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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4 (수)

[매경의 창] 깜빡이등, 이제는 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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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우리나라의 자동차 등록대수가 2200만대에 다가섰다. 자동차는 우리에게 경제활동, 가족 여행 등 다방면에서 편리함을 가져다주는 반면 매년 교통사고로 4000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 등 개인적 불행과 국가적 손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동차로 인한 사고와 피해를 줄이기 위해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수준 높은 교통문화를 만드는 데 다 같이 참여했으면 한다.

그동안 우리의 교통문화는 소득과 의식수준의 상승만큼이나 높아져 온 것이 사실이다. 차가 막히는데도 경적소리를 별로 들을 수 없고, 길이 합류하는 지점에서는 한 대씩 번갈아 들어서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런데도 매일 출퇴근 운전을 하고 나면 신경이 곤두서고 피로가 쌓이는 것을 볼 때 아직도 우리의 교통질서나 문화에서 나아져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방향지시등 또는 쉬운 표현으로 깜빡이등을 켜지 않고 갑자기 끼어드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본다. 하도 여러 번 경험한 바라 이제는 그러려니 하자고 다짐을 하지만 예고도 없이 끼어드는 차를 볼 때마다 혈압이 올라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 광역시의 조사에서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운전자가 절반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설문조사에서는 운전자의 76%가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고 끼어드는 것에서 가장 큰 분노를 느끼며, 20% 정도는 보복운전 충동을 느꼈다고 답하고 있다. 깜빡이등을 켜지 않는 것이 분노와 보복운전으로까지 연결되는 심각한 문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더욱이 분노를 가라앉히지 못한 상태에서 가족이나 동료를 만나게 되므로 가정과 직장의 분위기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리라는 점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외국인이나 오래 외국 생활을 한 지인들 대부분이 이 때문에 운전하기 어렵다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하고 있고, 심지어는 한국인들이 운전을 무례하게 한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운전 행태는 노크도 없이 남의 집에 침입하는 것과 같다고 하면 과한 비유일까? 공용 목적의 도로를 같이 사용하다 보면 일어날 수 있는 일 아니냐고 할지 모르나 잘못된 운전으로 인해 애꿎은 운전자가 사고와 부상을 당하게 된다는 점에서 결코 과한 비유가 아닐 것이다. 고속으로 달리는 도로일수록 사고가 커지게 되므로 그만큼 운전자들의 분노도 높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보도를 보면 보복운전자들에 대해서는 처벌을 강화한다고 하는데 원인 제공자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보복운전자뿐만 아니라 갑자기 남의 차선에 끼어드는 잘못된 운전 행태에 대해서도 단속과 처벌을 강화해야 사고를 줄일 수 있다.

깜빡이등을 켜지 않고 차선을 바꾸는 이유를 물어보면 대부분 상대방이 양보해주기는커녕 더 속도를 내고 달려와 위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개별 운전자들이 먼저 실천하지 않으면 다툼과 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이제는 바뀔 때가 되었다. 차선을 바꿀 때나 좌우로 꺾을 때에는 반드시 깜빡이등을 켜도록 하자. 일부 양보하지 않는 운전자들이 있다고 선량한 운전자마저도 이를 따라간다면 사고는 더 자주, 더 크게 발생할 것이다. 그런데 한 차량이 양보하지 않는 경우 대체로 그다음에 오는 차들은 양보해주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다행이자 희망이라고 하겠다.

또한 한두 번 깜빡거려서는 양보해야 할 상대방이 인식하기 어렵다. 영국에서는 적어도 네 번 이상 깜빡거린 후 차선을 바꾸도록 가르치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한번이라도 더 깜빡이등을 켜는 만큼 우리의 도로가 안전해지고 즐겁게 출퇴근할 수 있다는 점을 다 같이 인식하고 실천했으면 한다.

교통경찰 당국에 부탁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 운전자가 위협으로 느끼고 있는 이러한 운전 행태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개선 의지를 보여 달라는 점이다. 운전면허 발급 전에 깜빡이등을 켜는 것이 체질화되도록 충분히 교육하고, 단속도 강화해주길 기대한다. 관련 기관이나 단체들도 힘을 모아 꾸준히 계도해 나가야 함은 물론이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머지않아 사고와 다툼이 줄어들고 외국인들도 편안하게 운전할 수 있는 교통문화 선진국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한만희 서울시립대 국제도시과학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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