는 “이런 학생들은 남성 집단에서 배제되고 여학생들에게도 놀림감이 되었는데, 성평등 교육 이후 그 아이의 개성 자체로 받아들여지게 됐다”고 말했다.

▶일상에서의 차별 문제들을 모두가 토론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 이래서 혐오와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가 무엇보다 중요하다.(홍)

# 아는 것이 힘이다 - 내 삶이 불편한 이유를 찾기 위한 공부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된다

공기처럼 접하고 지낸 차별이나 혐오는 한 개인이 생각하는 방식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이 차별과 혐오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면 불편함이 시작된다. 그 이유를 찾기 위한 공부는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다.

고양국제고의 인권동아리 ‘마이너리티’ 회원 손영은양(17·가명)은 “너는 대학 가서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부모의 말에 불편함을 느꼈다. 그는 동아리에서 친구들과 함께 <이갈리아의 딸들> <악어 프로젝트> 등 페미니즘과 인권에 관한 책과 논문을 읽고 페미니스트 학자인 리베카 솔닛의 내한 강연을 함께 듣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상처를 입은 이유를 알게 됐다.

혐오 표현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아는 것이 힘’이다. 같은 학교 페미니즘 동아리 퓨로의 이수지양(17·가명)은 수업 도중 교사의 성차별적 발언에 직접 맞섰다. “여자는 늙으면 애를 못 낳지만 남자는 애를 낳을 수 있어서 여자가 남자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말에 “그건 아니지 않나요”라고 대꾸했다. 김양은 “차별적 발언이 어떤 부분에서 잘못된 것인지를 짚는 데 독서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논리적인 반박은 혐오표현을 중단시킬 수도 있으며 스스로 자신감이 생긴다는 것에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홍)

# ‘혐오 금지’ 자치규약 만들기 - 사건 발생 후 문제 해결에 급급하지 말고, 인권침해나 혐오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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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5월 서울대 봄축제. 남성끼리 무대에 올라온 팀에 사회자가 “두 분 부모님께서 이런 거 아느냐”고 물었다. 성소수자 비하로 해석될 소지가 있는 말이었다. 같은 해 학내 학생홍보대사 ‘샤인’ 신입회원 모집 면접에서는 성희롱, 외모·지역 비하적 발언이 나와 논란이 됐다.

학내에 차별과 혐오의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서울대 인권센터와 총학생위원회는 ‘서울대 인권가이드라인’ 제정 작업에 착수했다. 교수·학생·직원 등 학내 구성원의 인권을 다룬 것으로, ‘생물학적 성별, 성적지향, 성별정체성, 장애, 나이, 출신 지역, 인종 등을 포함한 불합리한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는 평등권 조항이 명시됐다. 또한 혐오폭력 및 증오범죄 금지 조항도 포함됐다. 인권가이드라인 제정을 준비 중인 김보미씨는 “사건이 벌어진 이후에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인권침해나 혐오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하고자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인권가이드라인의 제정은 시흥캠퍼스 설립을 둘러싼 본부와 학생회 측의 갈등으로 미뤄지고 있는 상태다.

카이스트, 고려대, 성공회대 등 다른 대학에서도 소수자 인권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만들기 위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자치규약의 규범으로서의 효력뿐만 아니라 그 규약을 만드는 과정도 소중하다. 내가 속한 공동체부터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은 모두를 힘나게 한다.(류)

# 바른 정보로 혐오에 대항한다 - 잘못된 사실에 기반한 혐오를 줄이는데, 올바른 사실을 알리는 것은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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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의학 교과서에서도 동성애를 질병으로 분류하지 않는다. 동성애는 질병이 아니기에 치료할 이유가 없으며, 다양성의 차원에서 받아들여져야 한다.”(최인광 정신의학박사)

“국가가 동성애 에이즈환자에게 수천억원대 예산을 퍼붓고 있다.”(거짓. 2016년 기준 에이즈 환자 지원사업 예산은 23억원)

왜곡된 정보는 혐오를 낳는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를 중심으로 설립된 ‘바른정보연구소’는 지난해 6월 소책자 <우리가 알아야 할 바른 진실들>을 제작, 배포했다. 반동성애 정치인이나 단체들이 꺼내드는 왜곡된 정보, 논거들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비온뒤무지개재단 한채윤 상임이사는 “왜곡된 정보를 계속 접하다 보면 사람들은 그것이 진실인 줄 알게 된다”며 “사실을 바로잡는 것이 혐오하는 사람의 생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잘못된 정보들 사이 고민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된 판단의 근거를 줄 수는 있다”고 말한다.

