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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암살된 몰타 기자 추모 이어져…교황도 이례적 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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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골 넣은 축구선수는 세리모니 생략…사건 용의자 단서는 아직

(로마=연합뉴스) 현윤경 특파원 = 고위 정치인들을 겨냥한 부패 폭로에 앞장서다 희생된 몰타의 탐사보도 전문 기자의 죽음에 각계의 애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정한 일반인의 죽음을 따로 언급하지 않는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조의의 뜻을 밝혔다.

교황은 20일 몰타 대주교 찰스 시클루나에게 보낸 전문에서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의 비극적 죽음에 깊은 슬픔을 느끼며, 그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한다. 유족에게 위로를 전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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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 [AFP=연합뉴스]



교황은 또 "이 어려운 시기에 몰타 국민과 몰타에 신의 축복이 있길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자연재해나 테러 등으로 많은 사람이 고통받거나, 저명한 세계 지도자가 별세했을 때 교황은 애도의 뜻을 밝혀왔지만, 일반인의 사망에 공식 애도 전문을 발송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교황의 애도 표현은 사건에 쏠린 전 세계의 관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몰타 축구대표팀의 주장이자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아탈란타에서 뛰는 안드레 스켐브리도 유로파리그의 몰타 선수로는 최초로 득점하고도 골 세리머니를 생략하며 갈리치아 기자를 추모했다.

스켐브리는 19일 이탈리아에서 열린 아탈란타와 키프로스 축구팀 아폴론의 유로파리그 조별 예선에서 골망을 흔들었으나 팀 동료들의 축하에 함께 환호하는 대신 고개를 숙이며 침울한 모습을 보여 궁금증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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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이탈리아 레조 에밀리아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E조 예선에서 골을 넣고도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몰타 축구 선수 스켐브리(왼쪽에서 두번째)



그는 경기 후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번 주 몰타에서 끔찍한 일이 벌어졌는데, 골 세리머니를 하는 것이 옳지 않게 느껴졌다"는 글을 올려 갈리치아 기자에 대한 간접적인 애도를 밝혔다.

유력 정치인을 비롯한 몰타 사회 곳곳의 부패 의혹을 가차 없이 폭로해 '1인 위키리크스'라는 평가를 받은 갈리치아 기자는 16일 자신의 푸조 소형차를 타고 외출했다가 차량에 설치된 폭발물이 터지며 폭사했다.

올 4월 사상 최대 규모의 조세회피처 자료인 '파나마 페이퍼스'에 언급된 한 회사의 소유주가 조지프 무스카트 총리의 부인이라고 언급해 몰타의 조기 총선을 촉발한 갈리치아 기자의 죽음은 평화로운 휴양지로 비치던 인구 43만 명의 유럽연합(EU) 최소국 몰타 이면의 그림자를 드러내며 국제 사회에도 큰 충격을 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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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당한 몰타 다프네 카루아나 갈리치아 기자



몰타는 최근 EU에서 가장 가파른 경제성장률을 구가하고 있으나, 갈리치아 기자 등 비판론자들은 이런 호황이 외국 부유층을 겨냥한 여권 장사와 온라인 도박 사이트 허가 등 불건전한 방법으로 일궈진 것이며, 이 과정에서 정치인들의 부패가 개입해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몰타 최초의 정치 분석가로도 평가받는 갈리치아 기자는 2008년 기성 언론에서 독립해 정치 논평과 정계 고위 인사의 비리를 폭로하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이 블로그는 몰타 주요 언론 사이트를 합친 것에 맞먹는 하루 평균 40만 페이지뷰를 기록할 정도로 몰타 대중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2013년까지 25년간 장기 집권한 몰타 우파 정당 국민당 성향의 그가 좌파 성향의 노동당 정부의 인사를 편파적으로 비난할 뿐 아니라 사생활까지 무차별적으로 들추고, 근거 없는 주장을 한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갈리치아 기자는 명예 훼손으로 지난 9개월 동안 무려 36건의 고발을 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야당과 갈리치아 기자의 유가족으로부터 사퇴 압박을 받는 무스카트 총리는 이번 사건의 배후를 끝까지 밝히겠다고 천명했으나, 경찰은 사건 발생 닷새가 지나도록 용의자의 실마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몰타에서는 최근 6건의 차량 폭발 사건이 일어났는데, 모두 현재까지 범인 검거에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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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타 수도 발레타 법원 앞에서 열린 갈리치아 기자 추모 집회에 참석한 시민들 [AP=연합뉴스]



ykhyun14@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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