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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0 (토)

[이유식 칼럼] 홍준표식 통합엔 '빅 픽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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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당' 제의 진정성 없어 빈축ㆍ냉소

기득권 버리고 백지에 새 그림 그려야

국민 안철수-바른 유승민 교감 더 주목
한국일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19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이 박근혜 전 대통령 구치소 인권침해 논란에 대해 "일반 재소자 1인당 가용면적은 1.06㎡(약 0.3평)로 일간신문 2장 반 안 되는 면적이지만 박 전대통령은 그 3배"라며 직접 누워보고 있다. /노회찬 의원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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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의 돌연한 법정진술은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 양날의 칼로 작용할 것 같다. '법치의 이름을 빌린 정치보복'이라는 반격은 홍 대표나 한국당이 주장해온 문재인 정부의 5대 신적폐 혹은 13대 실정 공세에 힘을 실어주며 보수층 결집의 촉매가 될 것이다. 반면 법원의 구속연장 결정을 계기로 박근혜 전 대통령과 결별하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가속화하려던 계획엔 악재다. 본인이 "역사적 멍에와 책임을 지고 가겠다"고 한 만큼 일단 자진탈당을 기다린 후 끝내 거부하면 탈당권유-출당 절차를 밟겠다는 생각이지만, 당내외 지지층의 반발 등 후폭풍은 내내 부담이다. '살인자는 용서해도 배신자는 용서하지 않는' 지역이 그의 정치기반이니 말이다. 당장 '부관참시'라는 말도 나온다. 홍 대표가 "지도자는 무한책임만 질 뿐 동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며 "우리에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고 자락을 까는 것도 이런 맥락일 것이다.

"첩이 아무리 본처라 우겨도 첩은 첩일 뿐"이라며 바른정당과의 대등한 통합에 부정적이던 홍 대표가 최근 취임 100일을 맞아 "형식에 구애 받지 않는 보수대통합"으로 급선회했다. 지류는 본류에 합류하게 돼있다거나 내년 지방선거에서 자연스레 우파통합이 이뤄질 것이라며 흡수통합을 고집하던 그의 입으로 당대 당 통합의 문을 열었으니 성사 여부와 관계없이 따져볼 변화다. 자축할 때가 아니라며 100일 이벤트도 마다한 그를 조급하게 만들어 태도를 바꾸게 한 것은 뭘까.

그는 대여투쟁 리더십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나오면 "잘못된 좌파정책이 축적되고 국민이 잘못된 정부라고 자각할 때 본격적인 전쟁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해왔다. 지금이 그때라고 여긴 걸까.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국정지지율이 북핵 위기와 안보 혼선으로 잠시 하락했다가 추석 연휴 뒤 되레 70% 전후로 반등했으니 아직 그가 말한 때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 지지율에 그도 적잖이 놀라고 마음이 쓰였을 법하다. 여소야대 국회의 핸디캡을 안고 인사 혼선과 정책 과욕으로 출범한 문재인 정부가 지금쯤이면 뚜렷한 하강곡선을 그을 것으로 보고 기회를 엿보아 왔을 테니 말이다. 대선 패배 이후 상실감과 무력감에 빠진 당을 추슬러 20% 가까이 지지율을 끌어올린 실적도 빛이 바랬다.

'정당 지지율 25%.' 바른정당에 대한 구애는 그가 '본격적인 전쟁'의 토대로 생각하는 이 수치에서 비롯된 것 같다. 못마땅한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때마다 조작 운운하며 강한 불신을 드러내온 홍 대표가 이 선에 집착하는 배경은 분명치 않다. 근거라면 그의 대선 득표율 24%뿐이다. 여튼 그는 이 선을 확보해야 적폐 칼날을 휘두르는 여당을 견제하고 지방선거에서 약진을 꿈꿀 수 있지만, 개혁보수와 담쌓은 한국당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마침내 자인했다. '소박한 대중언어'라던 막말과 '축적된 지식의 소산'이라던 임기응변의 한계도 드러났다.

그러나 접근방식이 틀렸다. 홍 대표가 예상한 문재인 정부의 하강과 여론 등돌림 시점이 어긋났으면 국면을 제로베이스에서 재점검하는 게 상식이고, 그 출발점은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는 통큰 결단이 돼야 한다. "지금은 통합과 혁신 중 통합이 우선"이라며 박근혜 출당 카드만 흔드는 낡은 접근으로는 진정성을 의심받고 "영감님 지지율이나 신경쓰라"는 냉소만 돌아올 뿐이다. 어떤 가치와 비전으로 보수의 새 길을 열 것인지 고민하지 않고, 몸집만 키워 문재인 정부에 맞서겠다는 발상은 젖 냄새만 풍길 뿐 설득력도 실효성도 없다.

보수자강론을 앞세운 한국당과 바른정당 탈당파의 기회주의적 거래는 이미 명분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원내 1당 지위와 개개인의 보신이라는 실리도 확실치 않다. 보수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통찰하는 '빅 픽처'가 없는 탓이다. '그라운드 제로'에서 다시 일어날 각오와 성찰 없이 10년 가까이 절치부심한 문재인 정부를 상대한다는 건 연목구어다. 그래서 국민의당 안철수와 바른정당 유승민이 그리는 빅 픽처에 더 눈길이 간다.

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lookilbo.com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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