바른 사실은 성소수자 당사자에게도 자신을 지킬 ‘방패’가 된다. 특히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혐오를 접하고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마음이 아팠다”(ㄱ씨·17)는 반응이 많았다. 한 이사는 “혐오의 말은 날카로워서 듣는 사람을 찌른다. 제대로 된 정보는 방패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동성애의 경우 악의적으로 왜곡된 정보들이 많다. 잘못된 정보를 교정하고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혐오 대응에 중요한 방편이다.(홍)

# 법을 근거로 “차별”이라 말한다 -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를 알리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바꾼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57)는 처음부터 장애인이 아니었다. 해병대 출신의 건장한 남성이었던 그는 스물네 살 때 행글라이더를 타다 사고를 당해 하반신이 마비됐다. 잃어버린 건 두 다리뿐이 아니었다. 가족과 사회의 대우, 모든 것이 달라졌다.

비 오는 날 교회를 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택시기사가 “119를 불러서 가지 왜 택시를 타느냐”고 면박을 줬다. 박 대표는 “당시 장애를 내 스스로 받아들이지 못해 ‘내 탓이오, 내 죄’라 생각하며 그저 눈물만 흘렸다”며 “지금이라면 장애인차별금지법에 따라 항의하고 국가인권위에 진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애인은 소수자 가운데 유일하게 제도적으로 차별적 괴롭힘이 금지돼 있다. 2007년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제정됐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것만으로도 효력이 있다. 박 대표는 “장애인차별금지법,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같은 법과 제도를 이야기하면 사람들에게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은 행동에 힘을 실어주고 변화를 가능케 했다. 문턱을 없애지 않는 가게들에 항의하며 ‘장애인차별금지법’을 근거로 들며 공문을 보내고 국가인권위에 진정서를 넣겠다고 말했다. 결국 많은 가게의 문턱이 사라졌다. 사회적 약자에게 제도는 최소한의 안전망이 된다.

▶법은 금지하고 처벌하는 식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법이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유도하는 ‘교육적’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홍)

# 혐오를 없애는 건 소통이다 - 서로 소통하면 오해에 기반한 혐오는 이해와 공감으로 바뀐다

경향신문

혐오는 오해에서 나온다. 일본에서 온 야마구치 히데코씨는 “편견이나 차별이 있는 건 소통이 없어서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야마구치씨는 한국에 온 지 29년이 됐지만 아직도 크고 작은 차별과 혐오를 경험한다. “한국어 발음이 어눌하다는 이유로 어린아이 취급하며 반말을 함부로 하기도 하고, 한국말을 모르는 줄 알고 욕설을 하는 분들도 있어요.”

혐오에 대놓고 대응하는 건 쉽지 않았다. 혼자 속으로 삭이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글을 쓰고, 시를 쓰자 외부의 반응이 있었다. 그는 일간지에 한국과 일본의 문화차이에 관한 칼럼을 연재하고, 이주민으로 겪는 어려움과 소통 문제 등을 시로 표현했다. 야마구치씨는 “설명을 들어보니 너의 행동이 이해가 간다, 외국인을 이해할 기회를 주어서 좋았다는 반응이 많았다”며 “외국인에 대한 오해 때문에 혐오하게 된다면, 어떤 배경으로 오해가 생겨나고 이를 어떻게 풀어갈지에 대해 글을 써서 알리는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소통과 공감의 자리가 늘어나면 오해는 이해로 바뀐다. 야마구치씨는 “한국 사회에 이주민의 사정을 알리는 자리가 별로 없다”며 “모르니까 혐오하는 것이다. 이주민에 대해 알리고 소통하는 장이 늘어난다면 사람들이 이주민의 일을 자기 일로 느끼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혐오가 오해나 잘못된 정보에 기인한 경우도 많다. 이해한다고 혐오가 다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오해가 풀림으로써 혐오 감정을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홍)

# 침묵하지 않고 소리 내어 말하기 - “사회에서 약자라고 목소리를 못 내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요”

저는 17살 학생입니다. 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데 ‘야동’으로 비유를 드는 선생님, 여성의 성기를 비하하는 표현을 반복하는 아이들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참다가 너무 화가 나서 앞으론 학원에 나오지 않겠다고 선생님한테 얘기했더니 ‘그건 피해의식 아니냐’고 하는데 어이가 없어서 크게 웃고 말았어요. 제 얘기를 듣기는커녕 가르치려 했을 뿐이죠.

그래도 하고 싶은 말을 당당하게 한 제 자신이 자랑스러워요. <엄마는 페미니스트>라는 책에서 “너를 불편하게 만드는 게 하나라도 있다면 소리 내어 말하라고 가르쳐” “남들의 호감을 사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대신 정직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진짜 생각을 말하도록 격려해줘”라는 구절을 읽었을 때 저를 지지하고 응원해주는 것 같은 느낌에 울컥하면서도 행복했어요.

