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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5 (목)

[차장칼럼] 내 친구의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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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초등학교 5학년 때쯤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같은 반 친구였던 Q는 내 기억 속에 유달리 작고 여렸던 녀석으로 남아있다. 남자였지만 갸름한 턱선에 뽀얀 얼굴, 무슨 큰 병이라도 앓고 난 듯 가느다란 몸매에 자그마한 키 때문에 여자라고 생각했던 친구들도 많았다. 짓궂은 친구들은 "머슴애가 맞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며 Q의 바지를 벗기려다 선생님한테 들켜 혼쭐이 나기도 했다. 어쨌거나 Q는 우리반 남자들 중에서 가장 작고 약했다. 심지어는 일부 여학생에게 맞기도 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여리여리했던 Q에게도 사춘기는 찾아왔다. 늦게 크는 아이가 있다더니 Q가 딱 그랬다. 어느 해 개학식 날 훌쩍 커버린 모습으로 나타나 친구들을 놀랜 녀석은 콩나물 자라듯 쑥쑥 자라더니 연말 종업식쯤엔 반에서 가장 키 큰 학생이 됐다. 키만 큰 것이 아니었다. 걸신이 들린 것처럼 먹어대던 녀석은 몸무게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 풍선에 바람이 들어가듯 성장을 거듭하자 녀석의 행동에도 변화가 왔다. 소극적인 데다 툭하면 울먹이던 녀석이 어느 날부터인지 상남자처럼 굴기 시작하더니 체육시간이면 나무 그늘을 찾아 운동장 가장자리를 맴돌던 녀석이 하루 종일 축구공을 차며 운동장을 헤집고 다녔다.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Q의 행동이 바뀌면서 슬슬 그를 피하는 친구들이 늘어갔다. 덩치가 커지면서 목소리가 커지고 적극적으로 바뀐 건 좋은데 힘 조절이 안 되는 것이 문제였다. 제 딴에는 장난으로 툭 친 정도인데 맞은 쪽은 카운터펀치를 맞았다고 느낄 때가 많아졌다. 아파 죽는다고 하소연도 해보았지만 엄살 부리지 말라는 듯 씨익 웃고 지나갈 뿐이었다. 생전 맞아만 봤지 때려본 적이 없던 녀석이다 보니 무엇이 문제인지 몰랐던 것 같다.

그렇게 녀석의 행동은 점점 더 거침이 없어져갔고, 그럴수록 친구들은 하나둘씩 멀어져 나갔다. Q가 분위기를 파악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가까이 남아있는 친구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이유를 몰랐던 녀석은 어느 날 홀로 남은 운동장에서 꺼이꺼이 통곡을 토해내고 말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Q의 입장이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당시 우리는 제 잘못도 모르고 억센 울음으로 억울함을 호소하던 녀석이 정말 미웠다.

올해 들어 불거진 몇몇 프랜차이즈 업체의 '갑질'이 계속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가맹점에 광고비를 떠넘기거나 특정 업체 물품을 강매하는가 하면 성추행과 마약 파문으로 애꿎은 가맹점주들에게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사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지만 국민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것만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의 일탈을 비판하고 질책하기에 앞서 혹시 그들도 갑자기 커진 몸집을 어쩌지 못하고 힘 조절이 안 되던 그 옛날 내 친구와 같은 상황은 아닌지 한번쯤 살펴봤으면 한다. 만약 그렇다면 해법은 처벌과 질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ohngbear@fnnews.com 장용진 생활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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