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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3 (화)

[매경춘추] 블랙박스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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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막이 올랐다' 또는 '막이 내렸다'는 표현이 있다. 잘 아시다시피 일이나 행사가 시작되거나 끝났음을 말한다. '막'은 극장에서 객석과 무대를 구분하는 커튼이다. 막을 내리거나 올림으로써 무대 위에서의 공연이 시작되고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모든 극장에 막이 있는 것은 아니다. 막이 있는 극장은 서구의 근대가 낳은 산물이다.

막이 있는 소위 '프로시니엄극장'이 등장한 것은 17세기다. 프로시니엄은 객석에서 무대를 볼 때 무대를 감싸고 있는 틀을 말한다. 프로시니엄을 기준으로 객석과 무대가 나뉜다. 현실과 가공된 세계로도 나뉜다. 프로시니엄극장은 객석과 무대가 엄격히 구분된다. 어두운 객석의 관객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장면에 온전히 집중한다.

서구에서 극장의 대세는 단연 프로시니엄극장이다. 우리나라의 근대 이후 극장들도 마찬가지다. 전국에 있는 많은 중대형 극장은 거의 예외 없이 프로시니엄 아치를 가진 극장이다. 극장이라고 할 때 떠오르는 전형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이렇게 한 유형의 극장이 압도적 주류를 형성하게 된 것은 무대에 오르는 공연물에 최적화되었기 때문이다.

예술에는 터부 또는 기존 질서에 도전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고 한다. 극장도 그 대상이다. 무대 위에 객석을 올리거나 아예 무대와 객석을 바꾸기도 한다. 공연 공간을 벗어난 '장소특정형 공연'도 하나의 흐름이다. 프로시니엄극장에 알맞은 콘텐츠 못지않게 이를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와 공간의 모색도 활발하다.

그중 하나가 블랙박스극장이다. 극장이 검은색의 직육면체 상자처럼 생겨서 붙여진 이름이다. 무대와 객석이 경계를 허물며 기존의 극장문법을 무너뜨린다. 다양한 실험과 시도가 가능하다는 점에서 프로시니엄극장의 보완적인 형태로 떠올랐다.

세종문화회관도 블랙박스극장을 새로 짓고 있다. 내년 5월이면 정식 개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978년에 개관한 세종문화회관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예술 공간 중 하나다. 그만큼 시대의 무게도 무겁다. 블랙박스극장이 세종문화회관이라는 미래문화유산에서의 동시대성을 한 단계 상승시켜 주는 역할을 해주기 바란다.

[이승엽 세종문화회관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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