저보다 어른인 사람에게 잘못을 지적하고,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말하기란 정말 어려워요. 나이가 어리다고, 낮은 직급이라고, 사회에서 약자라고 목소리를 못 내는 일은 없어야 하잖아요. 말을 막지 마세요. 윽박지르지 마세요. 나이가 어리다고 편견을 가지고 눈을 닫고 귀를 닫지 말고 진지하게 들어주세요. 독자 박창희 수기

▶여성 청소년으로서 소수자성에 기반을 둔 중첩적인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일상적으로 겪는 성차별적 표현과 성희롱에 대해 침묵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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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 표현에 ‘대항표현’ 맞대응…말하는 과정서 스스로 강해져

경향신문

혐오표현에 관한 논의는 주로 어떤 강제조치를 취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되곤 했다. 물론 혐오표현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다양한 수위와 형태의 혐오표현을 모두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어차피 불가능하며, 법적 해결은 그 자체로 지난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적극 검토되어야 하는 혐오표현 대응방법 중 하나가 바로 대항표현(counterspeech)이다. 대항표현은 혐오표현을 표현으로 맞대응함으로써 혐오표현을 무력화시키는 방법이다. 대항표현만으로 문제가 조기에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당사자가 자신의 권리를 알고 말하고 싸우는 과정에서 ‘자력화’(empowerment)되어 스스로 대항주체가 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한다. 대항표현의 과정에서 사회가 혐오표현에 대한 강력한 내성을 기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대항표현은 가장 강력하면서도 근본적으로 혐오표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도 할 수 있다. 법적 금지에 따른 부작용이나 남용 위험성도 없다.

물론 이로써 혐오표현이 일소되는 것은 아니다. 혐오표현은 법, 제도, 문화, 교육 등 다양한 기제들이 함께 작동해야 해결될 수 있으며, 대항표현 역시 문제해결의 한 방법일 뿐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할 점이 있다면, 대항표현을 피해 당사자만의 몫으로만 돌려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사건 현장에 있던 목격자들, 그런 사건이 있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동료들 모두가 대항표현에 동참해야 한다. 혐오표현은 피해자를 고립시키지만, 대항표현은 모든 구성원이 협력하여 피해자가 아니라 발화자를 고립시킴으로써 문제의 구도를 완전히 뒤바꾼다. 대항표현을 시민사회에만 내맡겨도 안된다. 시민사회의 자율적 실천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국가적·법적·제도적으로 대항표현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권센터, 상담소, 인권교육, 홍보자료 등을 제공하여 자력화를 지원하고 대항표현을 한 자가 거꾸로 부당한 위협을 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은 국가·법·제도의 몫이다.

■개인 역량·기지로 해결 ‘한계’…국가·사회도 나서 ‘해악’ 알려야

경향신문

최근 인터넷에서 가수 엠버의 6분짜리 유튜브 동영상 “내 가슴이 어디 갔지?(악성 혐오 댓글에 대응하기)”를 인상 깊게 보았다. “네 가슴은 어디 있니? (평평하네)”라는 악플에 “음… 좋은 질문이야. 이제부터 찾아봐야겠어”라고 받아치며 ‘가슴을 찾는’ 대모험이 시작된다.

‘에프엑스의 남성멤버’ 등의 악성 댓글은 엠버에게 좁은 여성성 규범을 강요한다. 하지만 엠버는 이러한 표현들에 위축되지 않고 오히려 혐오표현을 무색하게 하고 그 말의 모순을 고발하는 유쾌한 풍자를 인터넷에서 나눈다. 엠버뿐만 아니라 온 세상의 짧은 머리에 공 차기를 하며 노는 소녀들이 그 동영상을 보며 위안을 삼았을 것이다.

‘혐오를 넘어’에 나온 혐오대응법 사례를 통해 차별이나 혐오를 목격하거나 경험한 개인들의 고통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혐오와 차별의 피해자들과 목격자들은 ‘아, 그때 그렇게 대응했어야 했는데’ 하며 ‘이불킥’을 하고, 스스로의 입을 막고, 무기력함을 비관하게 된다. 하지만 ‘받아치기(speaking back)’ ‘대항표현’의 경험은 개인을 강하게 만들고 속해 있는 공동체를 바꾼다. 혼자 고립되지 않게 함께할 사람들을 만나고, 기록하고, 목소리를 내어 고발하며, 더 다양한 표현을 만들어내며, 공동체 안에서 더 많은 대화를 촉진하고, 때로는 아이러니하게 풍자한다.

한편 이러한 사회현상을 전적으로 개인의 역량과 기지에 의하여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부당한 일일 수 있다. 이러한 분들을 묶어주고, 서로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차원에서 이번 특집 기사가 더욱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인터넷, 학교, 직장에서, 이러한 시도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물론 이것에 앞서서 ‘상처 입히는 표현’이 어떤 해악 징후이며, 이것이 어떻게 발전되어 크나큰 사회적 해악이 되는지를 확인하고 알리는 국가적·사회적 선언과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별취재팀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이영경·김지원·이효상·최미랑·김찬호·배동미·유설희·유수빈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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