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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9 (금)

[지평선] 청년층의 지대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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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고교 시절이던 1970년대 말 친척 어른들이 은퇴직후 시내 집을 팔고 퇴직금을 보태 변두리에 지하층이 딸린 2층짜리 집으로 이사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2층에 가족이 살고, 지하층과 1층에 전ㆍ월세를 놓아 노후에 대비하자는 취지였다. 연금제도가 부실했을 테고, 만 55세 부근에 직장에서 은퇴를 하니 임대수익 말고는 마땅히 기댈 곳이 없었다. 외환위기 직후에는 대기업 임원들이 은퇴를 대비해 서울 강남지역의 개인주택을 구입해 원룸으로 개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들은 지금도 적지 않은 월세를 받고 있다.

▦ 요즘은 서울 등지 주요 역세권에 오피스텔을 여러 채 구입해 월세를 받는 지인들이 있다. 한 채당 월 100만원 정도니 몇 채면 노후자금으로 훌륭하다. 저금리 시대에 자금 여유가 조금 있으면 얼마든지 시도할 만한 것이라지만, 생각해볼 문제가 적지 않다. 그래서인지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대추구의 덫을 빠져 나와 경제 선순환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좋은 아이디어로 창업하고 사업을 키워 경제를 선순환시키는 구조가 아니라, 자본을 손쉽게 끌어들여 임대료만 받는데 치중하는 행태를 우려한 것이다.

▦ 지대(地代ㆍrent)는 지주가 토지 사용 대가로 소작인에게 받는 금전 등을 의미하는 말로 착취 개념이 스며 있다. 그래서 오래 전 토지공개념이 등장했고, 고전경제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인간이 스스로 만든 것에 대한 사유재산권은 최대한 보장되어야 하나, 토지는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므로 그에 대한 제한이 자유시장경제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학계에서 ‘지대추구(rent-seeking)’라는 개념은 생산활동이 아니라, 국가 부문의 자원과 영향력에 접근해 수익을 얻는 비생산적인 행위로 다소 변형되어 있다.

▦ 청년들의 부동산임대업 창업과 갭 투자가 최근 들어 확연히 늘었다고 한다. 뼈 빠지게 일하기보다 편히 돈을 벌겠다는 행태다. 오죽하면 ‘알바비 모아 갭 투자한다’는 얘기가 나오고, ‘갭 투자로 300채 집주인이 됐다’는 책이 인기다. 갭 투자의 개별적 위험성보다 더 큰 문제는 이로 인해 집 값이 오르면 서민이 피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른바 예상하지 못한 ‘금전적 외부효과’다. 이 같은 부정적 효과를 막는 것이 급선무라지만, 부동산 법안을 다루는 상당수 국회의원이 다주택자라니 좋은 정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조재우 논설위원 josus6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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