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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29 (금)

[사설] 집단 지성 발휘된 신고리 5·6호기 공사 재개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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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여론조사보다 높은 찬성

공론조사의 유효성 보여준 것

정부는 공약보다 민심 살피고

원전 안전도 향상에 온힘 다하길

신고리 원전 5·6호기의 운명을 가름할 공론화위원회가 어제 활동을 끝내고 ‘공사 재개’를 정부에 권고했다. 석 달간 공론조사와 합숙토론 등을 진행하며 논의한 결과 찬성 의견이 59.5%, 중단 의견이 40.5%로 나온 데 따른 것이다. 정부도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존중해 오는 24일 국무회의에서 공사 재개를 결정할 예정이다.

공론화위원회의 논의 결과는 다소 의외다. 그동안 일반 국민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선 공사 재개와 중단 의견이 오차 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맞섰다. 하지만 공론화위원회에 참여한 471명의 시민참여단 사이에선 공사 재개 의견이 현격하게 높았다. 참여단이 찬성과 반대 양 진영의 의견을 심도 있게 검토해 경제성과 환경, 안전 사이의 균형을 숙고했음을 알 수 있다. 네 차례의 공론조사 동안 공사 재개 의견이 갈수록 높아지고, 젊은 층의 반대가 눈에 띄게 줄어든 점이 이를 방증한다. 공론화위원회가 원전 반대 분위기가 강조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시민참여단은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수준이 ‘숙의 민주주의’가 작동할 만큼 성숙했다는 증거다. 앞으로 국민의 삶과 관련된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이런 집단 지성의 힘을 활용할 기회가 많아지길 바란다.

공론화위원회의 이번 권고는 대통령 공약에 대한 그간의 사회적 인식도 바꿔놓았다. 정치권은 그동안 ‘대선 공약에 들어 있으면 국민 승인을 받은 것’이라는 인식 아래 사회적 논의나 합의 과정을 무시해 왔다. 그 결과 적지 않은 갈등과 후유증이 초래되곤 했다. 하지만 대선 당선이 곧 모든 공약에 대한 국민적 승인을 의미할 수는 없는 법이다. 탈원전과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지만 논란이 끊이지 않아 왔다. 이런 공약을 정책으로 옮길 땐 국민적 합의 여부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는 교훈을 이번 공론화위원회가 남겼다. 이런 사례는 시간이 지날수록 많아질 것이다. 집권 당시의 공약보다 정책 실행 때의 민심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정부·여당은 늘 잊지 말아야 한다.

이번 결정으로 그동안의 많은 우려가 기우에 그치게 된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2조8000억원 이상의 매몰비용이 날아가거나 일자리가 줄어들고 전기요금이 오르는 사태는 막을 수 있게 됐다. 국내에선 원전 건설을 중단하면서 해외로 원전 수출을 추진하는 자기 모순에서도 벗어나게 됐다. 그렇다고 공사 재개 진영이 마냥 환호할 일은 아니다. 충분한 정보가 제공됐는데도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이 40%에 이르렀다. 장기적으로 원자력 발전을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도 53%에 달했다. 원전에 대한 근원적 불안감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원전 마피아’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불투명하고 부패가 심했던 원전 산업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반영된 결과는 아닌지 공사 재개 진영은 되돌아봐야 한다. 안전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리고 투명하게 원전을 운영하는 노력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전문가의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납득시키는 겸손함도 필요하다. 그래야 이번 결정에 대한 반대 측의 반발도 최소화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중요한 건 에너지 정책의 신뢰도를 높이는 일이다. 정권 교체 직후 탈원전을 선언한 정부는 갑자기 2015년 113.2GW로 내다봤던 2030년 전력수요를 지난달 100.5GW로 크게 낮췄다. 물론 증가일로였던 에너지 수요가 최근 고령화와 산업구조 재편으로 침체 조짐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신재생 에너지 기술의 발달로 공급 측면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하지만 정권의 필요에 따라 이렇게 중장기 전력수요 전망이 오락가락한다는 오해를 받는다면 어떤 에너지 정책도 성공할 수 없다. 수요와 공급이 분명해져야 그에 따른 전략을 수립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야 원전 건설을 축소하고 노후 석탄발전을 중단하는 것과 같은 구체적 정책도 국민적 호응을 얻을 수 있다. 이번 신고리 원전 5·6호기 건설 재개 결정이 탈원전 정책 자체의 폐기로 이어지느냐 마느냐가 여기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번 공론화위원회를 운영하는 데 46억원의 예산이 들었다. 또 3개월간 신고리 5·6호기 공사 중단에 따른 보상 비용이 1000억원에 이른다고 한다. 새로운 정책결정 방식을 실험한 것 치고는 값비싼 비용이다. 하지만 미래를 염두에 두되 현실을 잊지 않을 만큼 우리 국민들의 집단 지성 수준이 높다는 점을 확인한 것은 큰 성과다. 이제 정부와 정치권, 찬반 양 진영은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는 데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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